노마드로 2년을 살며

Jay (Jihye) Lee
5 min readJul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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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노마드로 살기 시작하다

풀리모트 근무인 미국 회사로 거처를 옮기면서 회사에서 임시로 제공하는 숙소에 들어갔던 것이 시작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간의 노마드 생활을 되돌아본다.

여행지가 아닌 일상생활 거점으로 삼았던 지역을 간략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Bay Area (오클랜드,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캘리포니아, 미국
  2. 샌디에고, 캘리포니아, 미국
  3. 시카고, 일리노이, 미국
  4. 오스틴, 텍사스, 미국
  5. 뉴욕, 미국
  6. 툴룸, 멕시코
  7. 멕시코시티, 멕시코
  8. 서울 (후암동, 부암동, 창신동, 성북동, 신사동 등), 한국
  9. 제주, 한국

회사 숙소, 친구 집 등을 제외한, 내가 렌트 비용을 내고 살았던 곳은 총 25곳, 숙박일은 500박이 넘는다. 평균 20일마다 집을 옮긴 셈이다.

에어비앤비, 스테이폴리오, 버틀러리 (한옥 숙박 예약) 등에서 열심히 다음 집을 찾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짐을 싸고 옮기며 이동하기 바쁜 2년이었다.

지금 잠시 2주간 머물고 있는 성북동 한옥집에서.

맥시멀리스트 노마드로 살아남기

노마드가 되기 전 나는 주변에서 맥시멀리스트라 부를 정도로 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실 캐리어 1~2개로 끊임 없이 짐을 줄여야 하는 삶을 살면서도, 아직도 친구들은 나는 절대 미니멀리스트는 못 되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친구 집, 가족 집에 맡겨 둔 짐이나 선물한 물건도 여기저기 꽤 많다. 그래도 매순간 나는 캐리어 1~2개로 다양한 계절과 도시를 살아냈다.

지난 2년은 비워내기의 시간이었다. 매번 짐을 싸고 나르고 풀며 비워내기의 어려움을 절절히 느꼈다. 오늘도 계속해서 비워내기를 연습하고 있다.

제 2의 고향, 제 3의 고향 찾기

새로운 꿈과 기대를 품고 갔던 미국에서의 생활은 외로웠다. 회사 동료들이나 친한 친구도 있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고립된 시간이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마음이 충만해지는 나의 새로운 집이라는 기분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잠깐 가보자 떠났던 멕시코 툴룸에서 마음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경험을 했다. 로컬 주민들과 마음을 나누고 거주 일정을 늘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삶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고향은 결국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멕시코는 나에게 제 2의 고향에 가까운 곳이 되었다. 그립고 고마운 사람들이 모여있는 마을이 세계 곳곳에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는 여전히 새로운 고향을 찾고 있다.

예술활동으로 나의 중심 찾기

거점을 옮기면서도 계속해서 미국 회사, 한국 스타트업 컨설팅을 이어간 것이 나의 건강한 루틴을 만들어주었다.

일 외에도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기에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었다.

클라이밍, 걷기, 자전거 타기, 하이킹, 필라테스와 같은 운동도 많이 하고, 지역별 미술관, 갤러리, 박물관도 많이 가고, 관광지나 유명한 자연경관을 보러가기도 했지만, 나의 중심을 잡아 준 활동은 바로 예술 작품 만들기다.

회화 그림으로 시작해, 최근에는 도자, 설치 미술까지 다양한 비주얼아트로 범주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예술가로서 인스타그램 계정은 jay.art.making)

성북동 집에서도 소소하게 그림 그리는 일상.

나의 다음 목적지는

종종 그간 가본 곳 중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을 받는다. 물론 문득 떠오르는 곳들도 있지만, 나의 대답은 언제나 ‘다음에 갈 곳’이다.

이곳 저곳 많이 다니면서 나의 취향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다음 행선지를 고를 때에도 더 뚜렷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 갈 새로운 곳에서 또 성장할 나를 그려보게 된다.

특히 예술가로서의 활동이 구체화되어가면서 이를 중심으로 다음 행선지가 결정되는 경우가 늘었다. 덕분에 매번 정해진 기간 내에 특정 거점에서 단계적으로 성취감을 얻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해외 각종 그룹 전시, 개인전, 그리고 아티스트 레지던시 등 예술가로서의 경험의 지평을 넓혀나가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로서 잠시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좀 더 지역 커뮤니티와 소통하고 실질적인 지역 기반 프로젝트를 함께 해내는 로컬 아티스트로 살아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이다.

오늘도 앞으로 나아간다

또 자주 받는 질문은 앞으로 어디에 정착할 건지다. 나는 ‘각 대륙에 거점(hub) 집을 만들’ 생각이다. 각 대륙 마다 마음의 고향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마드로 살면서 크게 얻은 것은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힘들어하는지, 혼자 있을 땐 어떤지, 낯선 환경에 놓였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드는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곳에 다시 오면 어떤 새로운 생각이 드는지 등.

낯선 곳이 익숙한 곳이 되고, 새로운 낯선 사람이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익숙한 곳과 친근했던 사람들이 낯설어지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바뀌는 주변 환경에 마음을 열고, 반응하고 변해가는 나의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고립감에서 오는 외로움, 보고싶은 마음에서 오는 그리움, 생존에 대한 고단함이, 새로움에 대한 설렘을 넘어선지 꽤 되었을지 모른다. 쉼이 부족해 비틀거리는 날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은 나 자신을 알아가고, 세상을 이해하고, 나의 중심을 잡아가는 나만의 방식일 것이다. 이런 노마드의 삶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라 믿는다. 이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경험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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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Jihye) Lee

Entrepreneurship & Art. Marketing / Growth / Product Operation at T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