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친구는 그때 왜 그랬을까?

“니, 진짜 괜찮나?”

어느 날, 친한 친구로부터 다짜고짜 이런 전화를 받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우선 자초지종을 들었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나서야 왜 1년 가까이 묻고 싶었던 그 질문을 참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친구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내가 부부간의 심각한 불화로 이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친구는 다른 친구로부터 ‘오늘 내일 한다(이혼할지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꾹꾹 참고 있다가 정말로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불화가 있었나 기억을 되짚어 봐야 할 정도였다. 와이프가 나도 모르게 이런 문제를 고민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져왔다.

그러고보니 소문이 돌던 그 즈음, 다른 친구의 아버님이 상을 당해 간만에 여러 친구들을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를 거의 모든 친구들이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 때의 의아한 눈빛들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는 그저 몇 년 만에 만난 내 얼굴이 반가워서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할 만큼 나이를 말해주는 아이들의 얼굴이 신기해서 나도 한참을 쳐다보아야 했으니까.

결국 몇 번의 통화를 통해 사태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와이프가 산후 우울증으로 한참 힘들어하던 시절, 그 얘기를 인터넷에 올렸고 방송 출연 제의까지 받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 해결’을 위한 방송이다 보니 내용이 조금 각색된 면이 없지 않았다. 촬영 중에 다른 방송들을 찾아보고서야 뭔가 낌새를 챈 내가 더 이상의 촬영을 거부한 기억이 새롭다. 방송이고 약속된 내용이니 무를 수도 없었다. 물론 그 방송을 나도 봤고 그 기억은 잊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방송을 보고 한 친구가 설레발을 친 모양이었다. 내 생각엔 대부분의 주부들이 공감하고 경험했을 그런 내용들일텐데…

캐려면 캘 수도 있었으나 그 기억은 그렇게 묻어두었다. 소문의 진앙지인 친구는 추측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진은 남아 있어서 가끔씩 밴드에서 만나는 그 친구에겐 예전처럼 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함께 올라오던 그 친구는 그 차 안에서 내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오기 직전까지 혹시 그 얘기를 또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걱정은 되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걔 이혼한다며?’라고 소문을 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얘기는 했어도 그렇게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친구의 친구를 통해 지금은 괜찮은지 물어보기는 했을 것 같지만. 내가 캐묻지도 않았고 그 아이가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으니 더더욱 나도 용서할 일은 없다. 하지만 예전처럼 밤 늦게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회포를 푸는 일은 다시금 쉽사리 올 것 같지가 않다.

아내 얘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와이프는 지금까지 7년째 어느 지방 보육원의 아이를 여름과 겨울 방학때마다 집으로 초청해서 함께 보낸다. 심각하게 입양을 생각해서 알아보았지만 친부모가 살아있다는 이유로 불발된 적도 있다. 다친 고양이를 부모 몰래 키우다가 내가 입양하는 인연으로 만난 친구다. 최근에는 버려진 강아지를 데려왔다가 결국 입양해줄 곳을 찾아 살려낸 친구다. 개인적으로 내 인생 최고의 선택과 결정은 ‘결혼’이라고 확신하는 내게 그 친구는 감히 무례했다. 어쩌면 그 친구는 자신이 한 그 말 조차도 잊고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영화 <올드보이>의 이야기도 결국 ‘말실수’와 ‘소문’에서 기인한 비극적인 이야기다. 세 치 혀끝이 때로는 어마어마한 불행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해로 인해 모든 친구를 잃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란 소설로 담아낸 바 있다. 인간은 ‘관계’라는 에너지로 살아가고, 그 관계는 우리의 한 마디 말로 인해 굳어지기도, 깨어지기도 한다. 말과 글은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생각과 건강한 말로 서로의 삶을 지킬 필요가 있다. 물론 글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말이 격언처럼 돌고 있겠는가.

그 친구는 잘 산다. 하지만 나도 잘 산다.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만나면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왜 그랬냐고?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면 왜 직접 전화해서 괜찮냐고 물어봐주지 않았냐고. ‘오늘 내일 이혼을 생각하는’ 친구를 왜 버려두었냐고. 나라면 안 그랬을 거라고. 정말로 도울 방법이 무언지를 찾아보았을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혹 그 친구의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굳이 캐묻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잘 살아가는 것이니까.

p.s. 이번 명절엔 처음으로 보육원 아이를 데리고 부산엘 내려간다. 우리 어머니도 흔쾌히 데려오라 하셨다. 보육원을 나오면 함께 살면서 삼촌, 이모처럼 서로 챙겨주며 살아가고 싶다. 어쨌든 이미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모두 와이프의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이 진정 존경스럽다.☺

One clap, two clap, three clap, forty?

By clapping more or less, you can signal to us which stories really stand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