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는 여유롭게 일하는 걸까, 밤낮 없이 일하는 걸까?

Hohyon Ryu
7 min readMay 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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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실리콘밸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한 것 같다. 혁신이 있는 곳, 사업의 성공을 위해 가정과 휴식도 반납하고 뛰어드는 곳, 10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곳, 무한의 자유와 휴가가 주어지는 곳, 집 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월세가 300만원을 넘는 곳, 상하관계가 없이 모두 평등한 곳, 그래도 인종 차별과 유리 천장이 있는 곳 등등..

우리는 실리콘밸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지만, 듣고보면 서로 말이 안 되고 상반된 정보들이 많다. 상하관계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10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한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어차피 엔지니어는 계획된 프로젝트에 맞는 코드를 빨리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러한 겉모습에 대한 질문들을 연결해서는 답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 일을 안 하는데 혁신이 있다고 하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 그렇지만 근본적인 답은 사실 간단하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 일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우리의 프로젝트가 아닌 내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에 있다.

Rank-driven Organization vs. Role-driven Organization

의사 결정 권한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이며, 가장 적합한 사람이 가져야 하는 권한이다.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하면서도 실무의 문제들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탁상공론이 되어버려 비현실적인 결정을 하거나, 실무에만 치우쳐서 전체 사업에 도움이 안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기존의 상하관계가 중요시되는 회사에서의 의사 결정은 ‘우리’의 리더 과장님, 부장님, 팀장님, 사장님이 하게 된다. 엔지니어는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윗사람’의 절대적 권한이다. 그래서 덜 권위적인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스티브 잡스같은 뛰어난 식견이 있는 사람은 혼자 그린 비전을 향해 전 조직을 달려가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델은 애플과 전통적인 미국의 기업들, 그리고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선택한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를 Rank-driven organization이라고 하자. 장점은 윗사람의 결정에 따라 최대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순간의 명령체계가 무너지면 모두 공멸하는 군대와 같이,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중요할 때 활용되는 구조이다. 이 구조의 단점은 변화에 약하다는 것이다. 한 방향으로 달려가던 차의 방향을 바꾸는 것 처럼 많은 마찰이 발생한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에어비엔비 등 최근에 생긴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선택한 방법은 Role-driven organiz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위 아래가 아닌 각자의 역할에 따라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CEO는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전체를 매니지하는 역할을 한다. 엔지니어는 실제 코드를 작성하며 시스템을 설계한다. 엔지니어링 매니저는 엔지니어가 최대한 효율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엔지니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다른 팀과 문제는 없는지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조율한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자신이 맡은 프로덕트가 사용자에서 어떻게 비춰지는지, 프로덕트를 개선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사 결정을 내린다.

Role-driven organization에서의 장점은 모든 사람에게 의사 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할 수 있으며 혁신하고 변화하는데 용이하다는 것이다. 반면 권한과 책임이 분산된 만큼 두 가지의 큰 단점이 있다. 첫째로, 각 사람의 비전이 맞지 않으면 팀간, 개인간의 분쟁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진다. 그래서 이러한 회사에서는 core value나 mission statment가 매우 중요하다. 두번째로, 모든 구성원이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개개인의 직원들에게 결정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잘못된 결정을 내릴 경우에 회사가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Rank-driven organization에서의 이상적인 구성원은 시키는 일을 질문은 가장 최소로 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빠르게 잘 해내는 사람이다. 반대로 Role-driven organization에서의 이상적인 구성원은 항상 질문하고 의견을 내고 의사 결정을 잘 하여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리스크를 최소화 하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Rank-driven organization에서는 성적으로 사람을 뽑으면 잘못된 사람을 뽑을 가능성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미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Role-driven organization에서는 특정 분야의 능력이 뛰어나고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이 한 사람을 뽑기 위해 10명 정도의 기존 직원을 투입하여 한 사람의 특정 역할 업무 능력과 회사 문화에 대한 이해도 등을 검증하는 이유이다.

Rank-driven organization과 Role-driven organization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Rank-driven organization

  • 특징: 중앙 집권적 의사 결정
  • 호칭: 과장, 부장, 사장 등
  • 장점: 빠른 의사 결정과 수행.
  • 단점: 변화와 혁신에 취약함. 소수 의사 결정권자의 능력에 따라 조직의 퍼포먼스가 좌우됨.
  • 이상적 구성원: 내려온 일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사람.

Role-driven organization

  • 특징: 각 구성원에 분산된 의사 결정.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의사 결정.
  • 호칭: 엔지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엔지니어링 매니저, CEO, COO, CFO 등
  • 장점: 변화에 따르게 대처할 수 있음.
  • 단점: 각 조직원의 목표와 가치관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많은 혼란이 야기됨. Mission Statement, Core Value등이 중요함. 각 개개인의 의사 결정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채용에 많은 비용 발생.
  • 이상적 구성원: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지고 신중하고 탁월한 의사 결정을 하여 자신이 맡은 업무를 완벽히 해 내는 사람.

우리의 프로젝트 vs. 내 프로젝트

‘위’에서 결정한 일에 대한 빠른 수행을 하는 Rank-driven organization에서는 빠르게 우리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 일을 빨리 하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 전체가 일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개인이 빠르게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인센티브가 적기 때문에, 회사 전체에 대한 충성심과 애사심 등이 중요한 동기가 된다. 또한 Rank의 경계를 넘는 것은 회사 전체의 업무 수행에 위험요소가 되기 때문에 능력있는 개인에게 금전적, 지위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반대로 Role-driven organization에서는 각 개인이 회사의 미션에 맞는 프로젝트를 선택하여 자신이 책임을 맡는다. 성공하면 인센티브가 주어지지만, 실패하면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 된다. 팀을 구성하여도 개개인의 책임은 명확하게 정의하여 분배한다. 그러므로 일을 빨리 하게 되면 그만큼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돕는 것은 그 사람의 책임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 되므로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리고 일 못하는 구성원은 팀이 도와주거나 하는 일이 Rank-driven organization에 비해 훨씬 적은 채로 자연히 도태된다.

개인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Role-driven organization에서는 어떠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 직원들을 뽑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많은 연봉과 주식을 준다. 그렇지만 Rank-driven organization에서는 개인의 퍼포먼스가 최고가 아니어도 팀 전체의 조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많은 대가를 지불할 이유가 약하다.

정리하자면, 조직을 위해 ‘우리'의 프로젝트를 위해 일을 하면 조직을 위해 충성심을 가지고 남의 일까지 최선을 다해 맡는 사람이 성공하게 된다. 반면 각자가 ‘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일을 하면, 맨 처음 가졌던 질문들에 대한 답이 나온다. 내 일만 끝내면 다른 사람의 프로젝트와 관련 없이 퇴근할 수 있고, 상하 관계도 의미가 없어진다. 또한 내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내 프로젝트를 뛰어난 프로젝트로 만들기 위해 밥도 안 먹고 밤새 일에 매달릴 수도 있으며, 반면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여유롭게 일하는 걸까, 밤낮 없이 일하는 걸까?

굳이 답을 하자면, Role-driven organization에서는 내 프로젝트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내 맘대로 책임지고 일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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