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단상

허진호 (Jin Ho Hur)
hurx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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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min readSep 20, 2015

얼마전 어느 스타트업 컨퍼런스에서 ‘아시아의 유니콘’에 대한 패널에 참석하는 기회에 유니콘 현상에 대한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볼 수 있었다.

WSJ이 유니콘 현황을 실 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들 정도로 유니콘이라는 현상이 벤처 업계의 화두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까지는 ‘유니콘’ 스타트업들 자체에 대한 팩트와 트렌드만 생각해 왔지만, 이번 기회에 이런 트렌드가 왜 생겼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한번 정리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대부분 ‘기업 가치를 $1B 이상으로 평가받은 비상장 스타트업’이라는 정의에 집중하면서, ‘과연 비상장 스타트업이 $1B 이상의 가치를 받는 것이 적정한가? 2000년대와 같은 버블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현상의 배경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니콘들 자체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그를 둘러싼 VC 펀딩 시장의 전반적인 현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현상을 가장 잘 분석한 자료가 Andressen Horowitz에서 작성한 US Tech Funding 현황 자료이다. 이 자료에서는, 지금의 펀딩 추세가 2000년의 버블 시기와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 설명하고 있으니, ‘지금의 추세가 버블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EY, Pitchbook, NVCA 등의 미국 Venture Capital report를 같이 보면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Y Venture Capital Insight 4Q14
Pitchbook Annual US Venture Industry Report

이들 자료에서 주목할만한 몇 가지 포인트를 뽑아 보면:

NVCA annual report에 의하면 2014년 기준으로 미국 VC 펀딩은 약 $48B 정도로 이전 몇 년간의 $30~35B와 비교해서 60% 정도 늘어난 금액이다.

이중 Top 20 VC deal이 $11B 정도로 전체의 약 25%정도를 차지한다. 이는 ‘14년 약 4,300개의 deal중 0.5%에 전체 투자금액의 1/4이 투자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들이 바로 ‘유니콘’인 셈이다.

하지만, 이들 deal은 과거라면 IPO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을 기업들이 IPO 대신 private funding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을 quasi-IPO 혹은 private-IPO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 tech IPO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상당히 위축된 이후, 예년의 추세까지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Tech IPO since 1980 (a16z)

여기에, 기존에는 (late-stage라고 하더라도) 스타트업에 투자하지 않았을 자산운용사 등의 non-VC 자금이 이 시장에 유입되면서 late-stage 펀딩의 규모를 키우고, 이들이 소위 유니콘을 탄생시켰다 (z

US top 20 deals: IPO vs. private (a16z)

우리나라의 유니콘 deal인 옐로모바일과 쿠팡의 경우를 보면, 옐로모바일은 $1B 가치로 Formation8이라는 전통적 실리콘밸리 VC가 투자하였지만, 쿠팡은 (소프트뱅크 투자 직전) 최근투자에서 블랙록이 주도하는 전통적인 자산 운용사의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이 현상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오히려 다른 나라의 VC 투자 규모를 보면, 2014년에 중국이 예년의 $5B 규모에서 훌쩍 커진 $15B, 인도가 예년의 $2B 규모에서 $5.5B 규모로 커져서, 이 두 시장에 최근 VC 투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VC funding by regions (EY)

WSJ 통계 상, 120여개의 유니콘 중 중국, 인도 2개 나라에 20% 정도의 유니콘이 있는 것도 이렇게 급격히 늘어난 VC 투자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과 인도 시장은, 아직은 VC money의 투자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 자금의 구성에 대한 분석은 좀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VC 투자 시장에서 유니콘을 제외하고 보면. 여전히 seed, Series A, Series B의 deal size는 지난 5년간 50% 정도 커지기는 했지만 과거의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고, deal의 수도 지난 5년간 seed/angel 투자의 수가 많이 늘었지만, 다른 stage의 deal 수는 크게 변화가 없다. VC 투자의 exit 현황을 보면, 여전히 90%이상이 $500M 이하 규모이고, 특히 $50M 이하의 미니딜이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고, IPO 대 M&A의 건수, 금액 대비 비율도 여전히 1:5~6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US VC funding by stages (Pitchbook)

이는 일부 유니콘들을 제외한 나머지 VC 투자 환경은 기존의 흐름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유니콘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나는 이 것이 미디어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buzzword라고 본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유니콘을 우리 시장에서 어떻게 만들것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우리의 벤처 투자 환경에서 아직 갖추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이를 보완하면서 탄탄한 벤처 투자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 중 몇 가지만 짚어 보자면:

연간 1.5~2조 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 벤처 투자의 자금원 중 아직도 1/3정도가 정책자금이고, 또 미국은 엔젤투자대 VC 기관 투자의 비중이 대략 5:5 정도가 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엔젤투자 비중이 10%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직 국민연금 등의 연기금, 대기업등의 기관 투자자, 개인의 엔젤 투자 자금 모두 벤처 투자 시장으로 충분히 유입되고 있지 못하는 현상의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원인을 짚어 올라가 보면 궁극적으로 국내에서 제대로된 exit 시장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코스닥 시장은 나름 활성화되어 있지만, M&A에 의한 exit은 기본적으로 거의 없다. 미국의 경우, 건 수 기준, 금액 기준 모두 IPO 대비 M&A 비율이 1 : 5~6의 비율이지만, 국내는 거꾸로 5:1 내지 잘 봐 주어도 3:1 수준에 머무른다. 이러한 활발한 exit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 벤처 투자 업계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US VC exits by type & by size (Pitchbook)

그 외에 여러 가지 포인트는 이 글의 주제라기 보다는 다른 기회에 계속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사족: 그럼 유니콘이라는 현상은 왜 생겼을까

(나의 짧은 경제학 지식으로 보기에는)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미국에 상당한 규모의 양적 완화를 통해 유동성이 급격히 늘어 났다. 금융 위기 이후, FRB의 기준 금리는 거의 제로 금리 수준에서 운영되는 반면, 기존에 높은 수익성을 보장해 주던 (그래서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다양한 파생상품은 높은 리스크로 적절한 투자 대상이 되지 못하다 보니, 많은 투자 자금이 투자처를 찾아 신흥국 및 새로운 상품을 찾아 다니게 되었다. 이중, 다른 투자 상품에서 충분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자금의 일부가 지난 5년간 벤처 투자로 꾸준하게 유입되었는데, 이 자금이 리스크가 높고 회수 기간이 긴 초기 VC 펀드에 유입되기 보다는 안정적이고 회수 기간이 짧은 late-stage 투자에 그 자금이 몰리면서, quasi-IPO라고 불릴만한 투자 현상과 유니콘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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