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스타트업에게 하는 몇 가지 잔소리

사실 나는 이런 잔소리하는 것을 좋아 하지는 않는다.

‘꼰대가 되지 말자’가 50대가 된 이후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모토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그리 살갑고 친절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투자자로서 관점이 바뀐 후 예전보다 훨씬 많은 스타트업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사업 계획 피칭을 듣고, 그 과정에서 지난 20년간 내가 했던 잘못된 판단, 실수, 시행 착오 등이 새록새록 떠오르다 보니,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점 몇 가지에 대해서는 잔소리를 좀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최소한으로 해 보겠다.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 너무 많이 다니지 마라

많은 스타트업을 만나고 좋은 deal flow를 찾기 위하여,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 참석한다.

그렇게 지난 1년간 내가 직접 들은 스타트업 피칭이 대략 200~300개 정도 된다. 나는 이게 본업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가능하면 많은 행사에 참가하고 직접 피칭을 들으려고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에게는 이런 행사 참가가 본업이 아니다. 그러니, 투자를 진행하려고 할 때 잠재 투자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 관련 업종의 다른 스타트업을 만날 수 있는 기회 등 본업에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가능하면 이런 행사에 시간을 쓰지 마라.

어떤 스타트업의 피칭은 최대 7번 정도까지 들은 적도 있다. 대부분 여러 스타트업 행사에서였다. 또 다른 스타트업은 2015년에 3개의 큰 스타트업 행사에 참가하였고, 그 중에 한번은 최종 선발되어 팀 전원이 유럽에 3개월 나가 있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3개월 나가 있었던 유럽이 그 스타트업이 주력하려던 시장도 아니었고, 그냥 그 행사에서 선발되어 보내 주어서 갔던 것이었다.

이들을 보면서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본업은 언제 하지?”

모든 기업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늘 가장 부족한 리소스는 CEO의 시간이다.

모든 스타트업 행사는 절대 스타트업만 위한 행사가 아니다. 모든 행사는 주관 기관의 interest에 따라 움직이지, 절대 스타트업의 interest를 위하여 움직이는게 아니다. 그러니, 이런 행사에 1달 넘게 참가하여 1등 상금 몇 천만원을 받는다고 해도, 거기에 투입되는 여러분의 시간을 생각하면 절대 여러분의 스타트업에 도움이 되는게 아니다.

예전 다른 글에서 이야기하였던 것이지만, “뒤늦게 시작한 지마켓을 성공시켜 선두주자 옥션보다 더 크게 성장시킨 구OO 대표는, CEO들이 많이 하는 일체의 외부 모임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자리에서 사이트의 사용자 데이터, 프로모션 결과 등의 데이터를 집요하게 팠다고 한다. 나는 구OO 대표의 그 집요함이 지마켓이 후발주자로서 옥션을 따라잡고 결국 더 커지게 만든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그런 행사 등에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본업에 더 집중하라.

스타트업 답게 움직여라

1번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데,

먼저, 엑셀러레이터 입주를 너무 좋아하지 마라.

나는 잘 꾸며진 엑셀러레이터 공간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어려운 초기 스타트업에게 그런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너무 고맙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잘 꾸며진 좋은 환경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 잘 성장하여 졸업하면 일반 사무 공간으로 나가면서 환경은 오히려 더 안 좋아질텐데, 그때 직원들이 느낄 박탈감을 어떻게 감당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말 그대로 ‘차고’까지는 아니더라도 humble한 공간에서 humble하게 시작해서 키워 나가 보라. 신혼 부부가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하여 몇 년 같이 고생해서 마침내 작은 아파트를 사서 입주하면서 느끼는 성취감, 뿌듯함은 비단 신혼 부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이다.

또, 스타트업이면 스타트업답게, 전략, 계획, 일정, 추진 등을 전투적으로 해 보라.

정부 지원 자금 등을 많이 받으면서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스타트업의 1년간 계획을 들었는데 대략 그 추진하는 페이스가 정부 자금으로 프로젝트 진행하는 페이스였다. 개념 정립하는데 3–4개월, 프로토타입 만드는데 6개월, CBT에 3개월 등등. 내가 보기에 완성품을 시장에 런칭하기까지 6개월 이내에 끝내도 모자랄 프로젝트를 1년 이상의 일정으로 잡는 경우를 보면서, ‘이건 스타트업이 아닌 정부 출연 연구소나 대기업에서 일하는 페이스인데’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평시 CEO는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를 세운다. 전시 CEO는 적과 싸우느라 너무 바빠서, 일상이 전투인 노점상으로 살아 본 적이 없는 컨설턴트가 쓴 경영서 같은 건 읽을 시간이 없다.”

벤 호로비츠, “하드씽"

벤 호로비츠의 ‘하드씽’에 있는 한 구절이다.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 하지 않지만, 벤 호로비츠의 책은 읽는 내내 ‘맞아, 맞아', ‘그렇지' 하면 무릎을 치며 읽었다. 직접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을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본 CEO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창업에서부터 어느 한 순간도 전시가 아닌 적이 없는게 스타트업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엔가는 전시 상태에서 해제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스타트업에 있으면서 그런 상태를 경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니, 매사에 ‘스타트업답게’ 전시 CEO로서 움직여라.

사업계획서는 사업계획서답게

계속 관련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요즘 보는 스타트업의 피칭을 보면, 사업계획서가 아닌 대중 대상의 행사용 피칭 슬라이드를 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전체 슬라이드 중 대략 60%를 사업의 배경 설명과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고, 마지막 5장 정도에 중요한 사업계획 관련 내용을 압축해 놓은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에게 꼭 설명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서 피칭 테크닉을 가르치는데, 여기에서 스토리텔링과 발표 스킬에만 집중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서 그런 듯 하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한 페이지에 많아야 1~2줄의 텍스트만 있는, 소위 ‘스티브잡스’ 식의 슬라이드를 사업계획서로 피칭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어필하는 것이 주 목적인 스타트업 대회용 슬라이드와 잠재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계획서는 엄연히 다르다.

몇 억에서 몇 십억을 투자해야 하는 투자자는, 그 사업의 구조가 어떻게 되고 어떤 경쟁 환경에서 어떤 전략으로 이겨서 어느 만큼의 결과를 낼 것인가에 관심이 있지, 스티브잡스의 ‘One More Thing’과 같은 화려한 스토리텔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제발 투자자에게 보여 줄 사업계획서는 사업계획서답게 작성하라.

가장 좋은 참고 자료는, Sequoia Capital의 자료를 참고하거나, 스타트업 펀딩에 관한 다른 자료라도 참고해서 사업계획서 답게 만들어 오기 바란다.

(아마, 앞으로 몇 가지 잔소리를 더 추가하게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