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그 문돌이는 예술을 버리고 기술을 택했나

(이 글은 내가 철학을 그만두고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취업하기까지 느낀 점 에서 영감을 받아 쓰였습니다. 저를 돌아볼 기회를 주신 Chan woo Park 님께 감사 인사를 드려요)

TL;DR: 바쁜 현대인을 위한 간단 요약

소설과 시나리오가 전공이었지만 졸업과 동시에 때려치우고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패스트캠퍼스의 웹 프로그래밍 스쿨로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생계형 풀스택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취직하고 싶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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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체능 학과가 그렇겠지만 ‘순수’ 딱지가 붙은 전공은 학생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죠. 무시무시한 작업량도 한몫 하겠지만 진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건 아무리 공부를 계속해도 작품이 좋아지고 있긴 한지 판단할 수 없다는 무력감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 쓰기가 갑갑해질 무렵, 간단하게 에세이나 연재하려고 워드프레스 블로그를 하나 열었던 게 계기였습니다. 처음에는 가입형 워드프레스로 시작했는데 기본으로 제공해주는 테마에서 손댈 수 있는 게 거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폰트 종류나 타이틀 정도? 뭔가를 원하는 대로 만들려면 php 코드를 손대야 하는데 html, css 도 모르던 순수 문돌이가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쉽지만 이번 생은 탈락!

구글링을 거듭한 끝에 ‘워드프레스는 설치형으로 해야 돼!’ 라는 글을 보고 카페24 호스팅을 이용해 설치형 워드프레스로 이전했습니다. 물론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가입형과 달리 플러그인을 자유롭게 쓸 수는 있었지만 (포스트 갯수가 10개도 안 되는데 구글 애드센스부터 달았답니다)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주무를 수 없다는 점은 여전히 똑같았습니다. 포스트를 어떻게 백업해야 되는지도 몰라서 일일이 커서로 드래그를 해서 워드 파일에 옮겨 담고는 했죠.

고생을 하다 보니까 오기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때려잡자는 생각으로 웹 개발 하는 법을 무작정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학기를 보내는 와중에도 생활코딩의 html, css 동영상 강의를 보고(이 자리를 빌어 이고잉 님 감사합니다), 괜히 CLI 환경도 다뤄보고 싶어서 iTerm, oh-my-zsh, Homebrew 같은 것들을 쓸 줄도 모르면서 설치해댔죠. 도스 창 같은 화면에서 글씨가 주르륵 흘러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게 낙이었습니다.

뭐 이런 느낌이랄까요… via GIPHY

소설가가 되는 건 오랜 꿈이었지만 졸업이 다가올수록 그만둬야 한다는 확신이 강해졌습니다. 일단 생계 유지가 어렵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죠. 본업을 따로 갖춘 다음 부업으로 글을 써야만 했는데, 글쓰기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게 되면 (글만 써 온 녀석이 그런 일을 찾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차츰차츰 글을 놓게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한계를 극복해보려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웹드라마 제작사에 취직해서 여러 공기업 웹드라마에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친한 교수님의 소개를 받아 스토리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죠. 두 가지 일 모두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웹드라마 제작사에서는 계약서도 쓰지 못한 채 말도 안 되는 열정페이로 대본을 찍어내야 했고 (감독 입장에서는 경력도 없는 제게 일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자비를 베푸는 일이었겠지만) 스토리 마케팅 회사는 3개월 만에 일거리가 끊겼습니다.

흔한 스타트업의 최후.jpg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한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가 작가의 꿈을 접는 진짜 이유는 아니겠죠. 돌아보자면, 우선은 글을 쓸수록 저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작품을 위한 소재로 보게 된다는 점이 싫어졌습니다. 또 저는 소설로 제 삶을 풀어내면 사람들이 저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고, 또 그래주기를 바랐거든요. 그런데 소설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일의 결과물로 자기를 대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하루하루를 얼마나 성실히 보내는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어떤 품성을 만들어가는가로 결정되는 것이지 그걸 외면하고 자기만의 동굴 속에 틀어박혀서 “내가 이만큼 해냈으니 난 대단한 사람이야. 그걸 몰라보는 사람들이 멍청한 거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글쓰기는 앞서 말한 중2병 — 동굴에 빠지기 쉬운 일인지라 (물론 좋은 글을 쓰시는 작가분들이 많이 계시니까 저만의 문제인 것으로)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발에 재미를 붙이면서 이쪽으로 커리어를 전환할 것인가? 를 결정할 때에도 앞서 세우게 된 기준을 놓고 고민했습니다. 개발과 글쓰기는 비슷한 점이 많거든요. 그 세계에서만 쓰이는 언어를 익혀야 하고 혼자서 코드와 씨름하는 시간을 견뎌야 하죠. 그러니 직종만 개발로 옮길 뿐 저만의 아집에 갇혀 사는 삶의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는 건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개발을 선택한 이유는, 프로그래밍은 ‘기술’에 속하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결과물을 남기게 되리란 기대가 있어서였고 (‘예술’은 그렇게 되지 않을 확률이 높죠), 개발자들의 세계는 작가들의 세계보다 훨씬 소통의 범위가 넓고 객관적인 평가 체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였습니다. 멍청한 비유이긴 하지만 한국어를 쓰는 사람보다 자바스크립트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는 더 많아 보이기도 하구요. 아무도 읽지 않을 원고를 상자에 쌓아가는 것보다는 괴상망측한 코드라도 깃헙에 올려 놓고 차근차근 리팩토링하는 게 제가 발전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좋아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치며: 결국 이 블로그는 어떻게 만들었니?

패스트캠퍼스에서 Django를 이용한 백엔드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배우고, 수료한 다음에는 독학으로 프론트엔드 환경을 배우면서 React를 익혔습니다. 이 블로그는 React 기반 정적 웹사이트 생성기인 Gatsby로 만들었습니다. 기존의 정적 웹사이트 생성기와 달리 거추장스러운 템플릿 엔진이 없고, 따로 서버를 두지 않는데도 페이지 컨텐츠를 XHR로 받아오도록 컴파일해줍니다! 그래서 보통 React를 다루듯 완전 자유롭게 사이트를 설계하면서도 그냥 마크다운 파일을 포함시키는 것만으로 간편하게 컨텐츠 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 만세!

물론 리액트가 전부는 아니죠 ㅎㅎ 프론트엔드는 취존입니다

저장소 주소는 이겁니다.

이 공간에서는 제가 배운 내용이나 반드시 알아야 할 팁을 완성도 높게 정리해서 올려보려고 합니다. 가끔씩은 서평이나 에세이도 양념처럼 올려볼 생각입니다. 그럼 앞으로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Originally published at www.huskyhooch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