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다가, 김혜자의 아들로 나오는 이광수가 묻는 질문이 있다.
“엄마도 엄마가 있었어?”
나도 극 중의 이광수처럼 우리 엄마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 분명히 그녀도 어떠한 한 가정의 어여쁜 딸이었고, 어렸을 적 무언가가 되겠다며 꿈을 꾸던 순진한 소녀였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나의 엄마로서 본인의 소임을 다하고 있어, 그런 아름다운 시절의 꿈들은 일상의 고단함에 빛을 바랜지 오래일 거라 추측할 뿐이다.
7월 첫째주 부터 일주일동안 미국에 계시는 작은 어머니 댁에서 머물렀다. 숙모님께서 차려주는 한국식 밥상에 그저 반갑기만 하여 밥 한 고봉과 반찬들을 순식간에 비우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리석게도 각종 나물들과 코다리에 가려져서 작은 어머니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하여 제 입과 눈만 즐거우면 눈 뜬 장님이 되어 버린다. 처음 며칠간은 작은 어머니에 대해 궁금하지가 않았다. 그저 이 외지에서 내 몸 하나 친척네에서 이리도 편히 쉴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우연히 피아노를 치는 사촌동생을 보았다. 피아노 소리에 저도 취해 눈을 감고 건반을 두드리는 데 그 소리가 참 아름다웠다. 문득 연주를 듣다 작은 어머니께서 얼마나 이 아이를 위해 고생하셨을까에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이 피붙이 하나 없는 미국 땅에서, 약간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사촌 동생이 그 만큼 피아노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 라는 의문이 그 생각의 물꼬를 텄다. 자식을 위해서 그 드넓은 바다를 건너 이 곳에 와서 온갖 외지인으로 받이들이게 되는 역경들은 꿋꿋이 이겨내고 그 누구에게도 당신이 힘들다고 얘기하진 않으셨다. 내가 여쭈어도 그저 당연히 견뎌냈다고 변명하실 뿐이었다.
“새끼가 뭔지.”
우리 엄마가 늘 달고 사는 말이다. 아마 작은 어머니도 역시 같은 마음이셨지 않을까, 다른 엄마들 처럼. 여기를 떠나기 하루 전날 같이 산타모니카 해변에 갔다. 거기서 가녀린 어깨와 화장기 없는 얼굴로 태평양을 마주보며 서있는 작은 어머니를 보았다. 내가 유학생활을 하다보니 참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쉽지않다고 느끼는데, 순간 그 누구에게도 한 번 내색하지 않으시는 작은 어머니는 당신이 마주한 그 바다보다 더 큰 사람처럼 보였다. 어느 네 인생 하나 쉬운 건 없다고 하지만, 엄마라는 건 정말 대단한 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