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할 연서

잘 지내는지. 두 번째로 편지를 써보네. 그대가 호주에 간 건 페이스북을 통해 봤어. 거긴 여름이겠지…? 나는 서울을 벗어나 캐나다 밴쿠버에 왔어. 그렇게 꿈꿔왔던 유학을 드디어 오게 된 거야. 뭐 전하지 못할 편지는 써서 뭐하나 싶지만, 그동안 내가 뭐하고 살았나 적어 볼게.

그렇게 헤어지고 난 뒤 나는 너무 힘든 겨울과 봄을 보내었고, 그 봄이 다 지나갈 무렵엔 서울을 돌아다녔어. 마로니에 공원, 낙산 공원, 하늘 공원, 예술의 전당, 외대앞, 명동성당, DDP등. 그대와 머문 그 자취들을 다 찾아 갔었어. 정말 괴로웠던 건 어느 장소 하나 빛바래지지 않던 내 기억이 점점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었다는 거.

그렇게 돌아다니던 와중 기말고사 기간이 왔었어. 당시 나는 팀플 때문에 교수님 연구실을 수 없이 들락날락 했지. 그리고 교수님과 약속한 지 5분전 그대에게 전화가 왔었어. 받기 싫어 안 받은 건 아니었고, 교수님과의 약속을 펑크낼 수 없었기에, 그리고 마침 이어폰도 망가졌었지. 그래서 못받았어. 그대가 싫어서가 아니었어, 그 순간에도 그대에게 연락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깐. 그리고 다시 연락은 오지 않았지.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난 뒤 나는 대학원이든 뭐든 가야겠다 싶어 강남 해커스를 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했어. 그러던 와중 아침에 스타벅스에서 텀블러에 아이스커피를 담고 나오다 양복을 차려입은 그대와 마주쳤지. 당시 나는 학원 생활에 쩔어있어서 반바지에 반팔에 그냥 대충입었었던 거 같아. 수줍게 안녕을 하고 그대를 보고 난 뒤, 일주일 동안 펜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어. 같이 스터디하던 애들이 괜찮냐고 물을 정도였으니깐.

그리고 깨달았어. 계속 이 서울이라는 공간에 있으면 그대와 마주칠 가능성이 또 있겠구나 싶었지. 그리고 그대가 누굴 만나는 듯한 카톡 프로필 상태였기에, 나는 그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어. 마음 여린 거 아니깐. 그래서 한국을 벗어나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 마지막으로 서울역을 들른 뒤에, 나는 밴쿠버로 왔지.

벌써 밴쿠버에서 산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대가 잘 살고 있는 지 괜스레 생각이 난다. 연말이라 그런가. 그대가 참 좋은 사람이었나봐. 이제 내 기억은 이렇게 수정되고 있는 거 같아. 그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에 적어놓았듯이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그대를 더욱 잊기가 힘든가봐. 미안해. 혼자 이렇게 미련스럽게 굴어서. 쿨하지 못해서.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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