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일, 그리고 성신여대 그 거리

차디찬 추위가 마지막으로 휩쓸던 2014년 2월의 마지막 주, 성신여대 근처 롯데리아를 코너로 끼고 그의 실루엣을 보고 설마하며 돌아서던 게 어느덧 2년이 되어간다. 그를 만난 덕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가장 행복했던 20대를 보내게 되었고, 그는 내가 27살이 되기 바로 2달 전 이별을 고했었다. 그에 대해 이제 정리 할 만한 시간이 지나 28살이 2달 앞으로 다가왔다. 옷깃만 살짝 스친 사람마냥 그냥 갔구나 하고 지낸 덤덤한 세월은 아니었다.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면 거기서 밤새 붙잡고 찡찡댔었지, 왕십리를 지나면 그의 집까지 가는 길에서 서로의 가족 얘기를 하며 깔깔거리며 웃고 가기도 했었지, 외대앞을 지날 때면 사거리에서 날 보러 길 건너에서 웃고 있었지. 서울 곳곳에 어디 하나 그 흔적 없는 곳 있을까 싶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정말로 어마어마 했었던 나에게 누구를 용서한다는 건 기적같은 일이었다. 20대 초반엔 나 자신을 용서하는 데 그리 많은 힘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이 아파하고 울던 20대 초중반의 그 기억들을 돌이켜보면 지금와선 왜 그랬을까 싶다. 그는 나와 달랐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넉넉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내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꼬집어주며 나를 바로잡아주었다. 늘 난 천방지축이고 자유분방해서, 그의 고삐가 없었으면 혼자 자취하면서 엄청 고생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기억의 면면을 보자면 항상 기분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짖궂은 장난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고 틱틱 댄 적도 있었다. 나 때문에 화가나서 여행가서 반나절을 말을 안하고 있어 답답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도 인간은 (혹은 나란 존재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망각의 동물이다. 그것도 어쩜 누가 콕콕 찝어준 것 처럼 불행한 기억만 싹 지워버린다. 이 머릿속 지우개 덕에 더욱 그를 잊지 못하게 만들고, 오히려 내가 무언가 더 잘해줄 걸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남아 맴돈다.

오늘 그 성신여대 거리를 왔다. 다시는 그런 기적같은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애잔하다. 얼마 안 남은 크리스마스에 혼자라고 슬프진 않다. 문득 그 롯데리아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너만 그 자리대로 불을 밝히고 있구나.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지난 1년간 나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운명적인 누군가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또 다시 그런 따스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은 앞선다. 그를 처음 만났던 스타벅스에서 나오는 캐롤은 제법 구슬프다. 행복하길, 그대에게 받은 행복 고마웠다고 다시 말해주고 싶다. 이제 그를 잊으러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