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협동조합은 다르다

만리재공동주택협동조합과 이웃기웃협동조합

모든 협동조합은 다르다. 조합원의 필요는 같더라도 그 필요가 존재하는 시간과 장소, 환경이 다른 탓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협동조합이 생존과 자립을 위해 더욱 고군분투 할 수록 그 차이는 더욱 오롯이 드러난다. 변화는 저항을 불러온다고 했던가. 새로운 방식은 새로울수록 더욱 많은 의문을 남긴다. ‘그것이 협동조합인가?’ 협동조합은 자신들의 필요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그 정의는 그들 스스로의 몫이니 가만히 두기로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가능했던 방식이 오늘날에는 불가능하기도 하고 과거에는 생각도 못했던 방식이 오늘날 새롭게 조명 받는 현실을 보면, 그 차이의 충돌과 갈등과 화해속에서 협동조합의 새로운 미래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대답은 아직이지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야심찬 협동조합이 있다. 바로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막쿱과 홍은동 이웃기웃협동조합이다.

ⓒ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예술인들이 사는 마을,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서울 마포구 만리동 달동네에 자리 잡은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의 탄생은 일반 협동조합과 조금 다르다. 서울시가 구상하고 실소유주는 SH공사이지만 사는 사람들은 예술인이며 주택을 관리하는 것도 주민 29가구 100%가 가입한 주택관리협동조합이다. 민관협력으로 탄생했다고 할 만하다. “만약 예술인들이 지역사회 안에 뿌리내리고 안정된 공간에서 창작활동을 활발히 펼칠 수 있다면 지역사회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의 이은서 홍보이사의 말이다. 이은서 이사는 한국사회가 가지는 주거문제와 예술인의 창장활동, 지역사회의 공동체 문제가 하나로 모아지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 입주를 마치고 오프닝쇼를 열었는데 그것도 같은 일환이에요. <만리재로27길>이라는 주제로 30일, 31일 이틀 동안 미술, 음악, 퍼포먼스를 펼치며 동네에서 집들이를 했죠.” 이들의 손길이 깃든 공간 곳곳에서도 예술인의 감성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건축과 영화가, 연극과 미술이, 문학과 음악이 만나 일상을 공유하고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면을 펼쳐보고 싶어요”

ⓒ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집, 청년에겐 여전히 높은 문턱

한겨레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주거빈곤율이 가장 높은 세대는 청년이다. 고시원, 옥탑방, 반지하 등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공간에서 살고 있는 청년의 비율은 서울시만 36.3%에 달한다. 관악, 성동,광진구 등 대학가 근처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른다. “한국에서 주거비가 워낙 비싸다 보니 청년들이 살 수 있는 집이 없어요. 특히 청년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인 현실을 고려하면 서울에서 안정된 주거공간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이웃기웃협동조합의 임경지 이사장은 주거복지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SH가 안정된 주거공간을 공급하고 주택의 자주관리를 이웃기웃 협동조합이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의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조건은 신혼부부, 부양가족, 자산 이런 걸로 나누다보니 한국사회에서 주거 빈곤이 가장 심한 청년은 정작 입주기준에서 배제됐었죠. 이번 청년세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로 보고있습니다.” 아직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청년에게 주택의 문턱은 높다. 적은 자본으로는 월세보증금 정도 뿐이지만 그마저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실제로 이웃기웃협동조합에 입주한 31가구 전부 모두 1인 가구이며 그중77%가 여성이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사실 주거는 복지의 영역이잖아요. 터무니없이 비싼 주거비를 청년에게 부담하게 하고 대다수는 비정규직밖에 안되는 현실에서 민관이 함께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건 반가운 일이죠.”

ⓒ 이웃기웃협동조합

공공과 민간의 파트너십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공공주택

민관협업으로 만들어졌다면 관의 이점은 무엇일까? 임경지 이사장은 먼저 관의 이점으로 다른 공동주택에 비해 SH측의 행정관리가 많이 줄어든 점을 꼽았다. “일단 SH공사 측에서는 관리비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들죠. 웬만한 문제는 조합원들이 함께 모여서 해결하고 관리사무소로 나갈 인건비도 없고 문제가 생겨도 일일이 SH에 민원을 넣기 보단 조합을 통해 전달하니까요.” 민간의 이점으로는 단연 안정적인 주거다. “그런데 전담자도 없이 생계를 각자 꾸리는 조합원들이 스스로 자주 관리한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예요. 매번 모여야 하는 회의의 수 만큼이나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이웃기웃협동조합은 공동체 분과, 운영분과, 주택분과, 층별모임, 호수모임 등 매달 반상회 1번. 층별모임은 격주로 모임을 가진다고 했다. 주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서이지만 일반 아파트에서 살았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민간과 관이 서로가 서로에게 이로울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것일 것 같아요.” 조합원간의 협동만이 아니라 SH공사와의 협동도 중요한 변수라는 얘기다.

ⓒ 이웃기웃협동조합

소통과 훈련이 필요하다.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도 입주단계부터 조합원의 의지를 상호확인하고 교육을 통해 소통의 기회를 가졌다. “처음 예비입주자들과 모여 협동조합교육, 공동체교육, 비폭력대화를 3개월 정도 훈련했어요.그리고 입주자들은 모두 조합원이 되어야 하고 협동조합의 각종 역할과 책임도 반드시 준수해야 하죠.” 귀찮다고 느끼는 조합원은 없을까? “있을거예요. 사실 출근을 하면 일은 일, 삶은 삶 이렇게 공간적으로 분리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주택단지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다 보니 일과 생활, 삶이 합쳐지니 더 귀찮게 느껴지는 것도 있어요. 집에서는 쉬고 싶은데(웃음).” 그러다보니 협동조합의 예민한 갈등구조가 주택협동조합에서는 더욱 복잡한 차원으로 드러날 수 있어 이를 관리하기 위한 소통과 훈련이 필요하다. “갈등이 생기면 복도에서, 1층에서 주차장에서 계속 만나는 거잖아요. 여기는 생활공간이니까. 그러니 더 대화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훈련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곳에서 최대 20년간 장기전세로 살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자발성이 더 중요해진다. 부담은 줄이고 즐거움은 높이는 일. 앞으로의 과제다.

ⓒ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

가장 큰 장점은 심리적 안정

아직 입주를 다 마치지 못한 가구도 있을 만큼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은 이제 막 첫 발을 내딛는 중이다. 주택협동조합 자체가 흔치 않는 한국의 빈곤한 풍토 속에서 주택관리를 조합원들이 함께 하겠다는 시도만으로도 이미 많은 주목을 끌고 있다. 또 이 시도가 지역주민들만의 힘이 아닌 서울시, SH공사,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면서 과거의 주택협동조합과는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럼 주거 안정성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이 제일 크죠. ‘어린이집 한 번 만들어볼까?’ ‘뭐 해볼까?’ 이런 상상과 제안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건 곧 떠나갈 사람이 아니라 여기서 앞으로 계속 살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잖아요.” 이웃기웃협동조합도 이웃 간에 서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문화가 색다른 변화라고 했다. “보통 20~30대 혼자 사는 여자가 청소하더라도 문을 열어두고 살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그게 되더라고요. 특별한 방범기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청소할 때, 환기할 때 문을 열어두고 사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1인가구로만 이루어진 만큼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서로 음식을 나누거나 미처 다 쓰지 못하는 식재료들을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새로운 문화들이죠. 다른 공동주택과 똑같이 소유는 SH이지만 문화나 책임감은 다른 것 같아요. 한 번은 주차장에 바퀴벌레가 나왔는데, 전 SH에 민원을 넣을 생각만 했는데 조합원들은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 회의하고 약을 사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조금 놀랐어요.”

아테네인들은 자치(Autonomy)를 ‘삶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질서는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기에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다중이해관계자의 한 형태처럼 공공기관이 주요한 이해관계자로 참여해 주거문제완화와 공공주택의 효과적 관리를 추구하는 이들의 목표는 새로운 것이다. 소유구조가 일반협동조합과는 차이가 있지만 협동조합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일정한 질서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리라. 잘 알려져 있다시피 협동조합은 7원칙 만큼이나 자치와 자율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제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마당에 무언가를 정의하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주택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주민들이 스스로의 질서를 만드는 것은 한국사회가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지역민주주의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훌륭한 기회임은 분명하다. 주택문제와 주택관리효율이라는 둘의 목표가 민관의 협업으로 어떻게 완성될지 눈길을 모으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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