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On, Rebranding by Daylight Design
멜론 리브랜딩 만듬 기록
멜론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글이다. 2015년 봄에 끝마친 작업이다. 공식적인 런칭은 <멜론 4.0>이란 이름으로 작년에 이뤄졌다. 올해가 2017년이니 두 해 동안 궁리만 하다가 지금에야 정리하는 셈이다.
오래 묵혀진 탓에 당시의 호흡을 놓친 것은 아쉽다.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쉽게 눈에 띄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나온지 좀 된 유행 레코드의 숨겨진 트랙 같은 값어치였으면 한다.
데이라이트디자인이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에서 진행한 여러 프로젝트 중, 유저경험과 브랜딩을 통합적으로 리뉴얼한 첫 번째 프로젝트다. 내가 데이라이트에서 일을 시작한 첫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당시 — 어디서부터
한국의 뮤직서비스에 있어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거느리고 있는만큼, 브랜드의 친숙함과 서비스의 방대함은 따라올 경쟁자가 없었다. 하지만 반대 급부로 브랜드의 노후화와 유저경험의 복잡함은 내외부적으로 위협이 되는 요인이었다.
의뢰를 받은 시점의 한국 뮤직서비스 시장은 밀크, 지니, 비트 등의 후발주자의 위협은 물론이거니와, 스포티파이와 비츠뮤직( — 후에 애플로 합병 —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의 경쟁 또한 존재했다.
최초의 프로젝트 의뢰는 유저서비스 개편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우리의 생각은 달랐다. 근본적인 지점부터 재정의가 필요했다. <멜론>의 정체성은 무엇인지부터 말이다. 그 정체성이 바탕이 된 멜론의 이야기와 경험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임원진은 우리의 의견을 존중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는 멜론의 서비스와 브랜드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과 총체적인 통합을 위해서 모든 지점을 백지로 돌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했다.
많이, 깊게— 유저인터뷰
유저인터뷰의 양이 만만치 않았다. 단순히 숫자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목적성을 가진 유저 분류 또한 필요했다. 임원진과 내부 모든 중요 부서의 책임자는 물론, 충성 유저, 아이돌팬 유저, 떠난 유저, 캐주얼 유저 등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고객 내외부의 양방향으로 이루어진 유저인터뷰를 통해 내부 조직에서의 기대 지점과 외부 고객들이 갖는 기대 지점에 대한 교차점과 분리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양쪽 지점에 대한 통찰과 영감을 통해 양쪽 다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했다.
사실, 그동안 사용자인터뷰는 신뢰하지 않았다. 마케팅 정량 분석이나 사용성 평가에 초점을 둔 보고서 등은 브랜드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용자들의 목소리도 일부 담겨져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조직의 필요에 의한 형식적인 내용이었다.
데이라이트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새삼 놀랐던 것은 사용자 인터뷰의 질이다. 보고서를 위한 사용자 인터뷰가 아니다. 정말 <듣는다>. 잘 듣는다는 것은 언뜻 당연한 일이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다.
기존에 갖고 있던 사용자 인터뷰에 대한 섣부른 시각은 곧내 바뀌었다. 사용자 인터뷰와 관찰, 그리고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 맞다. <디자인 씽킹> — 조직에서 일하는 만큼, 그 방법론을 수용하는 동시에 내 개인의 경험을 더 하고 싶었다.
공유할 수 있는 상(象) — 브랜드브레인카드
그 고민으로 만든 것이 <브랜드브레인카드(BrandBrainCards) — 이하 BBC —>라는 인터뷰킷이다. 인터뷰는 말과 말로 이뤄진다 당연히. 그 관계의 중간에 공유할 수 있는 <상(image)>을 떨어트리고 싶었다.
BBC는 사람, 파샤드, 자연, 도구, 네 가지 그룹으로 이루어진, 총 32장의 카드 묶음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피질문자는 질문과 함께 제시된 카드를 고른다. 마치 퀴즈를 풀듯이, 타로카드처럼 말이다.
타로카드와 다른 점이라면, 질문자가 결론을 주는 것이 아니라 피질문자가 기술한다는 점이다. 피질문자에 따라 같은 질문에 같은 이미지를 선택하고도 전혀 다른 해석과 풀이를 내놓은다.
즉, 어떤 카드를 골랐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왜 골랐는지에 대한 이유를 듣기 위함이다. 고른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자연스레, 머리 속에 막연히 있었지만 설명하기 힘들었던 느낌을 이미지라는 매개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
가볍게는, 인터뷰가 갖는 필연적인 어색함을 상쇄하는 아이스브레이킹 장치이며, 나아가 서로에게 공유된 이미지를 통해 언어의 불완전함을 보완해준다. 궁극적으로는 유저인터뷰라는 행위를 한층 더 값지고 즐겁게 만드는 과정이다.
(BBC가 가진 자세한 원리나 인터뷰 방법론, 인터뷰 결과의 활용은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겠다.)
멜론에게 — 음악이란?
열대 과일에 이어폰 잭을 꼽으면서 <음악이 필요한 순간, 멜론>이라고 이야기했던 광고 캠페인을 기억한다면 최소 삼십 대 이상일 것이다. 그 십년 전의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소리바다가 저작권 판결으로 시장에서 한발 물러나고, 싸이월드뮤직의 링톤 매출이 최고치를 찍던 때다.
그 광고는 당시 환경에서 통신사가 쉽게 손댈 수 있는 영역인 이른바, <정액요금제>에 초점을 맞췄지만, 음악의 본질에 대한 초월적 메세지이기도 했다. 스마트폰 시대에서도 멜론이 힘을 잃지 않는 이유는 본질을 존중하는 <업(業)>을 함일 테다.
환경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전략 또한 본질을 지키기 위한 담금질일 것이다. 이미 멜론은 <뮤직-라이프-콘텐츠-플랫폼>을 이어주는 이른바 MLCP전략을 마련하고 있었다.
MLCP전략의 실체와 표상을 보여줄 수 있는 브랜딩리뉴얼과 그에 따른 사용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유저경험이 필요했다. 멜론이 항상 유지해온 —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존중과 함께 말이다.
브랜드의 노후화를 막는 동시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호화로운 경쟁자들 사이에서 선두의 존재감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IoT로 대변되는 뉴디바이스 플랫폼시대와 (아직은 흐릿한) 초연결사회를 대비하는 명확한 <코드>를 만드는 것이 브랜딩의 목표였다.
브랜드 그리드 — 멜론이라는 프레임웍
멜론을 위해서 <브랜드그리드(BrandGrid)>라는 이름을 붙인 프레임웍을 활용했다. 전통적인 아이텐티티를 만드는 방법은 <언어적인(Verbal)> 부분과 <시각적인(visual)> 부분의 합이다. 간단하다. 불리워지고 보여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브랜드에겐 더 필요하다. <기능적인(functional)> 면과 <가치적인(Meaningful)> 면의 한 쌍의 축을 더 마련했다. 즉, 전통적인 아이덴티티와 더붙어 경험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을 함께 고민하기 위한 구상이다.
내외부 유저인터뷰와 통합(synthesis) 과정에서 나온 키워드들과 연상 이미지들을 그 구상 위에 꺼내놓은 후, 그것들이 공유하는 있는 교집합과 관계성을 획득할 수 있는 기본 질서를 만들어낸다.
여기서부터 연역과 귀납이 교차하는 부분이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롭다. 지금까지 끌고 온 이야기와 직관적으로 가늠했었던 결과물이 만난다. 모자라는 부분과 넘쳐나는 부분들을 서로 조율할 수 있다.
첫 번째 — 음악이라는 신호를 곧이 곧대로
첫 번째 아이디어는 음악 그 자체의 물리적 스펙트럼이다. 파동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음악과 삶의 관계성을 담고 있다. 그 관계성은 아티스트와 팬의 사이에 해당하기도 하고, 소리와 청자와의 관계이기도 하다.
팔로잉-팔로워를 뜻하기도 하고,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을 뜻하기도 한다. 삶과 그 안의 소리, 그 사이에 있는 <막(膜)>을 통해 그것들을 연결한다. 소리가 갖는 성질을 도상으로 옮겨놨으니, 그 도상들의 움직임들을 통해 <변화하는(flexible)>아이덴티티에 대한 탐구도 가능했다.
콘텐츠의 성격, 즉 진폭에 따라 파동의 모양이 변화하며 아이덴티티를 생성해낸다. 콘텐츠와 어울려 더욱 흥미롭게 만들기도 하며, 콘텐츠와 사용자의 연결을 도와준다. 콘텐츠를 보호하는 막이자 영양분을 공급하는 통로다.
두 번째 — 피가 흐르는 소리, 신경계가 살아 숨쉬는 소리
영상을 하나 보자, 존 케이지가 작곡한 피아노곡 <4분 33초>의 초연이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퇴장하는 것이 전부인 음악이다. 연주자는 단지 악장 사이에 피아노 뚜껑을 닫고 열 뿐이다.
존 케이지가 <4분 33초>를 작곡하기 전에 겪은 일화가 있다. 하바드 대학에 있는 무향실(anechoic chamber -외부 소음과 격리된 흡음의 방)을 방문한 그는, 후에 이렇게 썼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릴 줄 알았지만,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 두 개의 소리를 들었다. 엔지니어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그는 나에게 이렇게 전했다. — 높은 소리는 당신의 신경계가 돌아가는 소리이고, 낮은 것은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다.—
존 케이지가 말하는 바는 <모든 것은 음악이다>와 <음악이 없는 곳은 없다>로 요약된다. 이것을 음악서비스의 개념으로 가져오면 어떤가. <음악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일찌감치 이야기했던 브랜드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다.
존 케이지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옮길 수 있는 <기호>를 원했다. 오선에 그려지는 전통적 기보법으로는 새로운 소리 발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그는 <그래픽노테이션Graphic Notation>류의 새로운 표기법 또한 발명한다.
멜론을 구성하는 라틴 알파벳<M,L,N>에 해당하는 자음은 순서대로 뮤직, 라이프, 콘텐츠와 플랫폼을 상징한다. 자음이 살아있는 말소리가 되기 위해서는 모음이 필요하다. 서로 연결되기 위한 모음 즉, <E>와 <O>를 새로운 <기호>로 대체했다.
라틴 대/소문자로 이루어진 분명한 암시 — 음악과 삶, 그리고 콘텐츠와 플랫폼 — 가 세워지고, 그 중간의 영역을 통해, 사람들이 느끼는 경험과 감성이 들고 오간다. 지금 시대의 새로운 음악적 <기호>를 제시한다.
유저인터페이스상의 모든 시각적 요소 — 이를테면 멜론플레이어 화면의 <음악 재생/멈춤>버튼이나 멜론챠트 등에서의 <순위 업/다운>아이콘 등 — 들이 로고타입에 등장함으로써 유저경험과 의미적인 통합을 만든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여러 데이타와 주변 환경의 분위기를 담는 융통성 있는 그릇이다. 적재적소에 맞춰 항상 변화하지만, 음악과 삶의 연결은 굳건한 플랫폼의 관계를 맺는다.
이 조형적 기호의 합은 결국 음악의 현재성과 영속성을 뜻한다. 플랫폼과 브랜드, 아티스트와 팬, 팔로우와 팔로워를 엮어주며, 멜론이 지향하는 가치를 연결하는 중간자(medium)이자 이야기이고 인터페이스 그 자체이다.
멜론의 음 — 완전한 <온음(the whole note)>
결과적으로 위의 두 안들이 채택되지는 못했다. 급진적으로 비치는 비주얼 룩앤필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과일>멜론이었다. 즉, 과일의 한 종류인 멜론의 시각적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클라이언트의 결정엔 아쉬움이 남지만, 충분히 존중할만한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광고캠페인을 비롯하여 최초의 브랜드아이디어에 해당하는 영역이니까 말이다. 아슬아슬한 지점이었던 셈이다.
이런 지점은 어느 프로젝트에나 존재한다. 어느 부분을 가져가고 버릴 것인지에 대한 부분 말이다. 실제 눈앞에 결과물이 등장하고 난 뒤에야 알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빠른 프로토타입이 필요한 이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브랜드 아이디어를 다시 제시하는 것보다는 기존 노후화된 영역을 리파인먼트(refinement)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 물론, 이 과정을 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존에 제안했던 안을 다시 내미는 일도 잊지 않았다. 소득은 없었지만 — .
로고 타입부터 다시 들여다봤다. 노후화된 지점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분리하고, 버릴 부분과 살릴 부분을 판단했다. 전반적으로 뮤직서비스에 걸맞은 리듬감과 개성을 가졌지만 복잡했고 확장의 한계성을 갖고 있었다.
버릴 수 있는 것은 다 버리고, 최소한의 것만 가져갔다. 녹색의 라운드 스타일 산세리프 폰트에 기존 멜론의 로고 타입을 연상시킬 수 있는 <점>을 붙였다. 저 점이 과거의 멜론을 유지하며 브랜드 생명력을 갖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자 개성이다.
앞서 나왔던 두개의 결과물에 비해 최종 결과물은 비교적 소폭의 변화로 읽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 단순한 장치 하나만으로도 과거의 느낌을 잃지 않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은 급진적 변화가 주지 못하는 지혜다.
브랜드의 효용성과 파급력이 발휘되는 힘은 심볼이나 로고 타입의 우수한 조형성보다는 시스템 전체가 갖는 확장성과 흡인력이다. 새로운 멜론은 가진 자산을 과시하지 않고, 전체적인 관점을 통해 여러 어플리케이션의 품질을 유지한다.
<온음(the whole note)>이라고 이름 붙인 부호이자 기호는 음악서비스라는 본연의 업에 대한 무언의 상징이다. <음악을 중심으로 확장되는 라이프플랫폼 — (MLCP)>의 의미를 충실히 수행할 뿐 아니라, 브랜드와 서비스 확장의 시각적 교두보로 자리잡는다.
시각을 잡아끄는 엘리먼트의 역할이자, 음악을 근간으로 하는 무형 콘텐츠를 조작할 수 있는 트리거의 역할을 수행한다. 유저인터페이스 요소로의 사용은 물론, 플랫폼 전반에 걸친 쓸모있는 구심점이다.
멜론의 <온음>은 하나의 음표이자 시작점이다. 음악의 경험과 콘텐츠의 연결 그리고, 근본적으로 음악과 삶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순간과 지속적인 경험을 말한다. 사람과 음악 그리고 삶을 이어주는 그 영원한 감응 말이다.
마치며
작업을 마친 뒤, 공식적으로 런칭하기 까지 두 해가 지나는 동안, 적지 않은 환경의 변화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멜론을 서비스하고 있는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카카오에 인수되는 일이 있었다.
가뜩이나 변화가 심한 포털비즈니스 환경이다 보니, 런칭하기 전에 자회사 브랜드와 서비스에 대한 정책변화 등이 있을까 봐 걱정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우려했던 바와 달리 브랜드와 UX 모두 성공적으로 런칭을 했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있다.
브랜딩을 완성하는 것은 로고 타입이나 특정 전용 폰트가 아니라, <업(業)>에 대한 <태도(attitude)>일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갖고 있는 업에 대한 태도의 존중 위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멜론 프로젝트에 대한 더 많은 정보(영문)
Transforming a music tool into a connected platform @데이라이트 프로젝트 페이지
Better isn’t always right @미디엄 / 양준우
The Whole Note: Melon Rebranding @비헨스 / 이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