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에게 잡아먹히는 임팔라를 돕지 않는다? 자연의 법칙과 우리의 모순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임팔라.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포식자가 피식자를 잡아 먹는 것. 촬영하는 사람 역시 임팔라가 불쌍할 법도 한데 돕지 않는다. ‘자연의 법칙’에 개입하여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방해하면 임팔라 사냥에 에너지를 다 쓴 사자는 또 몇일을 쫄쫄 굶어가며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자연의 법칙이 존재할까?

적자생존, 포식과 피식.. 자연의 법칙을 대표하는 자연의 법칙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과연 우리 사는 세상에도 자연의 법칙이 존재할까?

어느 누구도 ‘약자를 도와줘야 한다’ 는 말에 반감을 갖지 않는다. 도의적으로 100%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법칙이라 하면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할 것 같기에 ‘인간’의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로맨시스트’ 들이 많은것이 요즘이다.

시장에서 자연의 법칙대로 행동하는 소비자.

그럼 이데아(이상세계)에서 눈높이를 맞춰 당장 오늘도 내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저녁시간, 나는 닭갈비를 먹으려 한다. 어떤 가게는 문전성시지만 어떤 가게는 주인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떤 가게를 들어가겠는가? 사람이 없는 가게를 보며 뭔가 문제가 있구나 하며 발길을 사람 많은 가게로 옮긴다.

사람 없는 닭갈비 가게는 조만간 사라져 적게나마 찾아왔던 손님을 모두 다 사람이 붐비는 닭갈비 집에 흡수당하게 된다. 이 가게는 경쟁에서 약자 이다. 밀림에서의 임팔라는 바로 이 가게이다. 사자는 사람이 붐비는 닭갈비 집이다.

우리중 어느 누구도 사람이 없는 가게 주인에게 동정심을 느껴 단 1원도 소비해주지 않는다. 완벽한 적자생존의 현장을 우리는 매일 겪고 있는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잔혹한 심판관(이하 심판관, 소비자를 뜻한다)이다. 우리의 지갑이 내일도 문을 열 가게, 내일은 문을 닫을 가게를 결정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널리 통용되는 자연의 법칙을 도의적인 마음에 애써 부정하며 살아간다.

가격, 품질, 서비스! 임팔라의 반란?

저녁시간에도 텅 비었던 닭갈비 집 주인이 무슨 바람인지 닭갈비 값을 30% 인하하고, 본인이 챙겨가는 몫을 없애고 가게를 살려내기 위해 닭갈비 요리사를 데려왔다. 모아둿던 돈을 투자해 가게 앞에 시끌시끌하게 홍보를 하기 시작했고. 직장인이 많은 곳이라 옷에 냄새가 배지 않게 환기구를 리모델링 했다.

이상하다. 심판관들이 그 가게에 가서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그럭저럭 괜찮고 옷에 냄새도 덜 베는것 같으니 그곳으로 가 지갑을 여는 것이다. 정말이지 임팔라의 반란인 것일까?

오늘은 심판관들이 주인을 동정해 그 가게에 간것이 아니었다.

임팔라의 반란은 없다. 역할이 바뀔 뿐 자유경쟁시장의 인간적인 면

시장에서 영원한 임팔라는 없다. 그저 어떤 기회를 어떻게 취하여 역할을 바꾸느냐일 뿐이다. 자연의 법칙과 다른 인간적인 면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밀림에서는 임팔라는 죽을때까지 임팔라이지만 자유 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공정한 경쟁을 통하여 사자가 임팔라가 되기도 하며 임팔라가 사자가 되기도 한다.

자유 시장에서는 공정함이 최고의 가치이다. 불공정한 경쟁은 가게 주인과, 심판관 모두에게 해롭다.

사람이 없던 가게가 갑자기 흥하니 옆 가게 주인이 가서 가격을 담합하자고 제안한다. 둘다 이득이 되야 하니 가격경쟁은 사라지고 퀄리티에 비해 높은 가겪을 잡아야 두 가게 주인 모두가 만족할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 형성이 되버린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다른 가게에 조금 더 싼 가격에 좋은 재료로 닭갈비를 판다면 심판관들은 100% 이 가게로 향하게 된다. 사실상 두 가게의 담합이지만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으로 담합이 위태위태해진다. 담합을 깨고 자유 경쟁으로 돌아갈 것인지, 이 새로운 가게마저 담합을 권유해야 하는지의 문제 뿐이다. 닭갈비 가게를 오픈하려는 누군가의 마음을 누가 알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가게를 오픈하게 될지. 공정하게 가격 경쟁하는 것보다 저 피곤한 일이 앞에 펼쳐질 것 같다.

반대로 담합에 응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손님을 뺏긴 닭갈비 가게 주인은 더욱 좋은 품질과 서비스로 시장에서 다시 승부를 보아야 한다. 이런 과정들에서 무조건 좋은 쪽은 소비자(심판관이다.)

얼마나 인간적인 규칙인가? 무조건 만족하는 집단이 존재한다는것이!

물론 시장이 이렇게 간단한 케이스로만 구성되지는 않는다. 법, 정치 등등 온갖 요소들이 뒤엉켜 있다. 그럼에도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이다. 우리는 경쟁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한발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훌륭한 법칙 이라는 것을 새롭게 봐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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