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1)

이 밤중에 갑자기 29년 인생을 회고할 겸 곧 첫 직장에서 1년만에 퇴사도 하니 생각이 많아져서 생각을 정리할 겸 써본다. 요즘같이 고민많은 주말 밤이 없었으니 말이다.

(19~20세)

사실 나는 공부를 못했었다. 나름 지역 명문고에 진학했지만(비록 평준화라고 해도) 성적은 형편 없었다. 학창시절에 꼭 그런 학생 있지 않은가. 공부라고 앉아서 하기는 하는데 영.. 시원찮은. 그게 딱 나였다.

나는 이과였다. 사실 수학을 좋아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수학사(史)를 좋아했던 것인데 수학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과에 갔다. 결국 이 판단 착오가 고등학교 시절동안 나를 괴롭혔다. 수학 자체가 싫은게 아니어서 공부는 열심히 했으나. 점수는 낮은.. 뭐 그저 그런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시집을 더러 읽었다. 점수 따려고 읽은 것이 아니라. 그냥 시를 읽었을때 아주 찰나에 오는 느낌이 있는데 그 느낌이 좋았다. 무슨 느낌인지조차 감 잡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찰나의 느낌인데, 나는 그것을 ‘차오르는’ 느낌이라 생각했다. 특히 이상의 작품을 좋아했다. 특히 이상의 거울은 나의 특이한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예를 들면 오른쪽으로 돌던 초침이 왼쪽으로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좀 지나서는 자유론이라는 책을 읽고 윤리 선생님께 ‘행복은 더하면 더욱 커지는 계량적인 건가요?’ 라고 물어보곤 했다. 물론 읽어서 다 이해한건 아니었다. 가끔 성경, 불경도 읽었다. 그때는 뭘 모르니 그냥 글자를 읽을 뿐이었겠지만…

그 때 당시에는 나는 이런 시나, 글을 왜 생각하고, 쓰지 못할까 하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지적 갈증만 있었지 창조의 욕망은 없었던 것 같다.

고3 어느날, 모의고사를 보는데 너무나 잘 풀리더라. 그러고 채점해보니 1개 틀려서 97점인가 맞았었다. 이과생이 언어 1등급이라니! 다음 6월도 9월도 전부 1등급이었던가 그랬던 것 같다. 근데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맞았는지 아직도 모른다. 그냥 빨리 읽히고 빨리 답이 보였을 뿐인데. 근데 역시 사상누각이었는지 수능때는 시원하게 말아먹었었다.

수능 성적이 나왔다. 처참한 성적이랄까. 근데 절망적이라고 느낀건 수능 성적 받고 3시간 정도.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 들였다. 한탄해도 지나간 것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체득한거 같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뭐가 되고싶단 생각도 없었다. 학창시절 나는 영화 투모로우를 보면 기상학자가 되고 싶었고 철도원이라는 책을 읽으며 눈물 훔칠때는 간이역을 지나가는 철도 운전사가 되고 싶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지구를 누비는 지질학자가 되고 싶은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수학자가 되고 싶은 때도 있었다. 영화 매트릭스를 볼 때는 컴퓨터 공학과를 가고 싶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그냥 버스 운전수가 되고 싶기도 했다. 되고 싶은게 많았는데 역설적으로 되고 싶은게 딱히 없었다. 근데 이렇게 정신머리(?)없는 와중에 하나 잘한것은 나는 게임은 잘 안했다. 나 때는 피시방이 열풍이라 게임들을 참 많이 했는데 나는 게임 이런데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게임 하면 나한테 남는게 아무것도 없는 의미없는 짓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 중학교 시절 친구들은 게임을 참 좋아하는데 지금도 게임얘기하면 나는 할말이 없어서 조용히 있는다.)

일단 살길을 찾아야 했다. 결과야 어쩔 수 없고 결정을 해야 했다.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고자 재수 하지 않고 그래도 취직이 잘되는 보건계열로 진학했다. 그 중에서도 방사선사를 적어도 그 당시에는 꿈꿨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솔직히 자명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방사선사를 꿈꾸도록 부단히 노력 많이 했던 것 같다. 종착역은 방사선사야! 방사선사야! 하며.. 그때는 왠지 그래야만 했던 것 같다.

군대 가기 전 1년간의 학교 생활은 재미 있었다. 좋은 친구들도 많았다. 나름 공기좋고 물좋은데서 재밌게 보냈던 것 같다.

그렇게 정신없이 타지에서 20살을 보내고 군대에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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