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News and the Evolution of Truth

The evolution of truth: ‘Truthiness’ has evolved into ‘Post-truth’

“I will speak to you in plain, simple English. And that brings us to tonight’s Word: Truthiness.” 현재 레이트 나이트 쇼 호스트를 맡고 있는 스티븐 콜베어가 당시 진행하던 케이블 정치풍자 프로그램 콜베어 리포트에서 한 말이다. 2005년 10월 방송에서 그는 ‘Truthiness(진실스러움)’을 정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Well, anybody who knows me knows that I’m no fan of dictionaries or reference books. They’re elitist. … I don’t trust books. They’re all fact and no heart. And that’s exactly what’s pulling our country apart today. Cause face it, folks, we are a divided nation. Not between democrats and republicans, … We are divided between those who think with their head and those who know with their heart. … I promise to feel the news at you.” ‘Truthiness(진실스러움)’은 사실이 아닌 직감을 기반으로, 자신이 믿는 무언가가 (무조건적으로) 진실일 것이라 추정하는 신념이나 진실이게끔 보이게 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전과 이를 둘러싼 미국 행정부의 알 수 없는 ‘팩트 폭격’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결정 속에서 방황하던 2006년, ‘Truthiness(진실스러움)’은 메리엄-웹스터 사전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그 해를 가장 잘 요약한 단어로 선정되었다. (참고로 스티븐 콜베어는 당시 코미디 센트럴의 정치풍자 프로그램에서, 캐릭터 ’스티븐 콜베어’라는 국가주의적인 보수 정치비평가로서의 페르소나를 연기하여 보수언론을 풍자했다. 그의 본심과 반대되는 말을 한다고 보아도 좋다. 오해 없길 바란다.)

바야흐로 2016년, 옥스포드 사전은 올해 세계의 단어로 ‘Post-truth(탈진실)’을 선정했다. 이는 공중의 의견을 형성하는데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욱 영향력이 큰 환경을 의미한다. 옥스포드 사전 위원회는 본 단어가 브렉시트에 대한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와 이번 미국 대선을 전후로 많이 쓰였다고 밝혔다. 우리가 ‘탈진실’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진실’은 최근 페이스북이 가짜 뉴스(Fake news) 생산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논란이 지속되며 더욱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해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 내의 가짜 뉴스 콘텐츠는 극히 일부분이며, 페이스북을 통해 ‘필터 버블’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 기여했다”고 반박했다.

‘Truthiness’가 지배하던 시대와 ‘Post-truth’ 시대의 공통점은 정치, 문화, 비즈니스 등 모든 영역이 강렬한 감정적 소구를 바탕으로 움직임에 따라 사회가 극심하게 양분되어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회의 이분화에는 미디어 기술 및 플랫폼 양상의 변화를 포함하여 국제질서와 경제 상황의 변화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두 시대 간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실을 창조하고 유통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스스로 사실을 적극적으로 제조하거나, 대중이 유통하는 사실을 “신빙성이 떨어지는 짜집기”나 일부 선동세력의 비현실적 조롱” 정도로 취급하였다. 그리고 타겟팅된 시청자 계층을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미디어 (미국의 경우 폭스뉴스, MSNBC 등)가 개개인의 정치성향에 맞춘 정보를 전달했다. 이는 진보성향의 시민과 보수성향의 시민 간 메꾸기 힘든 간극을 만든 시발점으로 작용하였고, 동일한 아젠다에 대해서 고민하더라도 “어떠한 사실을 믿을 것이냐”에 따라 서로 다른 창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Post-truth’ 시대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간다. 사실은 정부나 고위 관료가 아니라 시민으로부터 직접 만들어진다. 시민은 소셜미디어가 제공하는 네트워크의 연결성과 선별적 피드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어느정도 사실에 기반한 내용을 다시 짜집기하고 각색하거나 새롭게 프레이밍하여 언제든지 진실을 주창할 수 있는 세력으로 발돋움했다. (“페이스북의 가짜 뉴스 사태는 단순히 뉴스가 가짜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피드를 통해 무지막지한 속도로 퍼져나가며, 진짜인지 아닌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이미 강렬한 감정을 자극하게끔 만들어진 헤드라인은 우리의 뇌리속에 박혀버리게 된다. 선정성과 신속성은 추앙받지만 사실 검증과 출처 확인은 불필요한 절차로 전락하고, 이것이 단순히 각 언론사의 기업 이익 측면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고 동시에 섬뜩하다. 미디어, 더욱 좁혀 말하자면 저널리즘이 Verification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Affirmation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Facebook does encourage the reproduction of false information, but…

모든 언론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페이스북이 사실이 아닌 정보를 유통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을 ‘필터 버블’의 탓 정도로 쉽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속단하기 전에, 페이스북이 어떠한 측면에서 잘못된 정보(False information)를 재생산할 수 있는지 분석한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존 연구는 페이스북을 통해 유통되는 가장 주요한 컨텐츠인 ‘감정’이 매우 전염성이 높으며, 페이스북이 이미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정치이념적 분열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마크 주커버그 말대로 페이스북이 참정권에 대한 인식을 더욱 확산시켜 사람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으나, 페이스북이 정치에 관련된 정보가 유통되는 주요한 플랫폼으로 자리잡으면서 발현된 문제점도 존재한다. 예컨대 사람들이 특정 후보의 부패나 범죄 행위, 위증, 섹스 스캔들 등에 반응하면서 정치(인)에 대해 분노하는 컨텐츠가 팽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치와 선거에서 ‘분노’라는 감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소통 방식이 서로 유사한 생각이나 이념을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확립되는 경우가 크다는 점을 살펴볼 때, 페이스북의 소셜 알고리즘은 이질적 대화보다는 동질적 대화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의 동질적/이질적 대화 방식에 대한 연구에서 강조된 점은, “동질적 대화가 더 나타나긴 하지만 동질적/이질적 대화 양상의 차이가 크지 않았으며, 더욱 주요한 문제는 아예 정치적 이슈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잘못된 정보가 대중에게 각인되는 것(Misinformed public)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아예 정치에 대해 모르는 상태(Uninformed, disinterested public)가 문제라는 것이다.

Make the truth more visible

‘진실’을 발굴해내는 것은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지만, 동시에 수많은 시민의 도움과 기술적 편의로 더욱 가능해지기도 했다. 우리는 최근 몇 년 간 소셜 피드가 사회 전반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가장 발빠르고 편리한 도구로 자리잡으면서, 정치적 정보가 값싸게 얻을 수 있는 보편재가 되어 어떻게 공중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지 목도했다. 근래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가 진행되는 것만 보아도 정치적 공중 (Political public)의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감정적 동요가 부정적으로만 인식되어서도 안 되며, 소셜미디어에서 모든 정보를 일일이 거르는 것 역시 비현실적인 주장에 가깝다. 예컨대 페이스북을 “Totally Insane, Unintentionally Gigantic, Hyperpartisan Political-Media Machine”으로 묘사한 Herrman의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 부분도 있었지만, 페이스북에서 그러한 니치한 정보와 자극적인 선동이 어째서 팽배하고 있는지에 대해 모든 책임을 페이스북의 기술에 돌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기존 언론사와 뉴미디어 플랫폼 사이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기도 했다. 대형 언론사의 뉴스 컨텐츠가 새로운 대중의 흐름에 과연 발빠르게 대응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가 스스로 ‘기계적/중립적인 플랫폼(Seemingly-neutral platform)’일 수 없음이 현재 운영되고 있는 알고리즘의 문제점을 통해 증명되었고, 주커버그가 스스로 제창했듯 ‘다양한 의견이 교차할 수 있는 컨텐츠의 장(The online playground to enable cross-cutting exposure)’을 지향한다면, 사실을 더욱 사실답게 전달할 수 있는 알고리즘의 변혁과 이를 양적인 데이터로 공중에게 투명히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의 제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오늘도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가장 빠르게 컨텐츠를 받아보기 위해 페이스북 앱을 킨다. CPND (Contents-Platform-Network-Device) 싸움에서 페이스북이 승리하기 위한 전략으로 컨텐츠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을 볼 때, ‘사실’ ‘진실’에서 멀어지는 것 (혹은 “우리는 미디어 회사가 아니라 IT 회사”라 주장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이번 미국 대선 이후 뉴욕타임즈의 페이월 구독이 급증했다는 점은 이를 증명해준다. 하지만 유료 구독수의 증가는 그만큼 사실 검증이 된, 진실에 근접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층이 제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I’m glad that the 2016 election has prompted people to buy new subscriptions to paywalled legacy publications. But that, by definition, is a way to stay out of the trenches, to keep clean hands in the new media wars.”)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 시민 저널리즘의 확산, 그리고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알고리즘이 저널리즘으로 정의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모두가 얽히고설켜있는 이 문제는 상당히 재단하기 곤란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비즈니스 모델에 있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에게 저널리즘의 가치를 운운하는 책임감을 호소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간추려진다면, 글쎄. 더 이상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탈진실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옥스포드 사전위원회의 결정에 한 친구는 “우리가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연락해왔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고민이야말로 가장 시대 흐름에 발맞춘 고민이라 여긴다. “질 나쁜 보도는 아마 선거의 결과 자체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백인 남성들의 분노는 정확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트럼프를 뽑은 다수는 제쳐두고) 공화당의 주장과는 달리 점점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관용적인 사회로 탈바꿈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은 올바른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뉴스 미디어는 거짓된 균형과 중심화에 저항하여,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도해야만 한다.” 생각보다 진실은 가까이 있고 우리는 그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과연 페이스북이 진실을 추구해야 할 조직인가”를 묻기 전에, “(페이스북 유저를 포함한)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할 권리이자 의무가 있다”는 당연한 전제를 고민해야 한다. 기술과 함께 오는 기존 질서의 붕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절대적인 외부의 힘이 아니다. 하지만 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시민 민주주의와 이에 대한 신념으로 대표되는 ‘진실’ ‘사실’은 중립적인 기술처럼 보이는 자본, 그러한 기술과 자본을 이용하는 특정 층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공중은 그리 쉽게 굴복하지 않음을 널리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펜을 든 것이 아니었는가? “The primary purpose of journalism is to provide citizens with the information they need to be free and self-governing” (Kovach & Rosenstiel, 2014).

*요거 진짜 재밌다. 추천 :) http://graphics.wsj.com/blue-feed-red-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