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3_낭만적인 도시. Amsterdam.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내린다. 잠에서 깨서 알람을 끄고 잠시 누워서 비오는 소리를 듣는다. 역시 이 곳에서도 비오는 소리는 알수 없는 포근함을 준다. 이대로 그냥 계속 자버리고 싶지만 오늘은 먼 곳까지 나갔다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한다.

씻고 나서 아침을 차리다보니 테이블에 있던 튤립이 말라보인다. 생각해보니 물을 제대로 안갈아준게 미안해서 다 꺼내서 한 번씩 씻어주고 물도 새로 갈아서 창틀에 둔다. 이렇게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가 떠나도 계속 넌 여기서 살아남길 바래’ 라는 마음으로 튤립을 메만져본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정신없이 퍼붓다 말다를 반복한다. 그래도 이제는 익숙한 듯 왠만한 비에는 우산도 없이 맞고 다닌다. 버스를 타고 Schipol Airport 까지 간 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Amsterdam 까지 간다. 가는데 어림잡아 1 시간 남짓. 그 와중에도 멀미가 나는지 계속 잠이 든다.
갈아탄 버스에서 잠이 들기 전, 처음으로 차표검사를 받았다. 버스 운전수 아저씨께 산 티켓을 보여주니 검표원분께서 좋은 하루 되라고 말하고는 가신다. 언제쯤 검사에 걸릴까 했는데…


Amsterdam 에 내려서는 제일 먼저 Van Gogh Museum 으로 향한다. 12시에 예약해두었기 때문에 간당간당하게 도착한다. 미리 인터넷에서 사둔 표를 스마트폰에 받아 놓아 별다른 절차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다. 입장 후 동생이 어젯밤 내내 극찬을 하던 오디오 가이드까지 받고 난 뒤, 전시관들을 둘러본다.
전시는 크게 두 개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특별 전시관으로 지금은 ‘Prints in Paris 1900’ 이라는 주제로 1900년대에 파리를 기점으로 활동한 모던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대한 전시이고, 다른 하나는 두 말 할것도 없이 반 고흐의 상설전시.


‘Prints in Paris 1900’ 은 모던 아티스트들이 어떤 식으로 작품 활동을 했는지와 그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초반 전시는 그들의 작품이 어떤 식으로 일부 미술 애호가(즉 돈이 많은 직업군의 사람들)들에게 소개되었는지와 그 작품들의 내용이 어떠한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그들의 작품이 대중속으로 어떻게 스며들고 녹아들어갔는지, 어떤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소개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다뤄지고 있다. 그래서 부제가 ‘From Elite to the Street’ 이다.

위로 올라가면 대중예술로써의 가치를 지닌 1900년대의 모던 아트가 소개된다.
계단조차 멋있는 Van Gogh Museum.

당연히 전시관 내부는 찍을 수가 없다. 찍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찍지 않는다. 그림을 상하게 하는 플래시도 문제가 있지만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까지 저장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저 그 상태를 느끼고 감정을 마음에 저장해두는게 좋다.


특권의식을 가진 Elite 들에 의해 예술가들의 작품이 판화집처럼 묶여서 소개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모든 예술작품에 ‘팔렸다’ 라는 말을 붙이기 꺼려한다. 왠지 저 말을 붙이면 예술가의 영혼까지 팔려버린 느낌이 든다. 나는 예술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해서 보여주고 그 댓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대중예술을 지향한다해도 그 사람의, 예술가의 마음은 고귀하다. 물론 의도는 저렴하겠지만)

약간은 재미있게 느껴진다. Elite 들이 한쪽 벽을 장식하기 위해 사둔 그림과 책들을 모두 깊이 탐독해보았을까? 물론 전시에는 그랬던 Elite 들이 소개된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하루의 바쁜 일과를 끝내고 그림을 보면서 근심을 해소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넋놓고 그림을 관찰하기 바빴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 손에 들어간 작품은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손에 들어간 작품들은 어땠을까? 작품들에게도 의식이 있다면 단지 허영심의 소원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도구로써 벽에 걸려 있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예술가들은 계속해서 활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밥도 먹고 술도 마셔야 했을테니.


윗층의 Street 은 그나마 솔직하고 재미있다. 미술이 어느 순간 광고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클럽 ‘Moulin Rouge’ 의 댄서 광고, 약 광고 심지어 악보집의 표지까지. 그들이 그림을 그려줌으로써 그 모든 본질의 대상들이 인기가 높아진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표지를 가져다 집에 장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의 ‘예술’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순간. 더 이상 ‘예술' 은 ‘대중' 뒤에 오지 않는다. 그저 ‘대중예술' 이라는 새로운 말로 바뀔뿐. 나는 개인적으로 ‘대중예술' 이라는 말은 좋아한다. 돈의 논리로써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똑같이 즐기는 동시에 서로 다른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가 예술이 되는 것 같아 기쁘다. 나에게 있어 예술은 어느 집 벽에 걸려 초대된 손님만 볼 수 있는 시크릿 가든이 아니라 모두가 보고 즐거워 할 수 있는 호수공원같은 것 이니깐.


전시관 하나를 보는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린다. 너무 피곤하고 슬슬 배도 고파 박물관 안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식당을 좋아한다. 뷔페식이지만 자기가 고른만큼의 댓가를 지불하고 먹는 식당.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음식 메뉴를 하나하나 관찰해야 하는 식당. 박물관과 참 잘 어울린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드디어 상설전시관으로 향한다. 총 4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설전시관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광판에는 계속 이런저런 말이 나온다. 그 중 가장 좋았던 말.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 유명한 ‘초상화', ‘해바라기', ‘감자 먹는 사람들' 정도 알까? 그리고 동생 테오가 지원해주었더라도 평생을 궁핍하게 산 화가라는 것. 박물관에는 그의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생애부터 테오와 나눈 일부 편지들까지.
나는 그림에는 조예가 깊지 못해 어떤 식의 기준이 없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계속 보고 있자니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하고 있다는 것과 자기만의 깊은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그림 때문에 좋고 행복한 날들이었겠지만 그보다 배로는 힘들고 처절했을 것이다. 고흐가 초상화를 많이 그린 주된 이유가 ‘돈이 없어서’ 였다고 하니깐. 테오와 같이 살기 위해 프랑스에 머무는 그 순간부터는 돈보다는 예술에 대한 고민이 역력해보인다. 화풍을 계속해서 바꾸고 색채감에 깊이를 더해가며 작품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았을것이다. 그는 당대에는 그리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으니깐.

그의 후기 그림에서는 색채가 아름답다라는 말을 넘어선 무언가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소용돌이 치는 듯한 독특한 그림체가 한몫하겠지만 이 또한 도구에 지나지는 않는 것 같다. ‘별이 빛나는 밤', ‘아몬드 나무', ‘슈베닝겐 해변' 등은 그 자체로 살아서 조용히 숨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누군가는

‘당연히 예술가는 조금 배고프고 힘들고 그래야해. 그래야 좋은 작품이 나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술 자체가 힘든데 뭐가 더 어떻게 힘들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박물관을 열심히 구경하니 어느 덧 오후 4시반. 무려 4시간 가까이 미술 작품을 본 셈이다. 다음 코스로는 안네 프랑크의 집. 열심히 집을 찾아간다.

고흐가 그린 하늘인가?

네덜란드 왕궁과 신교회를 지나 여러 강줄기들을 건너 안네 프랑크의 집에 가지만 줄이 너무 길어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다. 그래서 일정을 변경하여 크루즈에 타기로 한다. 중앙역 근처에서 탈 수 있는 크루즈는 Amsterdam 을 일정한 강 줄기를 따라 이동하면서 도시를 보여주는 관광상품이다.

요런 배에 타면
각 자리마다 오디오 가이드를 꽂는 곳이 있다.

배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른다. 바다에 나와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넓고 너른 물로 배는 나간다.

그러다 도시 가운데로 들어오면 마치 수상도시란 이런것이다를 보여주는 풍경들이 사람들을 반겨준다.

크루즈가 지나는 물길 양 옆으로 가정집같이 꾸며놓은 보트들도 간간히 보인다. 그리고그 위로는 예쁜 집들이 촘촘히 쌓여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간혹 맞은 편에서 보트가 오기도 하는데 그럴땐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낭만적인 모습들이 물위에, 땅위에 가득하다.


1시간 남짓의 크루즈를 타고 난 뒤, 중앙역에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다 먹은게 9시인데도 해는 여전히 노을만 남기고 있다.

비를 계속 내리게 한게 미안하기라도 한지 하늘이 무지개를 내어준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하며 무지개를 찍고 또 찍는다. 이렇게 큰 무지개를 본 적이 있던가?

저 멀리 해가 잠이 든다. 유럽의 해들은 보통 9시 반까지는 잠이 들지 않는 습관이 있나보다. 예쁘게 저녁이 물들어간다.


이제 네덜란드에서의 일정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은 코펜하겐으로 떠나는 날.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더 많이 보고 즐겼을텐데. 생각도 안했던 네덜란드에서의 모든 시간이 너무나 아쉽다.

매춘과 마약이 합법인 도시. Amsterdam.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여러모로 좋지 않은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오기전에는 그랬으니깐.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는 낭만이 가득하다. 
여전히 반 고흐가 숨쉬고 어디서든 여유로운 보트를 볼 수 있는 곳.
그저 손에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강가 아무데나 걸터 앉아
지나는 보트에 손 한번 흔들어보이고
인사를 건네는 일상 속에
조금 더 녹아 들고 싶은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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