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8_NIME 3일차_한 걸음 다가가기

여전히 적응이 쉽지 않은 삐걱거리는 침대위에서 해를 맞이한다. 이미 진작에 잠에서 깨어 알람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며 멍하니 누워있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삐걱거리며 침대가 짜증을 낸다. 어떤 부분을 움직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는 소리가 신기해서 조금씩 다른 부위를 슬며시 움직여본다. 알람이 울릴때까지 그저 이불 안을 파고든다.


항상 그렇듯 아침은 언제나 고요하다. 정신없이 시끄럽던 호스텔의 바도 차분하게 아침 먹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 역시 시리얼과 빵으로 아침을 먹으며 멍하니 테이블 유리 끝만 쳐다본다. 조명에 반사되며 반짝이는 유리의 색들을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옷을 갈아입고 룸메이트들에게 차와 과자를 하나씩 나눠주고 길을 나선다. 가는 곳마다 제주영귤차를 뿌리고 다닌다. 부디 마시는 사람들이 따뜻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며.


NIME 3일차는 Practice and Criticism 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로 시작한다. 학회경험이 전무한 나라서 이렇다저렇다 이야기 할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NIME 이라는 학회에 애정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갖고 있는 애정만큼이나 더욱 한 걸음 나가가려는 것 같다. 이제 고작 한 번와서 평하기도 뭐하지만 자정능력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다.

점심때쯤 동생이 학회장 근처 호텔조리학교로 가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역시나 뷔페다. 그나마 다행인건 무지막지한 All you can eat 가 아니라 접시당 돈을 낸다는 사실. 접시당 단돈 30 크로나 (약 5100원 정도) 에 많은 메뉴들을 퍼서 먹을 수 있다.

저 멀리 베이커리가 보인다. 여기도 엄청 싸다. (덴마크치고는)
두 접시에 60크로나.

동생과 이것저것 먹으면서 하나하나씩 맛있네 맛없네를 평가한다. 아마 여기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만들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지 않은 것 같다. 맛은 훌륭하다. 단지 많이 짜서 문제일뿐.


학회장으로 돌아와 Angelica 여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Paper 세션을 보다가 잠시 나와 Poster 를 살펴본다. 어제와 같은 Poster 는 중앙홀의 Poster 뿐이고 나머지는 다 새로운 것들이다.

바디쪽에 있는 나무판들이 시퀀서에 맞춰 줄을 계속 친다. 노는 손으로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 수 있다.
미디 컨트롤러의 버튼을 누르면 해당하는 부분의 장치가 줄을 눌러준다. 한 손으로도 베이스를 칠 수 있는 신기한 악기.

신기하고 재미있는 악기도 있고, 기대도 못했던 bela 까지 전시되어있다.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보고 체험하는 사이 시간은 어느덧 오후 3시. 마지막 Paper 를 들으러 간다.


모든 스케쥴이 끝이 나고 공연까지 다 보고 난 다음 Banquet 이라는 엄청 낯선 만찬에 참여한다. 다행히 생각했던 17세기 유럽의 호사스런 만찬이 아니라 그저 펍 빌려서 코스요리 먹는 것일뿐.

조금 뻘쭘하게 먹으면서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또 어설프게나마 내 이야기도 한다. 내 앞에 앉아계셨던 교수님과 Music Technology 과목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모든 말을 다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띄엄띄엄 뜻이 맞는지 물어보기도 하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아마 교수님은 재미없으셨겠지만 나는 꽤나 흥미로운 대화였다. Music Technology 라는 과목 자체가 포괄적으로 여러가지 내용을 가르치다보니 해야하는 전반적인 이야기들이 꽤나 많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일찍 나온다. Angelica 여사님도 피곤하신지 같이 가자고 하셔서 같은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지나고보니 참 빨리도 시간이 흘렀다.


사실 그렇다.
내가 누군가에게 한 걸음 다가가지 않으면 누구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대신 한 걸음만 걸어가면 모두는 아니지만 적어도 몇 사람 정도는 내 걸음에 호기심을 가지고 같이 걸어준다. 항상 그 처음이 어렵다.

오늘은 Facebook 을 활성화했다. NIME 의 많은 발표들을 듣다보니 이제 더 이상 혼자 뭘 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이, 내가 만든 것이 설령 하찮고 아무것도 아니고 이미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너무나 다행히도 나를 까먹었겠지 했던 사람들이 먼저 말도 걸어주고 반갑다고 한다. 날 기억해준다는 그 사실 자체로도 감사하다.

Angelica 여사님이 나에게 주로 해주는 말은 ‘Speak Out’ 이다. 그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지 말고 말하라고. 괜찮다고.
내가 만든 무언가가 사람들을 도와주려면 그 전에 내가 한 걸음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가서 말해야 한다.

“안녕, 난 James 야. 한국 이름은 ‘현후' 지. 만나서 반가워"

나는 저 간단한 문장을 사실 엄청 무서워했다.
한국에서도 무서워했고 사실 지금도 무서워한다.
그래도 내가 먼저 가서 인사하고 웃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 그리고 해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일들 모두.
결국 사람을 향해있고 그 끝까지는 내 두발로 걸어가야 한다.

나는 지금, 
아주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삶을 배우고 있다.
최소한 삶의 방향성 정도는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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