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7_NIME 2일차_이해

오늘도 여지없이 일찍 일어나 학회에 간다. 여전히 제대로 잠을 못자는게 걱정이지만 어쩔 수 없다. 꿈꾸는 것까지 내가 조절할 수는 없으니.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현실감이 떨어질 때는 이렇게 창밖을 본다. 매일 보던 익숙한 창틀, 풍경이 아니라 너무나 다른 그림들. 아침을 먹으며 이 그림들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문득 내가 지금 유럽에 와있다는게 실감이 난다.


약간의 두근거림과 더불어 조금 편해진 마음을 가지고 가는길. 약하게 내리는 빗방울이 오히려 시원해서 기분이 좋다. 생각해보니 서울에서는 비를 맞고 싶어도 건강이 걱정되서 쉬이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비를 맞아도 나중에 조금 찝찝한 것만 빼면 아주 선선하니 기분이 좋다.

Perry Cook 과 Ge Wang. 묘한 사진이다.

오늘의 학회는 Ge Wang 교수님의 발표로 시작한다. ‘the ME in NIME’ 이라는 주제로 시작된 발표는 거의 인문학적 성찰에 가깝게 진행된다. 한 시간 남짓의 발표지만 너무나 몰입해서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하고자하는 말의 의도가 분명하니깐. 가장 좋았던 건 새로운 NIME Paper 의 알고리듬.

Step 1. “Hey I made a thing! I think it’s cool”
(야 나 뭐 만들었는데 이거 엄청 괜찮은거 같아)
Step 2. “I made music with it (and in front of people)”
(나 이걸로 음악 만들었어(그리고 사람들에게 들려줬어))
Step 3. “I thought about it and wrote a manifesto of why it’s cool!”
(나는 왜 그게 멋진지 생각해봤고 글도 썼어)
Step 4. Ship it!
(난 좋아!)
Step 5. Iterate on it? (make more music; refine design)
(만족해? 혹은 다시 볼까? (음악을 더 만들거나 디자인을 수정한다))

만든다고 끝이 아니고, 만들었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이게 정말 “왜 멋진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납득해야 한다는 것.


Ge Wang 교수님의 발표가 끝난 뒤 이어지는 Paper 세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준비해서 새로운 것들을 발표한다. 어떤 것들은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어떤 것들은 이렇게 이렇게 하면 만들 수 있겠네 싶기도 하다.

중요한 건 만드는게 아니라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는 것.


점심먹기 전 이리저리 Poster 들을 살펴본다. 대부분 자신의 Poster 와 프로토타입을 전시하고 있다. 하나같이 귀한 아이디어들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보고 듣다가 점심을 먹고 오후 세션들에 참가한다.


오후 세션 역시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실제로 강연장 밖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이 강단 위에서 설명되어지기도 하다.

오후에는 옆 자리에 앉으신 Angelica 여사님(?)과 말을 트고 계속 같이 지낸다. 현재 작곡가이신 Angelica 여사님은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계속 이런저런 것들도 물어봐주고 뉴욕에 오면 아는 교수님들도 소개시켜준다고 하신다. 그것도 너무 고맙지만 지금은 그보다 Angelica 와 이야기 나누는게 더 좋은 일이라고 대답한다. 내일 만찬에서 시간이 남으면 이런저런 질문들을 해봐야겠다.


길고 긴 하루가 오후 5시에 끝이 난다. 이후 일정은 8시 공연. 7시 외부 강연은 동생과 밥을 먹어야 하므로 그냥 빠져버린다. 역 근처에서 밥을 먹고 공연장에서 정말 극한의 표현력을 가진 플룻연주자분의 공연을 본다.

공연은 일반 공연장이 아니라 교회 형태의 공연장을 빌려서 진행되었다.
락밴드의 공연이 아니라 플룻 연주자분의 공연!

비를 맞으며 숙소로 온다. 돌아오니 10시. 시간은 많이 늦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많은 것들이 빠르게 소개되던 강연장에 있다.


누군가가 만든 것 혹은 어떤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서울에 가면 시시한 아이디어라도 일단 구현해놓고 보자라는 다짐을 한다. 그러다보니 이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혹시 나만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말도 안되는 어떤 것들이 아니라 실물이 나오겠지만. 무언가 만들어진 것이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그 해답을 도움에서 찾고 싶다.

만들어진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모두가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만들어진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다 못해 게임기라도. (서울가면 당장 만들어 볼 첫 번째는 Raspberry Pi 랑 3D 프린터를 이용한 클래식 게임 콘솔!)
사람들이 이걸 가지고 놀면서 좋아하면 그것 역시 충분히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오늘의 학회에서도 역시 어떤 사람들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어떤 사람들은 실용적인 작품을, 어떤 사람들은 추상화 같은 음악을 들고 나왔다. 이 모두가 모든 사람의 이해를 구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사람은 그 어떤 것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작품이기 때문에.

하지만 대부분이 동조하는 무언가라면. 충분히 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참 부러웠다. 자신만의 정의를 가지고 이 작품이 지금은 프로토 타입이지만 나중에는 더 고쳐서 “COOL” 한게 될거야 라는 그 마음들이.
나는 그렇게 “COOL” 했던 적이 있었나?
항상 한 번에 끝내고 다음 것으로 넘어가려 하지 않았나?
책임감이 있는 척하며 결국 흥미를 잃어버린 장난감마냥 저 뒷편 어딘가에 쳐박아두지 않았나?

많은 생각이 드는 학회 2일차. 비내리는 코펜하겐은 아무런 말이 없지만 나는 정답을 안다. 그래서 더 쓸쓸하지만 조금은 기쁘기도 하다.

NIME 의 사람들에게서 조금은 삶의 방식을 배운 것 같다.

One clap, two clap, three clap, forty?

By clapping more or less, you can signal to us which stories really stand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