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6_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닷가.

오늘은 드디어 첫 번째 숙소의 마지막 날. 나 역시 늦잠을 자서 9시 40분쯤 일어난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나가거나 거실에서 열심히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다. 졸린 눈 부비며 씻으러 가는데 사람들이 늦게 일어났다고 뭐라한다. 난 하품을 하면서 어제 피곤했다는 변명을 하면서 샤워실에 들어간다.

짐을 챙기는 것보다 다시 싸는게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잘 넣고 잘 정리하는데도 어째 짐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몸뚱아리만한 캐리어 2개를 챙겨서 숙소를 떠난다. 떠나기전 Ramona 가 만나서 반가웠다며 인사를 한다. 서로 가벼운 포옹으로 아쉬움을 전한다. 카운터의 Barbara 역시 Check out 을 하고나서 남은 여행 잘하고 혹시 나중에 또 들러달라고 말한다.
말은 깊게 통하지 않지만 여행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라, 초보 여행자인 우리에게도 상냥하고 친절하다.


짐을 챙겨 나오니 거리에는 Farmer’s market 이라는 이름으로 장이 열렸다. 우리의 5일장과 같은 이 시장은 샌디에이고 전지역에서 돌아가면서 요일에 따라 열린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우리가 묵었던 Little Italy 차례!

코코넛 팬케이크를 사는데 계속 어떤 아이가 우리가 신기한지 보면서 손짓을 한다. 우리도 이들이 신기하고 낯설지만, 이들 역시 우리가 신기하고 낯선거 같다.

샌디에이고는 참 신기한 동네다. 길을 가다가 잠시 멈춰서서 숨을 깊게 들이쉬면 어디서든 꽃 향기가 난다. 다운타운이나 Gaslamp Quarter 에서는 향기가 희미하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바다 향기나 꽃 향기를 쉽게 맡을 수 있다.

꽃을 보고 향을 맡는 걸 좋아하지만 사본 기억은 거의 없다.
예전 어학원에서 한번 이 주제를 가지고 심도있게 토론한 적이 있는데 남자들은 꽃 사는걸 약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했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이 꽃을 사다주길 원한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나 역시도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꽃 냄새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여기저기서 쉽게 꽃을 접할 수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한 다발 정도 사고 싶어진다.
4월의 도시에서 프리지아와 장미 향을 너와 함께 느껴볼수만 있다면.


두 번째 숙소는 Ocean Beach 근처에 있는 유명한 호스텔이다. 일단 먼저 Old Town Transit Center 까지 트롤리를 탄 뒤, 우버를 이용해 다음 호스텔까지 간다.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맡기고 체크인 시간이 될때까지 숙소 근처를 걷는다.

호스텔 바로 앞이 이런 해변가다. 바로 해변까지 걸어서 2분 거리이다. 이 이상 내가 무엇을 더 바래야할까? 탁 트인 바다와 적당히 소금기 베인 바람. 햇빛은 늘 그렇듯 5일 내내 따뜻하지만 산뜻하게 비친다.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짐을 놓고 바로 사진에 보이는 다리로 향한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다리는 바다를 향해 쭉 뻗어있다. 이 위에서 사람들은 열심히 걷거나 낚시를 한다.

보통 낚시를 하시는 분들은 고기를 낚는게 주 목적이 아니라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삶을 반추하기 위해 하신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낚시란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하지만 여기서는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낚시를 통해 현재를 낚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놀라운 사실.
여기 동물들은 당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다리 중간에서 열심히 자기 관리 중이시던 갈매기님은 그저 장난에 불과했다. 이 사진을 찍으려 가까이 가는 도중에도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아. 님은 누구신가요? 당최 알 수 없는 큰 새 한마리가 난간에 앉아 사람들을 쳐다본다. 다른 사람들 역시 신가하다는 듯이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이 열심히 사진 찍고 놀랍다고 하는데도 저 자세 그대로 가만히 날아갈 방향만 응시한다.

하늘과 바다 모두 비슷한 색을 띄고 있다. 나에게 샌디에이고는 파랑이고 맑음이다.


다리에서 내려와 해변 적당한 곳에 자리를 펴고 앉는다. 저 담요들은 올 때 탔던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담요. 이렇게 쓰게될 줄은 그때는 몰랐지.
자리에 앉아 책도 보고 누워서 햇빛을 온전히 즐긴다. 시간이 어찌 가는지도 모르고 소리가 어찌 흐르는지도 신경쓰이지 않을만큼 조용히 뜨겁게 나는 내일로 향한다.


해변에서 나와서 잠시 살 것이 있어 다시 Fashion Valley 에 들른다. 신발이 낡아질 것 같아 새로운 신발을 사고, 서울에 있는 친한 동생에게 선물로 줄 인형을 산다. 그김에 동생 역시 평생의 동반자가 될 그 분을 만난다.

빙봉.

트롤리를 타고 다시 돌아오는 길. 이름도 성도 모르는 아저씨가 빙봉을 보며 이게 뭐냐 묻고는 어디서 왔냐며 이야기를 건네신다. 우리 역시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화답하며 동행한다. 아저씨는 어업에 종사하셨기 때문에 한국에 3번 정도 가셨었고, 현재는 목 부상때문에 일을 못하신다고 말씀해주셨다. 
‘감사합니다’ 를 한국말로 해주시고는 동생과 내 사진을 찍어주신다. 나도 기념으로 아저씨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여쭙고는 한 장 남겨본다.

부디 빨리 목이 나으시길. 그래서 예전처럼 부산, 필리핀 등 여러 나라를 다녀 오실수 있길 바래요.

친절한 아저씨께서 친히 버스정류장까지 안내해주시고는 휙 가버리신다. 감사인사도 못드렸는데.

대신 저 역시도 누군가 곤란해보이거나 낯선 이방인을 만나면 아저씨처럼 말도 먼저 걸어보고 할게요. 감사했습니다.


해변에서 읽은 책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많이 담겨있다. 
혜민 스님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셨나보다.
햇빛은 뜨거웠지만 책은 고요했기에.
나는 말없이 내용 하나하나를 탐닉해나간다.

이 문장은 나를 다시 몇 개월 전으로 돌려보내준다.
너의 오밀조밀한 입술에서 나왔던 그 말을
낯선 이국 땅에서 다시 볼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품어줄 수 있을 때 좋아하는 마음은 사랑이 된다는 말.
그대가 어떤 상황이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
예쁘지 않은 말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말은 예쁘면서 사랑스럽고 조금은 마음이 시리다.
입밖으로 내뱉는 그 모든 순간의 분위기가
누구에게서건 너를 그리게 될테니깐.

나는 너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될 순 없는걸까?


샌디에이고는 저녁에도 참 아름답다.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는 이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없지만

대신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아스라히 사라져간 아이들과 사람들.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모여서 마음을 촛불로 만들어
보여주고 비춰주고 나누는 사람들.

그대여 한 번만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한 번만 기억해주세요.
오늘은 4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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