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0_비일상적인 일상 #5_함께하는 행복

Philly 에서의 첫 번째 아침. 큰 방에서 혼자 맞는 아침의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씻고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제공되는 조식을 Ray 아저씨와 같이 먹기로 약속했기에 시간에 맞춰 서두른다.

나름 Buffet 식의 조식이다. 다행히도 오트밀과 빵, 음료와 과일이 있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시간이 되자 Ray 아저씨께서 친구분과 아이들과 같이 오셨다. 친구분께서는 미국에서 자동차 딜러를 하신다고 한다. 다섯 남자의 북적이는 아침. 고요할 틈없이 한국과 미국 이야기로 테이블은 채워진다.


식사 후에 차를 타고 Ray 아저씨의 교회로 향한다. 교회에서 음향 엔지니어로 사역중이신 Ray 아저씨께서는 교회 음향에 대한 생각이 많으시다. (사역이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신자분들께 좋은 음향을 들려드릴 수 있는지 고민하시고 연구하시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도 약간의 요청을 구하신다. 공연음향쪽은 많은 경험이 없지만 그래도 믹서를 보면서 열심히 이런저런 연결들을 연구해본다. 분에 넘치는 대우를 해주시고 계신 Ray 아저씨를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며 메뉴얼을 보고 믹서를 조작하며 사용법을 확인한다.


계속 음향 시스템과 씨름하다 케이블이 필요해 근처의 Guitar Center 로 향한다. 말로만 듣던 Guitar Center 를 와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한국에는 낙원상가에만 있고 다른 곳에는 피아노 판매점이 대부분이고 약간의 기타만 전시되어 있는데 이 곳은 엄청나게 큰 건물 전체가 악기와 레코딩 장비로 쌓여있다. Ray 아저씨 말로는 이건 중간 규모의 Guitar Center 라고 하신다.

건반을 계속보고 기타를 구경하느라 사진은 겨우 이정도. 평소에 관심있게 보던 AKAI Timbre Wolf 와 Arturia DrumBrute 도 만져본다. 이 곳이 천국이다.


케이블을 사서 외장 이펙터와 믹서를 연결하고 다른 곳으로 향한다. Ray 아저씨와 민석이, 민준이와 함께 점심을 간단히 먹은 뒤, Amish 마을 근처의 Sight & Sound Theatres 로 향한다. 엄청나게 큰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극장으로 주로 하는 뮤지컬은 성경의 내용들이다. 한마디로 기독교 전용 대형 극장!

외부 건물부터 멋지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뚫고 들어와 극장 자리에 착석한다. 사실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약간 걱정이기도 하다. 내용을 모르고 보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 아니나 다를까 피곤해서인지 초반의 20분 정도를 졸았다. 옆에서 민석이, 민준이는 재미있게 보는데 20살 많은 삼촌은 옆에서 졸다니…
부끄럽다.
20분 후에 잠에서 깬 건 충분히 잘 자서가 아니라 극의 스케일이 너무나 화려해서였다. 앞의 스테이지에서만 공연하는 줄 알았는데 양 옆의 커튼이 열리더니 거기서도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 마치 입체 스크린 처럼 앞의 좌측, 중간, 우측 모두가 스크린이 되버린다. 난생 이렇게 스케일 큰 극장은 처음이다.
스케일에 놀람도 잠시 Jonah 가 고래에게 먹힐 때는 실제 고래 크기의 조형물(아마도 풍선인 듯하다)이 객석위를 날아다닌다. 스테이지가 아니라 객석까지 날아다닌다.
(여기서 예측할 수 있듯 배우들 역시 스테이지부터 객석까지 막 날아다닌다.)
거기다 성인 남자 키의 5배는 되보이는 배부터 궁전까지. 입을 쩍 벌리고 계속 보았다.


극이 끝나고 잽싸게 차로 뛰어간다. 시간을 허비했다간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에 시달린다며 Ray 아저씨와 민석이, 민준이가 재촉한다. 보람이 있는건지 차도는 막히지 않는다. 오는 길 내내 아저씨께서는 Jonar 에 대해서, 자신의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신다. 어두운 밤, 짧은 여정에 어울리는 이야기 주제들. 철학적 문제와 개인의 가치관.


민준이가 수영을 하고 싶다고 해서 호텔 수영장으로 간다. 열심히 수영할 동안 Ray 아저씨와 나는 별 말없이 의자에 앉아 민준이 노는 걸 구경한다. 그렇게 하루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 닮은 아들, 널 닮은 딸' 혹은 ‘우리 닮은 자식들' 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렇게 생각을 바느질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수놓는다. 미래를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생각대로만 이뤄지길 소망할뿐.
나 역시 가끔, 정말 아주 가끔 내 생각속의 미래를 그려본다.
하나는 지금처럼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하며 혼자 열심히 사는 것. 여행도 자주 다니고,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하며 삶을 일궈내는 일.
다른 하나는 너와 함께하는 눈부신 아침. 부시다 못해 시린 햇살이 들어오는 어느 날. 내 옆에 잠든 너를 보며, 우리가 가족이 되었다는 서로에게 속한다는 믿음으로 함께하는 시간들. 그리고 그 안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쁜 아이들.


혼자 일어나고 잠드는 이 시간이, 하루를 온전히 바쁘게 Ray 아저씨와 보냈음에도 헛헛한 이 순간이 슬프다. 내 옆에 아무도 없구나.
그래 어쩌면 앞으로도 빈 집과 마주할 시간이 많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빨리 이 고요와 적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하는 행복은 그것이 손에 잡힐 듯 당연한 것이지만
막상 혼자인 순간에 생각나는 가장 절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누군가 내 옆에 있어준다면. 
오늘 하루를 같이 이야기하고, 눈을 마주보고, 손을 마주잡을 누군가 곁에 있어준다면. 
이기적이지만, 나는 니가 나를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조금 더 이기적이게도 
그대가 나를 그대를 위해 필요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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