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2_마지막 키스를 너와 함께

11시가 넘으니 하우스키퍼가 청소를 하러 들어온다. 동생도 그제야 깨더니 상쾌한 얼굴로 씻으러 간다. 너무 늦어서 그런걸까? 하우스에는 우리 말곤 아무도 없다. 
여유롭게 일어나 오후에 시작하는 하루.

시차적응이라는 핑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할수 없었겠지.

거리는 오늘도 화창하고 조용하다. 이튿날의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자기 할일들을 하고 그 안에 이방인인 우리를 딱히 신경쓰진 않는다.

낯선 거리에서의 무신경함은 어쩌면 친절과도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간 곳은 Westfield Horton Plaza. 다운타운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몰이라고 한다. 광장을 가로질러 총 5층 높이의 건물이 시내 한 가운데 있다. 겉보기엔 한국의 가든 파이브? 같은 느낌이지만 그 안은 미국이었다.

아침도 걸러 먹은지라 일단은 4층 푸드코트로 향한다. 이리저리 메뉴를 살피던 중. 동생의 눈에 띈 파니니! 파니니와 채식주의자용 파스타를 시키는데 사장님이 한국분이시다.

흐리고 조그맣게 보이는 여성분이 한국인 사장님.

너무나 반갑다는 느낌이 사장님의 눈과 말에서 느껴진다.

약간 잔치국수와도 같은 면과 치즈가 눅진한 파니니를 먹고나서 동생은 옷을 보겠다며 옷 매장에 가고 나는 혼자 남아 이리저리 둘러본다. Jimbo라는 유기농 마켓을 구경하고 나니 마땅히 갈곳도 없어 Horton plaza 주위를 배회한다. 바로 옆에 큰 건물들이 있고, 오피스가 있고, 스타벅스가 있다. 그런데 길거리에 사람들은 이상하리 만치 없다. 한가한 시간대인건 맞지만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한 네,다섯 있을까?

지나는 차 역시 많지 않다. 이런 대도시의 이런 조용함은 아무래도 기묘한 조합이다.
차가 많지 않아 시끄러운 클랙슨 소리나 멈춰선 차의 엔진소리 역시 들을수가 없다.
멈춰선 기묘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에 멈춰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며, 때로는 타인의 시간을 향유하며 그렇게 멈춘 시간의 위를 천천히 걷고 있다.


플라자에서 볼일을 다 보고나서 대중교통 이용을 위한 Compass card를 사기위해 East Village 에 간다. 샌디에이고의 버스, 트롤리를 이용하기 위해선 각 정류장에서 돈을 내거나, 정기권을 구입해야하는데 이 정기권 구입을 위해 그나마 가장 가까운 Albertson’s 이라는 마켓에 들르기로 했다.

가는 길 여기 저기엔 노숙자분들이 의외로 많다. 한국의 노숙자분들과 마찬가지로 그 분들 역시 길에서 삶을 이어나가시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크게 소리치거나 숨지 않으신다. 대게 서울역 근처를 제외하고는 어두운 골목이나 후미진 건물사이에 계신걸 많이 봤는데 여기에서는 햇빛 잘드는 건물 옆에 앉아 계시거나 누워계신다. 어떤 삶을 살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 역시 나와 같이 햇빛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


마켓의 친절한 아주머니에게서 카드를 구입하고 나서, 미국의 마트를 둘러본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맛있어보이는 간식들과 케익을 싼 값에 판다.

동생은 이걸 안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특히 호두파이나 사과파이같은 한 판에 5~6 달러짜리 간식류는 한국에도 있었으면 싶다. 어머니께서 매우 좋아하실텐데..

이제 산 Compass Card를 테스트 하기위해 가장 가까운 트롤리 역으로 무작정 간다.

티머니랑은 다르게 트롤리는 역에서 카드를 찍고 타야한다. 분명 카드에 적혀있었음에도 보지 않고 역에 가서야 확인하다니. 이렇게 익숙함이 무거운거고, 무지함은 예상도 못한 곳에서 날 향해 툭 튀어나온다.


트롤리는 생각보다 훨씬 편하고 훨씬 낭만적이다. 조용한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전차의 낭만은 익히 TV로 접했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트롤리 내부. 지하철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트롤리 블루라인, 오렌지라인, 그린라인이 열심히 만나는 역인 Santa Fe Depot 으로 향한다. 여기는 바닷가 근처라 그런지 내려서부터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시시각각 불어온다. 원래 목적지는 U.S.S Midway Museum.

하지만 걷다보니 생각도 못한 풍경이 반겨준다.

‘Embarrassing Peace’ 혹은 ‘Save the kiss’ 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동상은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그 승리를 기념하면서 타임 스퀘어 앞에서 선원과 간호사가 키스한 것으로 유명해진 사진을 본따서 만든 동상이다.
전쟁이 끝난 당시의 기쁨을 표현하는데 사실 키스라는 행위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대게 마음과 마음이 통했을 때, 상대에게 내 온기를 오롯이 가장 가깝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니깐. 저 둘이 누구였던 무슨 사이였던 저 순간만큼은 같은 마음이었고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본다. 내 온기가 내 마음이, 그대의 평화를 더욱 어루만져주기를. 그래서 더 이상 걱정으로 마음아프지 않길.


이 사진의 주인공은 중국인 엄마와 아가다. 저 아가는 계속 눈을 마주치며 찡긋거리며 웃는데도 아무 미동도 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만 보았다. 쑥스러운건지 신기한건지 모를 그 눈망울과 표정이 이뻐 한참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나를 보다 싫증났는지, 바다와 이어진 계단을 따라 뛰기도 하면서 자기 혼자 논다. 그러다 엄마가 계단에 걸터앉자마자 엄마 곁으로 쪼르르 걸어가 엄마를 쳐다본다.

아직 엄마에게 줄 것은 눈빛과 행동인 아가의 모습에,
엄마는 전화하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두고 아가를 다정하게 쳐다본다.


샌디에이고가 확실히 항구 도시인걸 깨닫게 해준 풍경.
‘Save the Kiss’ 를 지나 다시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보인 바다와 정박되어 있는 요트들. 우리는 겨우 동해정도 가야 볼 수 있는 요트들이 여긴 차타고 30분이면 볼 수 있다.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해변가를 찍은 사진. 오후 5시 반 정도 임에도 불구하고 차도에 차가 없다. 그나마 사람은 조금 많지만 그래도 평일 관광지라기엔 너무 없다. 사람에 치이고 도시에 괴롭힘 당하다보니 받을 수 없는 햇살을, 버스를 기다리며 원없이 받는다. (참고로 샌디에이고는 햇살이 굉장히 따뜻하다 못해 뜨겁지만, 바람이 시원하고 습하지 않아서 한 곳에 머물지 않으면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녁 6시 반에 같은 방에 머물고 있는 Tunde 와의 저녁 약속이 있어 서둘러 귀가한다. Tunde는 나이지리아 사람으로 현재 Dallas 에서 살고 있지만 일 때문에 San diego 에 왔다고 한다. 그와의 저녁은 전날 잠들기 전 갑자기 잡혔다. 무심결에 건넨 말 한마디가 저녁 약속이 되는 건 여행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

그와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 근처의 Little Italy 로 향한다. 이 곳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샌디에이고에 이주해 오면서 만들어진 동네라고 한다. 마치 인천의 차이나타운과도 흡사할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길 양쪽으로 즐비해있다. 대부분 비싸지만 한국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가격을 생각해보면 거의 비슷하다. Tunde 와 우리는 부담을 느끼며 이리저리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다 결국 한 피자집으로 들어간다. 우리에겐 외국 음식인 피자가 Tunde 에게는 간편한 가정식 정도겠지.


Tunde 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Aliexpress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의 발단은 시계를 사기 위해 Best Buy 에 가겠다였는데, 거기에 Tunde 가 부자냐고 반문하며 시작되었다. 자신도 Aliexpress 나 Amazon 에서 산다며, Best Buy 는 너무 비싸다며 중국의 공장 문제와 임금 격차에 대해 토로한다.
대체 왜 중국의 노동자들은 그렇게 싼 것이며 그들이 정말 많이 만드는데 왜 부자가 되지 못하는가?
물론 모든 말을 다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거기에 대해 그들의 임금이 비싸지고 있으며 결국 모든 문제는 기업의 이익 창출과 불법적인 부분들에 있다고 전해주었다.
아마 Tunde 역시 나의 모든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의견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Tunde 는 먼저 들어가고 나는 동생과 CVS에 들른다. 동생은 Arizona Greentea 를 무슨 세제 사이즈 크기의 팩으로 산다. 저게 그리도 맛있을까?
나는 면도기와 쉐이빙 폼, 머리를 다듬을 제품을 산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다시 Little Italy 에 들러 베이커리에서 빵과 쿠키를 좀 산다.

이것들을 먹으면서 내일 어디 갈지, 무엇을 볼지 열심히 의논하다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좋은 풍경을 보면서, 멋진 동상을 보면서 그리고 피자를 먹으며 Tunde 와 이야기하면서도 가끔 너는 불쑥 튀어나온다.

‘여기에 너도 같이 있었더라면’

우리가 같이 좋은 풍경을 보고 멋진 동상을 보고 트롤리를 타기 위해 먼 마트까지 열심히 걸어가고 그리고 피자를 먹으며 Tunde 와 이야기한다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내게 해줄까?
좋은 풍경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을 것 같고,
멋진 동상에 대해 멋지지 않음을 이야기 했을 것 같고,
트롤리를 타기 위해 걷는 길이 따뜻하다고 했을 것 같고,
Tunde 에게 뜬금없는 질문들을 갑자기 던졌겠지?
아닐까?

그래,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냥 짐작만 할 뿐이겠지.

그래도 어쩌면.
나 역시 너에게 내 온기를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햇빛 따스한 바닷가에서
마지막 키스를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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