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시몬유다북 첫사랑…의 수십년 후)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마음 속에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늦가을 같은 바람이었다. 청량감은 있지만 피부에 소름이 돋는 얼음 섞인 바람. 그저 기분 탓이고 그는 그냥 나를 만나러 온 것 뿐이라고 애써 자신을 다독였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는 얼음 같았다. 생각보다 나이들지 않은 얼굴은 퍼석하게 얼어붙어 있고, 머리 위에는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아니 눈 같은, 하얀 머리카락들이.

“오랜만이네.”

“그렇네요.”

그러고보니 그는 오래 전 언젠가 한 번 보았던 그의 아버지를 놀랄 만큼 많이 닮아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째서인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표정으로 나를 아주 한참동안 바라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무엇인가를 털어내듯 고개를 돌리고는 다른 쪽으로 가 버렸었다. 이름을 듣고서 아 시몬의 아버지인가, 했을 뿐 왜 나를 그렇게 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그 사람보다는 키가 아주 조금 더 큰 것도 같고.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아직 소년 같았는데. 그 때는 그래도 가끔은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몬은 그냥 향수병에 귀국한 것 뿐이고 몇 년이 더 지나면 청춘 시절을 보낸 이곳을 찾을 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에는 나는 그를 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여긴 어쩐 일로…”

“안식년 휴가를 받은 김에.”

“그래서 휴가차 가루이자와에?”

그는 재미없는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런 표정이었어, 오래 전 그의 아버지가 나를 보았을 때는.

“그리 편히 쉴 주제는 못 됩니다. 그저, 아 이제 이런 나이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엇이 생략된 문장인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좀 들어갈까?”

나는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 내 손을 잡지는 않았다.

데스크 담당 직원이 차를 내 왔다. 그는 세련된 매너로 인사를 하고, 입만 조금 축이고 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손에 반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또 모를 일이지.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봐도 되려나.”

“그냥, 무난하게요.”

손목에 보이는 커프스는 심플하지만 고급스러웠다. 내가 기억하는 시몬의 흔적은 거의 없고 그는 놀랄 만큼 아버지를 충실히 복제해내고 있었다. 게이오 출신들 대부분이 그렇기는 하고, 나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수없이 알고 있지만,….

그는 물끄러미 나를 보다 입을 열었다.

“… 동생이라는 사람이 한 번 찾아왔고. 그, 미용사 한다던.”

“아, 그렇지, 말 안해서 미안하네.”

“딱히 형제가 없다고 한 것도 아닌데 뭐 어떻습니까. 그리고 그 후에도 몇 번, 닮은 사람은 봤었죠.”

“뭐, 닮은 사람이야….”

“그거 말고는 딱히 기억나는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뭐라 대답해주면 좋겠나.”

“어떻게 지내셨는지 말씀해 주시는 게 제일 적당하겠죠.”

“임상 강사로 몇 년 있다가,… 교수까진 되지 못하고 적당한 시기에 나왔는데, 아무래도 이런 곳이 수요가 있으니까… 유지비는 많이 들지만 그럭저럭 적자가 나지는 않고 있는 정도야.”

시몬은 그거 말고, 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잠시 보다가 홍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찻잔에 시선을 둔 채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제가 그 때 보내드린 분은,… 기억 못 하시진 않을 텐데요. 그 불면증이고, 좀 신경질적이고, 선이 고운 얼굴을 하고 있는.”

“도쿄 부근에서 2년쯤 사셨지.”

“….”

“그게 전부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지.”

“형은, 그때나 지금이나 참 영문 모를 소리를…”

“그렇게 2년쯤 살다 죽었다는 의미야. 나는 아무래도 부고를 전하는 일에는, 좀 익숙치가 않아서…”

“설마 자살은…”

“암.”

“아, 그러면 그게 다 종양으로 인한….”

“그것까진 모르는 일이지만.”

“어차피 거기서 치료 받았을 텐데 연구 좀 해 보지 그러셨어요.”

“시몬, 너는 안 믿겠지만,….”

뭔가가 턱 막히는 기분이 들어서 말을 이을 수 없었지만 시몬은 아주 조금 미소를 지었다. 예전의 그 표정은 아니었지만,

“아니, 이제 됐습니다. 형이 그렇게 믿었다면 그걸로 충분한 일이고.”

“그래서 그 때 연락할까 생각도 했는데,…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그냥 나 없이 잘 지낼 거 같아서,….”

“그렇겠지요.”

지극히 평온해 보였다.

“미안하다.”

처음부터 이 말을 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시몬은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제게 무슨 사과할 일이 있으시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온 것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가 아닐까 해서,….”

“그런 건 없었어요. 다만 좀, 보고 싶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몇 번 닮은 사람을 보고 나니까 그저 내 집착이 그냥 아무나 잡아서 닮은 부분을 찾아내려는 게 아닌가 해서.”

“그래서, 그런 거 같은가?”

“모르겠네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난 수면장애 전문이라. 하지만 굳이 의견을 묻는다면 닮은 사람을 찾기 어렵지는 않은 흔한 얼굴이라 생각은 하지.”

시몬은 납득이라기보다는 그냥 목의 가동범위를 시험해 보는 것처럼 무심히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뭔가가 해결될 줄 알고 왔다면, 정말 미안하게 됐군”

“아닙니다. 저는 이걸로 충분합니다. 얼마나 많은 순간 많은 걸 해결해 주셨는데.”

정말 놀랄 만큼 일본인적인 말투였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신세가 많았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을 하듯이. 그리고 그의 얼굴은 딱히 표정이랄 것이 없어 보였다. 악수를 청하는 내 손을 그는 무심히 십 초쯤 잡았다 놓았다. 내가 기억하는 손이 맞던가, 생각해보니 악수는 한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한데, 내가 기억하는 시몬은,

“평안하십시오. 그럼 이만”

…같은 인사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나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달리 어쩔 수 있었겠냐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원망해야 할 지 몰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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