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작업을 지금 시작하세요.”
작업 作業 이 뭘까요?
작문(作文), 작품(作品), 작업(作業), 공작(工作) 등에 들어가는 지을 작(作)자는 ‘사람(亻)이 물건을 짓다(乍), 만들다’는 뜻입니다. ‘업’은 ‘일’을 자체를 의미할 때가 많은데, 두 한자어를 합치면 ‘작업’이란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입니다. 막상 무언가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막막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작업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작업은 늘 ‘놀이’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강요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재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무언가 만들고 싶은 충동이 일어야 작업이 시작됩니다.

2017년 1월, ‘C Program’은 ‘리마크프레스’와 함께 이문동에 ‘아이들의 작업실, 엄마들의 작업실’을 열었습니다. 이문초등학교 옆에 자리한 이 작업실은 동네 아이들이 언제든지 들렸다 가는 곳, 무엇이든 자유롭게 만들어 볼 수 있는 곳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각 종 메이킹 프로그램보다는 작업실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자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지도록 자연스럽게 작업을 유발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생소한 이 공간을 사람들은 ‘공방’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문’, ‘DD238’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뭔가를 만지작거리는 걸 지켜보고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엄마들도 무언가 도구를 집어 들고 시도하는 모습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타고나길 호기심 그득한 존재로 태어난 아이들과는 달리 어른들은 ‘작업’을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작업은 대체 뭘까요? 어떻게 해야 나도 시작할 수 있을까요? 무언가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스토리(이야기)를 시작하는 행위’ 라고 생각해보시길 제안합니다. 작업이 직업(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작업은 스스로의 만족이 중요하기 때문에 철저히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배제하고 오롯이 자기중심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습니다. 코 앞에 있는 펜을 집어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거나, 종이를 접어서 가위로 특이하게 잘라보는 것도 모두 작업의 시작입니다. 톱질, 드릴사용법을 배워서 내가 쓰고 싶은 책상, 책장을 만들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이 일어나려면 그리고 지속되려면 내가 꿈꾸었던 이야기들을 되돌려봐야 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기록하세요. 당신이 상상한 이야기를 옆에 있는 친구에게 들려주고 생각을 나누세요. 그러면 근사한 무언가를 완성시키지 않았더라도 이미 당신만의 작업은 시작되고 있는 셈입니다. ‘지을 작’(乍)자가 단독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고 다른 글자와 만나 소리로 사용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제 최초의 작업은 20여년에 시작한 ‘타임머신’ 작업입니다. 해질 때까지 동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쏘다니던 저는 가장 오래된 친구와 함께 우연히 본 SF영화를 본 뒤 ‘타임머신’을 만들겠다 다짐합니다. 작당모의를 한 저와 친구는 진지하게 타임머신의 설계도와 기능을 스케치하고, 약 2년간 동네에 온갖 건전지, 전선, 부서진 시소 등을 아파트 뒤 창고에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비오는 날에는 고철이 녹슬까봐 버려진 이불로 덮어두기까지 했습니다. 타임머신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모으는 작업을 2년 넘게 진행했던 저와 친구는 결국 제작 기술의 한계와 이사 문제로 재료들을 꽁꽁 숨겨둔 뒤 작업을 종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 말도 안 되는 이 상상을 무시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은 부모님들과 경비아저씨, 허무맹랑한 꿈에 동조해준 친구들 그리고 무엇이든 숨길 수 있었던 아파트 창고는 어린 시절 ‘작업’이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 최초의 작업에서 겪은 시행착오들은 지금까지 제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 때거나 협업할 때 중요한 노하우로 발휘되곤 합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문238(어린이 작업실)’에서는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자마자 들러 작업실 매니저와 반갑게 인사하고 자신이 만들던 것을 이어 만들기도 하고, 엄마를 기다리며 간식을 먹기도 합니다.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재료들을 발견하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가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며 자신의 작업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때론 친구들을 위해 바이올린 연주도 들려주고, 자기들끼리 아이돌 그룹을 결성하여 근처 예술학교 선생님과 함께 미디어 작업을 함께 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제작도구들이 놓여 있고 사용법을 설명하는 ‘도구 정거장’에서는 글루건을 손을 데지 않고 사용하는 법, 망치 혹은 줄톱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배웁니다.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아이들의 상상력이 활짝 펼쳐질 수 있도록 배려가 가득한 ‘리마크프레스’의 공간설계와 작업실을 들르는 아이들 이름을 모두 외우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매니저들, 동네에서 이 공간을 응원하는 어른들의 마음이 모여 가능했습니다.

이제는 어떤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의견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도 다양하고, 어떤 전문가와도 소통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찾거나 작업에 필요한 돈을 펀딩사이트를 통해 구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이 작업을 시작하기 좋게 만들어 준 반면, 작업 외에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생겨났죠. 내가 원했던 무언가를 소비를 통해 이룰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상상했던 그 이야기를 나만의 작업으로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급변하는 시대에 평생 지속할 직업을 찾기 보다는 내가 꾸준히 가꾸어 나갈 수 있는 작업을 찾는 것이 몸은 고되겠지만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어떠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문238(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238번지)’로 놀러오실 것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