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글쓰기 전 일기 ] 질문의 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야할 때 마음 속에 차오른 말들이 문장으로 꺼내지지 않고 있더라도 초라하게 느껴질 때 서점을 간다. 우선 오래 멈췄던 글을 써야 하니 이곳 저곳 막 놓인 책들도 정리하고, 어지럽게 널려진 물건들도 제자리를 찾아간다. 산란한 마음이 정돈된 방처럼 조금 깨끗해지면 글을 바로 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간다. 노동을 했으니 산책을 하며 머리를 환기시켜야 한다. 그리고 다시 써야할 글을 생각한다. 청소를 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나아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어떤 말부터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청소가 미진한 탓이었나 싶어 잡동사니들을 정리할 수 있는 수납박스와 바닥의 머리카락 한 올 떨어져있지 않도록 잘 붙는 찍찍이 클리너를 산다. 물건을 사는 동안 글을 써야만 한다는 애초의 동기는 잊혀졌고, 세워둔 자전거를 찾는다. 우연히 자전거가 세워진 곳은 서점 근처. 양 손에 둔 다이소 비닐을 내려둔 채 서점 신간코너에서 서서 새로 들어온 책들을 훝는다. 어릴 때 처럼 처음 보는 책의 모든 페이지를 찬찬히 넘겨보며 경탄하던 모습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누가 뭘 어떻게 썼나, 이 책은 또 몇 년 생 작가가 언제 쓴 건가, 내용도 없는데 왜 이렇게 비싼가…’ 등의 생각을 한다. 그러던 차에 어딘가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질문의 책’을 집어든다. ‘파블로 네루다’라는 칠레에서 태어난 멋있는 할아버지가 쓴 시집이다. 영화 속에 등장해서 알게 된 네루다. 표지 뒷면에 내가 찾는 글의 힌트가 있으리란 강한 예감이 든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이 문장에 이어 뒷부분을 읽어보면,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까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왜 우리는 다만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내 어린 시절이 죽었을 때
왜 우리는 둘 다 죽지 않았을까?
만일 내 영혼이 떨어져 나간다면
왜 내 해골은 나를 좇는 거지?
이쯤되면 책을 살 수 밖에 없고 난 다시 마음이 경건해져서 다른 책들까지 애정어린 시선으로 손에 들었다 놨다 하며 고른다. 자전거 핸들 양쪽이 무거워지도록 책을 사고선 집에 와서 가뿐하게 낮잠도 잔다.
시 때문인지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 꿈을 꿨다. 그 곳에서 난 헤엄치고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마음 먹은대로 갈 수 있는 내가 슬픈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 C program의 뉴스레터에 공유하고 싶은 시
질문의 책 8
냉혹하고 사납게 불을 내뱉는
화산들을 뒤흔들어 놓는 건 멀까?
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을 발견할 수 없었을까?
고양이는 얼마나 많은 질문을 가질 수 있을까?
눈물은 아직 흐르지 않은 채
작은 호수들에서 기다릴까?
아니면 그들은 슬픔을 향해 흐르는 보이지 않는 강들일까?
다음의 세대의 건강한 성장이란 바로 아이들이 이런 질문들을 잃지 않는 일이 아닐까? 정답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 재미있는 질문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아이들이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다뤘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함께 질문여행을 떠나는 어른으로서 부족한 편지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