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하세요 — [왓에버 웍스 Whatever Works]

우디 앨런(Woody Allen)은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재능보다는 운”이라는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모짜르트나 피카소 같은 천재들이 자신의 재능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앨런이 보기에는 그들도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주장이죠.

만약 피카소가 캄보디아나 소말리아의 오지에서 태어났다면 세계적인 화가가 되기는 커녕 굶어죽지 않으면 다행이었을 거다, 재능은 있는데 운이 없어서 신발공장이나 커피농장에서 평생 일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결국 인생에서 우리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운’이다… 이게 칠순을 넘긴 이 영감님의 인생관입니다. 참 더럽게 우울하고 저주에 가까운 비전이지만, 마땅히 반박할 말도 없는 게 사실이죠.

이런 인생관은 [매치 포인트]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운수신의 놀음에 꼼짝못하고 낑낑대는 나약한 인간들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이 잔인한 영화는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비극이자, 소름끼치는 희극이었습니다. 이어 [스쿠프]는 같은 주제를 다소 희극적인 터치로 다시 한번 반복한 영화였구요. 가장 최근작인 이 [왓에버 웍스 Whatever Works]에서 앨런은 또 다시 ‘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보리스(래리 데이비드)는 소시적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뻔’ 했던, 하지만 지금은 그냥 성미 고약한 노인네입니다. 이 영감은 과거 우디 앨런이 직접 연기한 캐릭터들에서 좀 더 거칠고 공격성이 강화된 버전이죠. 보리스는 매사에 비평적이고, 독설을 퍼붓고, 염세적인데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건강염려증 환자이기도 합니다. 다친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며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관객을 향해 말을 걸어대는 이 할아버지는 굳이 마리에타(패트리샤 클락슨)가 아니라도 호감을 느끼기 어려운 인물인 게 사실이에요.

그러던 어느날 이 영감의 삶에 가출한 소녀 멜로디(에반 레이첼 우드)가 끼어듭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소녀 멜로디는 보리스를 마치 우상처럼 떠받들며 자신의 모든 기호를 그에게 맞추려고 노력하죠. 보리스는 또 보리스대로 멜로디를 자기 뜻대로 개조하는 일에서 삶의 ‘균형’을 얻구요. 결국 둘은 결혼합니다. 하지만 이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왜냐. 인위적인 조합이니까요. 멜로디가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게 뭔지 ‘운좋게’ 발견하는 순간, 끝장나게 되어 있는 결합이었으니까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멜로디의 엄마 -마리에타- 는 딸을 맘에 안 드는 영감탱이와 갈라놓기 위해 잘생긴 청년 랜디(헨리 카빌)를 끌어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기독교 광신도 시절에 꾹꾹 눌러담고 있던 재능을 발견하고, 두 남자와 동거하는 파격적인 사생활까지 시작하게 되죠. 나중에는 멜로디의 아빠도 아내와 딸을 찾아서 보리스의 집에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역시 오랜 세월 꾹꾹 눌러두고 살던 자신의 ‘본성’을 발견합니다. 멜로디는 보리스와 헤어지고 랜디와 연애를 시작하구요. 그 영향으로 보리스는 또 한번 자살 시도를 하지만, 그게 오히려 새로운 사랑을 찾는 계기가 되죠. 그리고 마지막은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해피 뉴 이어’를 외치는 엔딩.

기본적으로 [왓에버 웍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있다면, 그걸 인위적으로 억누르지 말라는 거죠. 가령 마리에타를 보세요. 그녀는 오랜 세월 자유분방하고 예술적인 자신의 기질을 기독교 신앙으로 억누르고 살았습니다. 게다가 그 동안 그녀는 마치 ‘욥’처럼 불행에 시달렸죠. 물론 우디 앨런은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간에’ 원하는 대로 하며 산다고 행복해진다고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면 자의에 의해 불행의 늪으로 빠지는 일만은 막을 수 있다는 게, 그래서 이 불확실하고 고통으로 가득찬 우주에서 조금이나마 덜 불행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앨런이 하고자 하는 얘기에요.

무엇보다 우디 앨런은 ‘우연’과 ‘운’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앨런의 최근 영화 중 이렇게 우연에 많이 의존한 영화가 있나 싶을 정도에요(그래서 미국 평론가들은 혹평했죠). 멜로디가 보리스의 집에 나타나서 결혼까지 하게 된 것도 우연, 마리에타가 나타나서 랜디를 연결시켜준 것도 우연, 그녀가 사진작가가 되고 두 남자와 살게 되는 것도 우연, 존이 자신의 본능을 되찾게 되는 것도 우연, 무엇보다 보리스가 ‘배필’을 찾게 되는 것도 우연. 그야말로 이 영화는 우연과 우연의 연속입니다.

결국 이 모든 우연은 또다시 ‘운’으로 귀결됩니다. 가령 마리에타는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뒤늦게라도 자신의 재능과 본성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세상에는 그녀와는 달리 죽을 때까지 자기가 가진 능력이나 타고난 기질대로 살지 못하고 먼지가 되는 사람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중요한 건 그녀의(또는 그의) 재능이 아니라 ‘운’이라는 점을 [왓에버 웍스]는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죽어라고 노력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그 노력은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넘쳐나도 우연이 인도해 주지 않으면 마리에타는 평생 기독교 광신도로 늙어 죽었을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우연이 인도해 주는 대로, 운이 따르는 동안,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 단지 그 정도라는 이야기죠. 그 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왓에버 웍스]는 이야기합니다.

일전에 저는 [매치 포인트]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에 가깝다고 썼습니다. 이제 [왓에버 웍스]에 대해서는 반대로 이야기해야겠군요. 이 영화는 가까이서 보면 약간 신경질적이지만 유쾌한 희극이지만, 먼 발치에서 내다보면 무시무시한 비극입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무력함에 대해 비웃는 이 70대 영감님의 궁시렁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 하네요. 어째 우디 앨런은 늙을 수록 점점 더 지독해지는 것 같습니다.

Rating ***


2009/11/10에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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