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희극 — [카산드라의 꿈]

형제지간인 이안 블레인(이완 맥그리거)과 테리(콜린 패럴)는 영국 노동자 계급 청년들입니다. 이안은 아버지가 하는 식당 일을 돕고, 테리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죠. 혈기왕성하고 건장한 두 청년에게 현재의 평범하고 따분한 삶은 불만족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두 사람 앞에 평소 너무도 갖고 싶었던 고급 요트가 중고품으로, 아주 싼 가격에 나타납니다. 둘은 갖고 있던 돈 전부에다 때마침 테리가 도박에서 따낸 돈을 합쳐 요트를 구입하는데 성공하죠. 그리고 여기에 -거액을 가져다준 경주견에서 따온- 이름을 붙입니다. ‘카산드라의 꿈’이라고 말입니다.

우디 앨런(Woody Allen)은 영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면서 특유의 신경증적 지식인 캐릭터와 완전히 결별하는 듯합니다. 교양이 모자란 테니스 강사가 주인공인 [매치 포인트]나 스스로가 마술사로 분한 [스쿠프]에 이어, [카산드라의 꿈 Cassandra’s Dream]에서는 아예 지식인이나 상류 계급이 영화 밖으로 사라져 버렸죠. 주인공인 블레인 형제에게 ‘카산드라의 꿈’은 그저 행운을 가져다준 경주견의 이름일 뿐, 그게 그리스 비극 속 여예언자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어주지 않았던- 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죠. 만약 그 점을 의식했다면, 그런 ‘불길한’ 이름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특히 운수신을 신봉하는 테리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사비나 크립파(Sabina Crippa)가 지적했듯 카산드라는 ‘말과 외침과 노래 사이에 자리한 소리의 인물’입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지만 끊임없이, 심지어 아버지에 의해 감금된 뒤에도 계속해서 경고의 소리를 발하는 인물이 카산드라죠. 이건 일정부분 “사회적 규범의 존재를 상기시켜주고 그것을 파괴했을 때 오는 결과에 대해 경고하는(움베르토 에코)” 코러스(chorus)의 기능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카산드라의 꿈’이라는 요트가 도입부에 등장한다는 점은 의미가 있어요. 이 요트는 한편으로는 (디제시스상으로) 내면에만 잠재되어 있던 형제의 허영심에 불을 당기는 역할을 합니다. 뭔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은 형제의 야망은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이 요트를 만나면서 구체화되고, 방향을 얻고, 결국 끔찍한 비극으로 향하도록 두 사람을 추동하죠. 하지만 요트의 이름이 암시하듯 그 실패와 파멸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단지 무지하기 때문에, 또는 믿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가련한 주인공들이 그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뿐입니다. 그리스 비극의 영웅들이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요.

[카산드라의 꿈]은 비극적인 영화적 색조와 결말을 지닌 영화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비극과는 다릅니다. 여기에서는 우리(관객)보다 우월하거나 고결한 인물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그나마 지혜로운 인물은 블레인 형제의 아버지가 유일합니다. 그는 끊임없이 분수에 맞게 살라고, 부당한 욕망을 버리라고 가족들에게 충고하죠. 하지만 경제적 무능 때문에 그의 말은 아내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무시당합니다). 대신 이 영화엔 다른 사람의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허세를 떠는 형과 도박중독에 마약중독자인 심약한 동생, 탐욕스럽고 속물적인 모친, 부족한 재능을 육체적 매력으로 보충하려는 여배우, 무엇보다 조카들에게 살인을 사주하는 메피스토펠레스 사업가 같은 인물 군상만 가득합니다.

특히 주인공 블레인 형제를 대하는 영화의 시선은 매우 가차없고 냉정합니다. 이안은 그의 아버지가 말하듯 ‘자기가 가진 것 이상을 원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우상인 갑부 하워드 삼촌(톰 윌킨슨)처럼 되기를 항상 바라죠. ‘오르지 못할 나무’인 여배우(헤일리 앳웰)에게 한 달콤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안은 남들을 기만하고 나중에는 자기를 기만하다 파멸의 구렁으로 떨어져내립니다. 한편 동생 테리에겐 형만한 야심은 없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자그마한 ‘운’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는 운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의 그는 운수신의 장난처럼 펼쳐놓은 상황에 끌려다니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죠. 테리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무언가를 이뤄내는 순간은… 죽음을 맞이하는 바로 그 순간 뿐입니다! 그러니 이런 친구들은 결코 전통적인 비극에서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블레인 형제는 잔인하고 뒤틀린 희극의 불쌍한 희생자에 가까운 사람들이죠.

실제로 우디 앨런도 그런 효과를 노린 것 같습니다. 그는 이 범죄 드라마를 통해 비극적 요소(장중하고 심각해서 심지어 환기구가 필요할 것만 같은)를 희극적인 요소와 하나로 버무립니다. 도입부에 ‘카산드라’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저주 아래서, 열등하고 약한 주인공이 자신의 이룰 수 없는 욕망을 향해 몸부림치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끌려다니며 좌절하고 파멸하는 모습을 조금의 동정이나 연민도 없이 보여주는 거죠. 특히 범죄 이후 나약한 테리가 마치 졸갑증에 걸린 우디 앨런처럼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대면서, 영화의 희극적 요소는 한층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건장한 체격의 터프가이 콜린 패럴이 우디 앨런처럼 부들부들 떨며 말을 더듬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아마도 악마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키득키득거리고 배꼽이 빠져라 웃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악마들을 위한 희극’인 셈입니다. 물론 ‘인생은 비극’이라고 굳게 믿는 우리네 입장에서는 도무지 웃을 수 없는 희극이 되겠지만요.

영화는 앞서 언급했듯 통풍구가 필요해 보일 정도로 무겁고 심각하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범죄와 비행] 같은 영화에서도 빠지지 않던 우디 앨런의 유머 따위는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죠. 음악 또한 오프닝과 엔딩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사용을 억제하고,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 간결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기존의 팬들로서는 우디 앨런 영화 특유의 매력이 상당부분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어요. 언제나 그렇듯 캐스팅과 배우들의 연기 질은 뛰어납니다. 개인적으로는 불안에 떠는 콜린 패럴의 모습도 재미있었지만, 일종의 이미지 캐스팅인 이완 맥그리거의 연기가 더 호감이 가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상함과 사악함의 두 얼굴을 지닌 삼촌을 연기한 톰 윌킨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가 아니었다면 이 비인간적인 캐릭터가 지닌 설득력은 상당부분 줄어들었을지도 모릅니다.

Rating ***1/2


2009/06/28에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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