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회의 ‘만들어진 전통’ / 버나드 홀랜드

다음 글은 뉴욕타임스의 클래식 평론가 버나드 홀랜드(Bernard Holland)의 칼럼으로, 원제는 “콘서트 애호가 여러분, 아무때나 박수치고 떠들고 소리치세요 Concertgoers, Please Clap, Talk or Shout at Any Time”입니다. 여기서 필자는 현재의 과도하리만치 엄격한 콘서트 에티켓에 대해 반감을 표하면서, 과거의 연주회에서는 지금과는 달리 ‘안다박수’를 비롯한 청중의 참여가 훨씬 자유로웠음을 증거를 통해 보여줍니다. 거의 클래식 버전 [문명화과정]이나 [만들어진 전통]에 가까운 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한국처럼 공연장에서 수시로 울려대는 휴대폰 벨소리와 아무때나 쳐대는 묻지마 박수를 생각한다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리’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과거 클래식 연주회의 풍경을 상상해보게 하는 흥미로운 글임이 분명합니다. 번역이 애매한 단어는 원문에 사용된 표현을 함께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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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그림 좌측)는 곡이 다 끝나기까지 청중들이 박수를 참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여러분이나 나처럼 콘서트를 자주 찾는 사람들은 대개 반쯤은 경찰관이, 그리고 반쯤은 공중도덕 위반자가 되어 왔다. 우리는 공연 중에 발을 질질 끌거나 프로그램을 갖고 꾸깃거리는 소리를 내거나 경우없이 속닥거리거나 장소에 안 맞게 기침하는 행위를 고발하곤 한다. 또 우리는 악장이 끝날 때마다 무지한 인간들 중 하나가 박수를 쳐대서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지나 않을까 긴장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얼마나 쓸데없이 심각하고도 불합리하게 보이겠는가.

“(청중의) 침묵은 예술가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케네스 해밀튼(Kenneth Hamilton)은 19세기와 20세기 초 콘서트에서의 행동에 대해 자세히 다룬 책으로 근래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된 [황금 시대 이후 After the Golden Age]에서 베토벤(Beethoven)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우리는 박수 갈채를 바란다.”

음악평론가 명함도 보유했던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역시 리스트(Liszt)의 단테 교향곡(“Dante” Symphony)이 런던에서 연주될 당시 흐르던 침묵은 황홀한 몰입 때문이 아니라 청중의 혐오(distaste)를 나타낸다고 기록했다. 리스트나 안톤 루빈슈타인(Anton Rubinstein), 그리고 그들 같은 거장(virtuosos)들은 청중들이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으면 모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연주한 베토벤 소나타는 악장 사이 구분이 모호했는데도 그들은 청중이 악장 사이를 찾아내서 박수치기를 바랐다. 한번에 한 악장 이상을 연주하는 일이 드물었는데도 말이다.

이제부터 언급할 일화의 상당수를 포함한 이런 정보들은 당신이 꼭 읽어야만 할 해밀튼씨의 매력적인 책에 나오는 것이다. 그가 쓴 바에 의하면 사람들은 음악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박수를 쳤다. 쇼팽(Chopin)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돈 조반니(Don Giovanni) 중에서 “우리 손을 맞잡고(La ci darem la mano)” 변주곡을 협연했을 때, 사람들은 변주 하나가 끝날 때마다 연주가 잠시 중단될 정도로 박수(showstopping)를 쳐 댔다. 1920년대 말에도 사람들은 페루치오 부조니(Ferruccio Busoni)가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를 연주하는 중에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그 곡의 작곡가인 리스트는 안톤 루빈슈타인이 모짜르트(Mozart)의 A 단조 론도를 연주할 때 객석에 앉아서 브라보를 외쳐 대기도 했다. 그 모습이 포착됐을 당시 리스트는 위엄있는 노년을 맞이한 상태였다. 한스 폰 뷜로(Hans von Bulow)는 자신이 베토벤의 “황제” 콘체르토 1악장 카덴자(cadenza)를 연주할 때마다 그 부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공연장이 떠나가도록 갈채를 받았다고(brought down the house) 학생들에게 자랑했다.

현대의 리사이틀이 판에 박히고, 자발성이 없으며, 융통성도 없는데다 엄숙주의로 인해 생기를 잃었다고 비난하면서 해밀튼은 이따금 사례를 과장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훌륭한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침묵이 유지되는 최상의 환경이 만들어질 때는 단지 소음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손에 잡힐 듯한 무언가가 생겨난다고. 한껏 열중한 청중은 소리를 내지 않고도 찬사를 발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반면에 ‘황금 시대’를 추종하거나 여타 노스텔지아에 열광하는 자들의 위선을 기술하면서 그는 지적한다. 만일 음악이 옛날의 악기와 옛날의 연주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그건 옛날의 청중들(의 태도) 역시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가 1960년에 낸 책 [군중과 권력 Crowds and Power]에는 현대 콘서트에 대한 최고의 비유가 나온다: 바로 로마 카톨릭 미사다. 참배자는 면전에 있는 높은 연단에 있는 사람에게서 예배 진행에 대한 지시사항을 듣는다. 그들은 말해도 될 때만 말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침묵해야 한다. 해밀튼 씨는 지금의 사람들이 체득한 이런 ‘종교적 신성함’의 많은 부분이 레코딩 시대에서 기인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게 스스로를 지독히도 심각하게 여기는 게르만족 예술(Germanic art)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짜르트의 소나타도 바그너(Wagner)의 “파르지팔(Parsifal)”처럼 모든 듣는 이들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중들의 참여는 1840년대부터 당연하게 여겨졌다.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드라이쇼크(Alexander Dreyschock)는 “숙녀들이 대화하는데 방해될 만큼 크게 연주한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고 해밀튼 씨는 적고 있다. 여전히 몹시 자신을 알리고 싶어 안달난 청중들이 오늘날의 파시스트적인 콘서트 분위기 속에서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연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때, 그들은 기침을 한다. 오페라 애호가들은 막이 내려질 때 자신이 최초로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도니제티(Donizetti)의 마지막 카덴자에서 ‘안다박수’를 치는 정도로는 튀기 힘들다. “파르지팔”에서 그런 짓은 재앙이지만, 빈번한 일이기도 하다.

예전의 콘서트는 다른 성격을 지녔다. 리스트가 ‘한 사람이 하나의 리사이틀을 한다(one man, one recital)’는 급진적인 생각을 잘 실행하긴 했지만, 보통 음악 행사하면 가벼운 희가극 형식의 버라이어티 쇼에 가까웠다. 스타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는 가수나 오케스트라 연주자, 쿼텟과 트리오의 행렬 사이에서 단지 가끔 드러나는 존재일 뿐이었다. 리스트가 독주회를 열었을 때도 입장이나 퇴장과 같은 오늘날의 의식 가운데 어떤 것도 없었다. 리스트는 입구에서 후원자를 환영하고, 청중들 속에 섞여서 친구나 낯선 사람들과 수다를 떨었다.

오페라의 막간이나 심포니 중간에 리사이틀 전체가 열리기도 했다. 쇼팽이 1830년 바르샤바에서 그의 E 마이너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을 때, 그는 첫 두 악장 사이에 다른 작품들을 삽입했다. 아마 이처럼 연주가 중절된 가장 유명한 사례는 1806년 비엔나에서 열린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공연 첫 날일 것이다. 거기서 독주자는 바이올린을 거꾸로 잡고 한 줄로 연주해서 청중을 흥분시켰다.

암보(Memorization)는 지금도 그렇지만 1800년대에도 매우 중요시되었다. 쇼팽이나 베토벤 같은 이들은 기입된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게 책임감을 배가시킨다고 여겼지만 말이다. 안톤 루빈슈타인 같은 거장들은 악보를 암기했지만 종종 자신이 외운 것을 잊어버렸다. 나는 한번은 아서 루빈슈타인(Arthur Rubinstein)이 라벨(Ravel)의 “고귀하고 감상적인 왈츠(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를 연주하다 삼천포로 빠지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그는 다음이 뭐였는지 기억해내기 전까지 건반을 앞뒤로 눌러대며 피아노 위에서 노닥거렸다(simply diddling idly on the piano).

아무도 실수를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리스트가 잘못된 음을 짚었다면, 그는 그걸 변조처럼 꾸며서 새로운 악절(passage)을 즉석에서 만들어 냈을 것이다. ‘원전에의 충실성(Werktreue)’이라는, 또는 악보에 쓰여진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개념은 19세기에는 소수의 주장이었다. 뷜로는 가끔 실수인 척 하면서 의도적으로 나쁜 음, 찌그러진 소리(clinker)를 내는 것은 청중에게 지금 연주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곡인지를 보여준다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평론은 브람스(Brahms)가 직접 연주한 B 플랫 피아노 협주곡을 어느 독일인 비평가가 평한 것이다. “브람스는 올바른 음표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그는 썼다. “그러나 그는 정확한 음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했다.”

콘서트장에서는 아직도 청중의 참여가 이따금씩 보이지만(flickers), 우리는 지배적인 행동 규범(decorum)에게서 그런 참여가 우리를 신경질나게 한다고 세뇌당해왔다. 언젠가 아바나에서 나는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연주되는 동안 앞에 앉은 두 남자가 거슬렸는데, 나중에 가서야 그들이 연주자의 해석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때, 몇년 전 스페인에서의 늦은 저녁에, 나는 발렌시아의 투우장에서 열린 마을 밴드 경연을 본 적이 있다. 깜짝 놀랄만한 연주였다. 각각의 연주가 점차 청중을 휘어잡을 수록, 처음에는 따라부르는 낮은 허밍 소리였던 것이 점차 형언하기 힘든 왁자지껄함에 가까운 소리로 커져갔다. 그것은 내 인생에 가장 인상깊은 콘서트 체험이었다.


2008/06/25에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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