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모리스모 대가의 포트폴리오 — [멜린다와 멜린다]

저는 우디 앨런 영화는 기본적으로 다 우모리스모(umorismo-희비극)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완전한 희극으로도, 아니면 내내 심각하기만 한 드라마로도 구분지을 수 없을만큼 복합적이고 두 가지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게 우디 앨런 영화예요. 가령 최근작인 [매치 포인트]의 경우, 전개되는 스토리는 진중한 비극이지만 텍스트의 형식형성방식만 놓고 본다면 그야말로 굉장한 고급 코미디였죠. 그의 대표작인 [애니홀] 역시 각론에서의 희극적인 성격과 드라마적인 서사의 진행이 어우러진 영화였습니다. [맨하탄]이건 [범죄와 비행]이건 어떤 앨런표 영화를 살펴봐도 이런 특징은 다 마찬가지예요. 앨런의 영화는 아무리 우스운 얘기를 하는 동안에도 텍스트의 자기반영성과 형식에 대한 성찰을 통해 웃음을 울음으로 뒤바꾸어 놓습니다. 반대로 심각한 얘기를 하면서도 쏟아지는 아이러니와 냉소적인 유머는 웃음을 머금게 만들곤 하죠. 때문에 우디 앨런에 대한 가장 공정한 평가를 내리려면 그가 위대한 희극 작가이면서 희극의 내부에 비극을 구현할 줄 아는 작가라는 설명이 덧붙여져야 할 겁니다.

사실 [멜린다와 멜린다]는 하나의 영화 텍스트로서 온전한 작품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네 사람의 예술가들이 술집에서 벌이는 토론(인생이 희극이냐 비극이냐?)을 1차적 서사로 구축해 놓고, 이들의 입을 빌려서 멜린다라는 여자가 겪게 되는 비극적 상황과 희극적 상황을 번갈아가며 묘사합니다. 두 개의 서브 이야기는 결코 완결된 형태로 끝나지 않고, 일종의 공중에 뜬 상태로 마무리되게 되죠.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전개되는 파불라의 내용이 아니예요. 오히려 이 영화는 비극과 희극이라는 ‘형식’에 대한 우디 앨런식 강의라고 할 수 있어요. 아마 주인공이 멜린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리고 그녀가 처한 상황이 자녀를 전남편에 빼앗기고 오갈데 없어 친구 집에 찾아온 신세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강의’를 전개하는데는 별다른 무리가 없었을 거예요. 앨런은 이 영화를 통해 비극과 희극이 각각 어떤 방식을 통해 형식을 형성하는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더 깊은 의도를 따지자면, 아마 그는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두 개의 대조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함을, 나아가서 비극과 희극이 실상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강한 유사성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군요.

앨런의 이런 시도가 만들어낸 결과는 나름대로 흥미롭습니다. 일단 비극과 희극이라는 대조적인 형식이 서로 교차되고 뒤섞이고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효과가 상당히 재미있어요. 특히 초반부에는 코미디 작가 사이와 드라마 작가 맥스의 이야기를 일정한 리듬에 따라 교대로 보여주다가, 중반부 이후부터는 이야기가 교체되는 빈도도 높아지고 템포도 불규칙해지면서 두 장르의 경계선이 상당히 모호해지고 있죠. 어둠침침한 비스트로, 피아니스트, 경마장과 같은 두 장르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요소들도 이런 경계의 흐릿함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이런 경계 지우기를 통해 앨런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백하죠. 모든 비극은 희극의 요소를 가지고 있고, 또한 모든 희극 역시 비극적인 잠재태를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우모리스모 작품을 꾸준히 생산해온 자기 자신의 경력에 대한 증명이자 러프한 다이제스트처럼 보이기도 하는 부분이예요.

또 한편으로 [멜린다와 멜린다]는 비극과 희극이라는 장르의 ‘교과서’, ‘교본’과도 같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형식에서 전개되는 내용들을 보노라면, 전형적인 희극의 스테레오타입과 서사 구성 방식, 운명과 행운이라는 비합리성에의 의존 등에서 거의 교과서적인 솜씨를 보여주고 있어요. 가령 희극 파트에서 등장하는 윌 패럴의 백수 무능력자 남편 이미지를 보세요. 능력있는 아내와 무능하고 사람좋은 남편, 원래는 불행해야 할 일도 오히려 기쁜 일로 작용하는 기막힌 행운과 아니러니 등은 희극 교과서(만일 존재한다면) 1장에 나와야 할 법한 내용 아니겠어요. 보바리즘에 젖은 아내와 야심가인 남편, 그리고 예술가와 사랑에 빠진 불행한 여인이 나오는 비극 편도 전형적이기는 마찬가지구요. ‘형식’ 그 자체에 대한 영화답게 우디 앨런은 불필요한 잔기교나 과잉은 철저하게 배격하고, 각각의 장르에 가장 부합될 만한 특징만을 부각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의 전형성은 두 장르의 충돌과 뒤섞임이 만들어내는 낯섦으로 인해서 충분히 만회되고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죠.

이렇게 이야기보다 ‘형식’에 치중하는 영화를 만드는게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화끈한 액션이나 감상적인 드라마를 원하며 극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토론으로 시작해 미완성의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토론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싱겁게 느껴질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디 앨런처럼 수많은 영화를 만들어온 작가의 영화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그는 이미 수도 없이 많은(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어 왔고, 그런 앨런이라면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는건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요. 일정한 작가적 단계를 넘어선 뒤에 작품이 점점 의미론적 차원보다 통사론적 차원으로 옮겨가는 현상은 비단 우디 앨런만의 경우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시어가 구체적이고 서사도 분명한 글을 쓰던 작가들이 나이가 들면서 형식과 구성에 더 많은 신경을 기울이고 시에 대한 시, 소설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멜린다와 멜린다]는 우디 앨런 스스로가 자신의 경력을 종합하고 자신의 작가로서 지위를 확인하는 영화이며, 어떻게 보면 이후의 작품 세계는 스토리와 서사의 측면보다는 형식과 스타일에 더욱 치중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작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피카소의 도색시대 마지막 작품(입체파로 넘어가기 전 단계)과도 같은 영화라고 할까요. 그런 면에서, 앨런의 다음 영화가 희극적 틀거리 속에 비극적 이야기(너무도 뻔한)를 녹여낸 훌륭한 우모리스모 작품인 [매치 포인트]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Rating ***1/2


2009/06/24에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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