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Pretty” — 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 서평 / 에이미 피너티

움베르토 에코의 책 [추의 역사](열린책들)는 [미의 역사]와 동전의 뒷면을 이루는 후속편입니다. 이 책은 역사속에 등장한 ‘추’에 관한 관념을 방대한 도판과 자료를 통해 망라하며, 사람들이 추를 경멸하고 탄압하면서도 실제로는 거기에 매혹과 두려움을 느껴 왔음을 폭로합니다. 아래의 글은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책 전문 기자 에이미 피너티(Amy Finnerty)가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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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역사 History of Beauty]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아름다움의 개념이 문화와 문화, 시대와 시대를 거치며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탐험했다. 이제 [추의 역사 On Ugliness]에서 그는 고대로부터 현대까지의 온갖 이미지와 발췌문, 그리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논평을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시한다: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혐오감(repulsiveness)’ 또한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가? 우리는 대상의 어떤 면을 보고 추하다고 느끼는가? 이를 위해 에코는 유혈과 기형, 부도덕과 죄악에 대한 역사속의 온갖 이미지를 제시하며, 플라톤에서 현대 급진 페미니즘에 이르는 다양한 인용문을 선별해 ‘추’의 분류학을 전개한다.

책의 첫 장은 그리스도의 순교로 시작된다. 중세 후기까지만 해도 그는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진, ‘피와 살’의 인간으로 묘사되었다. 15세기의 명화들은 이 점에서 멜 깁슨(Mel Gibson)의 영화 속 ‘난자당한 그리스도’와 공집합을 지닌다. 에코는 그러한 묘사가 일부 크리스찬에게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을지 모르며, 그런 불쾌감은 힌두교나 불교도에게도 마찬가지였으리라고 지적한다.

에코의 백과사전은 “추잡하고, 역겹고, 공포스럽고, 비천하고, 기괴한” 것과 “악취나고, 흉측하고, 조악하고, 꼴사나운” 것들을 포함해 추함에 대한 거의 모든 부면을 망라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8장 <마법, 사탄 숭배, 사디즘>이나 6장 <고대부터 바로크 시대까지 여성의 추>를 읽다가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 적절하게 선택된 18세기부터 19세기 사이의 도판을 통해, 에코는 추한 이미지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이미지’ 역시 반(反) 여성주의를 부추기는데 기여해 왔음을 증명해 보인다. 에코가 예로 드는 그림 중 하나는 자코모 그로소(Giacomo Grosso)의 <특별회합 Supreme Meeting>인데, 여기에는 벌거벗은 채 꽃잎을 휘날리며 춤추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등장한다. 문제는 이 여자들이 사탄숭배자이며, 그 반사회성이 보는 이로 하여금 반감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녀들이 발산하는 강렬한 유혹은 당시 고삐풀린 여성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대중의 경계심과 적의를 조장하며, 이는 ‘추’에 대한 사람들의 반사작용과 유사한 면이 있다. 따라서 에코의 관점에서는 이런 그림 역시 ‘추’의 범주에 포함된다.

자코모 그로소의 악마적 회화 ‘특별회합’

저자는 이런 두려움의 뿌리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려주는 몇몇 인용문을 제시한다. [마녀들의 망치 Malleus Maleficarum](1486)의 내용을 보자. 이 책에 따르면 마녀들의 악의는 그들의 “만족할 줄 모르는 육체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원문은 그와 같은 악덕이 여성들의 태도에 수없이 잠재되어 있음을 암시하며, 자제력 있는 남자들은 ‘품성의 결함’으로부터 구원해 주신데 대해 전능자께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원 3세기에는 ‘추’가 도덕적 타락을 막아준다는 관념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는 남자들이 성적으로 유혹되는 것을 막으려면 아름다운 외모를 ‘추’로 바꾸어야 한다는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의 주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여자들의 몸치장 -색조있는 립스틱, 연지, 머리염색- 을 통렬히 비난하며 “여자들이여, 베일을 써라”고 했고, 기혼 여성들을 향해서는 “염려하지 마시오, 축복받은 여자들이여, 어떤 여자도 남편의 눈에는 추하게 보이지 않는 법이오, 누군가에게 선택된 것만으로도 이미 기뻐해야 할 이유가 넘치도록 많소”라고 말했다.

이 정도는 약과다. 보톡스가 발명되기 약 2000년전, 기원 1세기의 마샬(Martial)은 여성들 귀에 아주 거슬리는 다음과 같은 악명높은 말을 남겼다. “당신의 이마는 스툴(로마 시대의 겉옷)보다도 주름졌고 / 당신의 젖가슴은 거미줄과도 같구나 / 나일강 악어의 아가리도 당신의 입에 비하면 작은 편에 속하리라” 중년 여성들은 젊음과 생식력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3세기에는 “늙은 여자같은 악취”라는 말이 유행했고, 15세기엔 “늙은 여자의 악성 병균” 같은 말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1591년, 루크레치아 마리넬리(Lucretia Marinelli)가 <여성의 고귀함과 탁월함>을 통해 강력한 반격을 가한다. “세상 모든 남자는 여자들에 비하면 추하기 그지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랑받거나 존경받을 가치가 거의 없다.”

가난과 질병은 흔히 따돌림의 원인이 되곤 했다. 민족성과 복식(dress)은 타자(The Other)를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배속시켰다. 파시즘의 경우가 한 예다. 1943~44년 이탈리아 화가인 지노 보카실레(Gino Boccasile)가 그린 반유대주의 그림엽서가 배포되었다. 이 엽서는 유태인의 골상학적 특징을 나열하며 그들의 도덕적 열등함을 사람들에게 주입하기 위해 그려졌다. 하지만 그 결과로, 반유대주의 선동가들마저 자신에게 해당되는 유태인의 특징이 없는지 거울을 보고 점검하게 된다. 에코는 “유태인의 ‘추’로 지목된 얼굴 형태나 목소리, 몸짓 등은… 곧 반유대주의 도덕적 불구자들의 명확한 특징이기도 했다”고 쓰고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에코가 ‘추’의 사례로 제시하는 도판과 인용구 중 어떤 것들은 다소 무리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가령 10장 <낭만주의와 추의 구원>에는 사나운 대자연 -그로 인해 더욱 생생한 느낌을 주는- 을 담은 풍경화가 등장한다. 그리고 여기에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가 히스클리프([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의 분노를 묘사한 대목이 곁들여진다. “남자다운 느낌을 주는 그의 이마에 먹구름이 드리운 순간, 나는 ‘악마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에코의 기준에 따르면 이런 관습적이고 감상적인 표현은 독자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며, ‘불쾌한 것들의 백과사전’에 마땅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코는 의도적으로 부조화를 노린 경우에는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20세기를 다룬 13장 <아방가르드와 추의 승리>가 그 점을 다룬다. 여기서 피카소는 부조화를 형식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데, 그의 작품은 미술애호가들의 열렬한 반응 속에 예술계의 새로운 신앙으로 자리잡았고, 과거의 미적 관념을 쓰러뜨렸다. 독자들에게는 다행히도, 에코는 그의 글만큼이나 절묘한 수백여 점의 도판을 제시하는데, 이를 통해 가장 비천해 보이는 대상조차도 예술의 힘을 증명하는 사례로 끌어올려진다. 에코는 “성실하고 효과적인 예술의 묘사를 통해, 추는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1세기 조각상인 ‘시장보는 여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꼬부랑 할머니’의 낡은 석조상이 오늘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지 않은가.

[추의 역사]의 미국판 본문.

추함은 또한 인간적인 관계와 개인적인 기호에 의해서도 평가가 달라질 수 있으며, 때문에 ‘최고의 미녀들’ 목록에 아무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면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상대의 독특한 점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때 우리는 세상의 일반적인 미적 표준에 도전하게 된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의 1490년작 <노인과 손자의 초상>이 좋은 예다. 그림에서 묘사된 노인의 용모는 보잘것 없다. 하지만 그를 바라볼 수록 손자는 그의 얼굴이 지닌 어떤 결점도 찾아내지 못하며, 할아버지와 눈을 마주칠 때 행복해 한다. 사랑은 우리 모두를 눈멀게 만든다.


2009/06/28에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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