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s behind My Pearl Earrings 진주 귀걸이 뒤의 감정들

Emotional Life of Objects 물건에 담긴 감정적 삶

WA, 3015

Day 128: 16 May 2016, Melbourne

Last week, I wrote about the emotions behind my Casio digital watch. It made me want to continue writing about the stories behind my belongings. This is my attempt to fight consumerism by bringing light to the stories about the possessions to appreciate their value beyond their looks and/or utility.

Today’s story is about pearl earrings. I might own too many earrings for a single individual. I might also have too many holes in my ears. My first piercing, however, only happened a few years back. It also wasn’t so voluntary, for I was scared of piercing a needle through my flesh — I was never a fan of injections. My mom used to chase after me to get me seated for a flu shot.

The day I got my first piercing was in my first year in Hong Kong. A friend who I assume had the same number of ear piercings as I do now (seven, if you were curious), took me to a shop. Over lunch, I told her about wanting to get my ears pierced for ages. So we made a spontaneous stop at a piercing shop. I sat down to get a typical ear lobe piercing, but my hands were sweaty.

The process was short and smooth. I didn’t feel much pain, only a bit of tingle. In a few seconds, there were dotted golds shining on the edge of my ears. It was a weird sensation. I finally got what I’ve wished for a long time, but it happened so quick and so out of nowhere.

Since I was little, I asked mom if I can get my ears pierced. While it wasn’t common for little girls to have their ears pierced in Korea, it also wasn’t rare. She didn’t wear much jewelry herself, maybe a necklace occasionally. Once she told me that her first piercing got seriously infected, so she didn’t want me to suffer too. That’s why until I was old enough to walk into a piercing shop — or be dragged into, which ended up happening — my ears stayed intact.

My parents’ initial reaction when I revealed my piercing through a pixelated screen on FaceTime was rather tepid. My mom was worried whether her daughter would have the same unpleasant experience she had. My dad, a conservative and reticent man, short of comments, didn’t say much as always; yet I could see he wasn’t fond of his daughter’s new interest. I just shrugged my shoulders. I was more excited about different earrings I would be able to wear in a few months.

When I went back to Seoul a few months later, we paid a monthly visit to Costco. I always find random products next to each other by the entrance; stacks of flat screen TVs next to an inflated jumping castle, which stands awkwardly next to a sales rack with suit jackets hanging. Somewhere in the middle of it all, I found a pair of pearl earrings. It was in a glass display stand with other jewelries.

Until then, I was still wearing the small golden earrings that I got upon getting my ears pierced. Somehow the first pair of earrings that I can choose seemed so important. So I deliberated. The significance was comparable to the first spending from my first paycheck.

Then, my dad said he would buy me the pearl earrings. It was surprising, considering how nonchalant he usually is — not in a bad way, but he’s just naturally unaware of certain situations. Unless I precisely tell him, he wouldn’t have noticed that I wanted something. Besides, he seemed so unsure of my piercing in the first place. It is ludicrous too: How out-of-place, and out-of-sudden this gift was. It wasn’t my birthday. We just went to buy some bagels and salmon.

The absurdity and the unusualness of the situation, however, still linger on in my mind. On mornings when I put on my pearl earrings I think about my dad. They represent the love of my dad, who now messages how much he loves me with a heart emoij; who probably made an effort to say he wants to get me a pair of earrings — something he doesn’t entirely support.

The second day I arrived in Melbourne, I thought I lost one of the pearl earrings. For me, that was a very sentimental loss. I just left home, knowing that I won’t return for the longest time. Losing a priceless gift with much emotional meaning was devastating, especially at that point when I was in a foreign land away from the family. So finding the lost piece the next day was a relief, a reassurance that anywhere I am, my dad will always be there for me.

Thanks for reading. I’m Jieun Choi, a student, creative, photographer and writer currently based in Melbourne, Australia. While I stopped posting on Instagram, come see my old photos.

128일: 2016년 5월 16일, 멜버른

지난주, 나는 내 카시오 전자시계 뒤의 감정에 대해 글을 썼다. 이는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고 싶게끔 했다. 물건의 생김새나 유용성 넘어 그 가치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소비주의에 대항하고자 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진주 귀걸이에 대해서이다. 나는 너무 많은 귀걸이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귀에 너무 많은 구멍을 뚫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으로 귀를 뚫은 것은 사실 불과 몇 년 전이다. 게다가 그리 자발적이지도 않았다. 살을 바늘로 뚫는다는 사실이 무서웠기에 말이다 (주사를 무서워했던 나 때문에 엄마는 매번 독감 주사를 놓을 때마다 도망가는 나를 잡아서 앉혀야 했다).

홍콩에서의 첫해에 나는 처음으로 귀를 뚫었다. 이제는 나와 같은 개수의 피어싱을 했을 법한 친구 (내 귀에는 7개의 피어싱이 있다)가 나를 데려갔다. 점심을 먹으면서, 어렸을 때부터 귀 뚫고 싶었다고 말한 게 이유였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레 귀걸이 가게로 향했다. 단지 귓불을 뚫기 위해 자리 잡았지만 내 손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 과정은 짧고 순탄하게 이루어졌다. 그다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얼얼했을 뿐이다. 몇 초 만에 내 양 귓불에는 금빛의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원했던 것을 드디어 이루긴 했지만, 너무나 빠르고 갑작스럽게 일어났기에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한테 귀를 뚫게 해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내 나이 또래 여자아이 중 귀를 뚫은 아이들은 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드물지도 않았다. 엄마는 장신구를 하지 않았다. 가끔 목걸이 정도 하는 정도. 엄마가 귀를 뚫었을 때는 꽤 심각하게 감염이 돼서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 그랬기에 나도 고생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귀를 뚫으러 걸어갈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귀를 뚫지 못했다.

영상통화를 하며 뚜렷하지 않은 화면을 통해 내 첫 귀걸이를 보여주었을 때 엄마, 아빠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엄마는 딸이 당신이 겪은 불쾌했던 경험을 할까 봐 걱정했다. 보수적이고 과묵한 편인 아빠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기에 언제나처럼 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딸의 새로운 관심사를 그다지 반기는 모습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몇 달 뒤부터 바꾸어 낄 수 있는 다양한 귀걸이 생각에 나는 신이 난 상태였기에 말이다.

몇 달 뒤, 서울로 돌아갔을 때 가족들이랑 코스트코로 장을 보러 갔다. 입구에서 나는 무작위로 놓인 물건들을 발견하곤 한다. 이를테면 평면 TV들이 쌓여 있고 그 옆에는 뛰어놀 수 있는 어린이용 완구가, 그리고 그 옆에는 양복 상의가 잔뜩 걸린 옷걸이가 놓여있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진주 귀걸이를 발견했다. 진열장 유리 뒤에 다른 보석류와 함께 놓여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처음 귀 뚫었을 때부터 있던 작은 금색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내가 선택하는 귀걸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심사숙고했던 것 같다. 그 망설임은 첫 월급을 어디에 쓸지에 대해 망설이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때, 아빠가 와서 내게 그 귀걸이를 사주겠다고 했다. 놀라웠다. 평소에 무관심한 듯한 아빠의 태도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나쁜 의미에서 무관심하다기보다는 단지 무딘 편이다. 그렇기에 평소와 같았다면 직접 아빠한테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귀 뚫은 것을 그다지 좋게 보지도 않은 듯했기에 말이다. 재미있기도 했다. 이 상황이 얼마나 뜬금없고 갑작스러웠는지 말이다. 내 생일도 아니었고 우리는 베이글이나 연어를 사러 갔을 뿐이다.

이 어이없고도 드문 상황은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아침에 진주 귀걸이를 할 때면 아빠를 생각한다. 귀걸이는 이제는 카톡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트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는 아빠의 사랑을 의미한다.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애써서 내게 귀걸이를 사주겠다고 말했을 아빠의 사랑 말이다.

멜버른에 도착한 둘째 날, 나는 진주 귀걸이 한쪽을 잃어버렸다. 이는 단순히 귀걸이를 넘어 감정을 잃은 느낌이었다. 며칠 전, 일 년도 넘게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집을 떠나왔는데, 감정이 잔뜩 담긴 이 소중한 선물을 잃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경험이었다. 특히나 가족들을 떠나 외딴곳에 와있는 그 순간이었기에 말이다. 그 다음 날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귀걸이를 찾았을 때 나는 안도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아빠가 나를 위해 있어 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해주었기 때문에 말이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학생이자 창작자, 사진가 그리고 작가입니다. 현재 호주의 멜버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진을 올리지는 않지만, 과거에 제가 찍은 사진들은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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