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orities Unite upon Frustration 좌절감 아래 단결하는 소수(少數)

I guess minorities unite upon frustration. And maybe that is one way of raising the voice to be heard.
아마 소수 집단들은 이렇게 좌절감 아래에서 모이나 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아직은 작은 우리들의 목소리를 높여 세상이 들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Edinburgh Gardens on Australia Day 2016, photographed by Jieun Choi

26 January 2016, Melbourne

When I decided to come to Australia, I had a chat with a professor about studying art history in an Australian university. She suggested that I learn about Australian and aboriginal art if I do end up in Melbourne. As my primary interest of going to Melbourne as an exchange student wasn’t for my studies, her words automatically slipped off my mind. My moment of luck came in a couple of days, however, when the interviewers who have the authority to send me to Melbourne asked me a question.

“So, why do you want to go to Melbourne? Why not Western Australia for instance?”

Within a split second, a train of thoughts went through my mind. ‘Melbourne had more compelling and diverse cultural scenes, venues and events, simply making it more interesting than WA.’ But I knew that unless I put those into some hyperbolic and eloquent words, it would not be convincing enough to stand out from rest of the applicants competing for that one spot to come to Melbourne. After taking one of those typical interview advices, where one earns extra time by repeating a question, I came up with a perfect answer.

I said that because the mainstream art world doesn’t talk about Australian or aboriginal art, going to Melbourne would be an eye-opening opportunity. Looking back, that was not even a right answer to that question because Western Australia is still Australia, and considering a trifling number of aboriginals residing in Victoria (0.85% of the entire aboriginal population in Australia) where Melbourne is in, I should have probably said that I want to go to WA (with 3.8%) not Melbourne, if my logic was going to be reasonable. But believe it not, that felt like the critical moment where they decided that I was that one student from the arts faculty who would be going to Melbourne for an exchange.

So that’s how I got this highly-sought-after opportunity to come to Australia in the first place. Shamefully enough, however, the words that got me here also slipped off my mind as soon as I left that interview room. After half a year since my arrival in Melbourne, except for a couple of visits to the museums with aboriginal art and a few classes that barely scraped the surface of aboriginal art, my knowledge was still blank.


Today, January 26th is Australia Day. It is a public holiday that many Australians spend by drinking to the Triple J Hottest 100 countdown. It is also a day that a smaller fraction of Australians fight against the celebration of the ‘invasion day’. Unfortunately, the voice of the minority was rather muted by the sounds of music and of people drinking in public parks across the country.

The muffled voice of the minority against the abuse of the dominant reminded me of a recent fashion incident in Korea. Well, it involved a French fashion label with a Japanese co-founder/creative director, and a Korean-British model. The brand’s latest lookbook included numerous images of the Japanese imperialism represented by the Rising Sun imagery. While the use of such imagery — that should be considered no less critically than a Swastika — would easily upset Koreans, the fact that an ethnically Korean model took part in the lookbook infuriated them. After offended Koreans complained vigorously on social media platforms of the brand and of the model, Maison Kitsuné apologized with a loose term ‘cultural difference’ on one of its many social media outlets. Nevertheless, many found it insufficient, if not even more irritable for its half-hearted apology.


It is cruel and unfair, but minority’s voices are easily ignored. They are weak and ineffective simply due to the sheer number of participants and the lack of power and dominance. And as Korean, it is frustrating to see such incident passing unnoticed by the rest of the world. I remember writing a long yet discreet message to an acquaintance who had a photo of his room with a Japanese ‘Rising Sun’ flag. I never heard back from him. While I felt frustrated for such a unilateral conversation, seeing the similarity in two individual cases made me relate more to the agony of those whose voice is often ignored. I guess minorities unite upon frustration. And maybe that is one way of raising the voice to be heard. And while most of the time such issues seem like a storm in a teapot, maybe the clashing of many different teapots would eventually break the glass and let loose of the storm.

Honestly, I feel almost hypocritical for writing about the injustice of Australian Day after spending the afternoon at the park chilling with friends. But there is a beginning for everything, and the brief conversation I had about the protest that a friend at the park has attended earlier today did make me sit down and learn more about the critical response to today’s celebration. Also, I have decided to take a course about contemporary aboriginal art next semester. It is about time that I do more for the unheard voices hoping that no more minorities have to unite upon frustration.

호주에 오고 싶다는 결정을 내린 후 교수님을 찾아가 호주의 대학에서의 미술사 공부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교수님은 내게 만약 멜버른에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호주 미술이나 호주 원주민 미술 수업을 들어보라 하셨다. 멜버른에 교환학생으로 가는 주요 목적이 공부가 아니었던 터라 교수님의 말씀을 귀로 흘려들었다. 하지만 며칠 뒤 나를 멜버른에 보낼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면접관들이 내게 질문을 했을 때 운 좋은 순간이 왔다.

“그래서 멜버른에 가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지? 서호주는 왜 안되는가?”

질문을 들은 후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멜버른에 더욱더 흥미롭고 다채로운 문화의 장이 있고 이벤트가 열린다. 한마디로 서호주보다는 멜버른이 훨씬 더 흥미롭다.’ 등의. 하지만 내가 이를 과장되거나 있어 보이게 포장하지 못하는 한 눈에 띄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특히나 멜버른으로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 하는 수 많은 지원자들 중 선택된 한 명이 되기 위해서는. 전형적인 인터뷰 팁 중 하나를 이용하여 질문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번 나는 완벽한 답변을 생각해내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주류 미술 세계에서는 호주나 호주 원주민 미술에 대해 말하지 않는데 만약 멜버른에 가게 된다면 괄목할만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돌아보니 사실 옳지도 않은 답변이었다. 왜냐하면 서호주도 호주에 있는 곳이며, 사실 멜버른이 속해있는 빅토리아 주에는 전체 원주민 인구의 0.85% 뿐이 거주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 답변이 논리적이라면 원주민의 3.8%나 사는 서호주에 가고 싶다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답변을 한 순간이 내가 인문대 전체에서 멜버른으로 보내주는 유일한 교환학생이 된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게 바로 내가 많은 이들이 원했던 기회를 얻었던 내막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내가 이 곳에 있게 해 준 그 말들을 나는 그 면접장을 나서면서 또다시 잊어버렸다. 멜버른에 도착한지 반 년이 넘어서는 지금까지도 사실 원주민 미술 작품들이 있는 미술관에 몇 번 가본 것과 수업 중에 원주민 미술에 대해 수박 겉햝기식으로 배운 정도밖에 없기에 이에 관련된 내 지식은 사실 백지에 가까웠다.


오늘, 1월 26일은 호주의 날이다. 호주의 공휴일인 오늘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술을 마시며 보내는 날이다. 하지만 일부의 호주인들은 이 ‘침략의 날’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기도 하는 날이다. 안타깝게도 호주 곳곳에서의 소수의 목소리는 공원 등에서 노래를 들으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버리는 듯했다.

지배적인 다수의 횡포에 대항하는 소수의 목소리를 생각하니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패션계 관련 사건이 떠올랐다. 아니, 일본인 창업자 겸 총책 감독이 있는 프랑스 브랜드와 한국계 영국인 모델이 관련된 사건이었다. 이 브랜드의 최신 룩북에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가 반복해서 등장했다. 나치의 스와스티카와 다르지 않은 욱일기의 사용 자체가 한국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한국계 모델이 룩북에 등장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분개했다. 많은 이들이 브랜드와 모델의 SNS 계정에 항의한 결과 브랜드인 메종 키츠네는 수 많은 SNS 계정 중 하나에서만 애매한 단어인 ‘문화적 차이’를 탓하며 사과를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성의 없는 사과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오히려 더 화를 돋운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잔인하면서 불공평한 일이지만 소수의 목소리는 이렇게 쉽게 무시당한다. ‘소수’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약하고 효과적이지 못할뿐더러 힘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다른 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이야기되지 않고 넘어간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잘 알지 못하는 지인이 욱일기로 장식된 본인의 방 사진을 올린 것을 보고는 길지만 예의를 차린 메시지를 보낸 기억이 난다. 답장은 받지 못했다. 그런 일방적인 의사소통에 답답했지만, 오늘 호주에서 본 일과 그때의 경험의 공통점을 보며 목소리가 종종 무시되는 사람들의 고통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아마 소수 집단들은 이렇게 좌절감 아래에서 모이나 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아직은 작은 우리들의 목소리를 높여 세상이 들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이슈들이 사실상 찻잔 속 태풍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다양한 찻잔끼리 부딪치다 보면 언젠가는 유리를 깨서 태풍을 찻잔 밖으로 내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친구들과 함께 공원에서 오늘 오후를 보낸 내가 이렇게 호주의 날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그리고 공원에서 짧게나마 친구가 아침에 다녀온 시위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에서 자극받아 나는 오늘을 기념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내용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는 현대 호주 원주민 미술 수업을 듣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나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을 위해 무언가를 함으로써 더 이상의 소수 집단들이 좌절감 아래 모이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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