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타인이 되고자 함은 ‘복음’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서이다. 타인을 수용하고 온전히 이해하고 이해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변형될까. 그 상태를 살고 싶다. 타인이 내게 들어오기는 쉽지 않다. 그 반대는 조금 수월하다. 나를 없애버리면 된다. 타인의 몸에 들어가, 그들이 자신의 전사(前史)를 인식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기를 바란다. 나는 그/그녀 혹은 대상에게 헌신하는 기생자가 되고 싶다.

정희진 “될 수 없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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