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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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수로 줄줄 말하면서도 필요가 업을 때에는 입을 여는 일이 없었으며, 표정은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도 박사가 웃거나 농담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박사는 인간이 아니라 정교하게 만들어진 오토머신이 아닐까ㅡ아니 박사에 비하면 차라리 기계 쪽이 따뜻하다는 평이 돌기도 했다.
그 정도로 인.간.미.가 결여된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천재와 보통 사람의 뇌는 분명히 다르다. 외견상으로는 아무 차이도 없지만, 뇌의 정보전달 속도 하나만 봐도 그 구조는 결정적으로 달랐다.
즉 중요한 것은 스펜서 박사의 참신한 발상과 비약적인 사고력ㅡ일종의 인스피레이션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적 작업을 재현하는 것이므로 박사 개인의 기억은 필요가 없다.
프로젝트 팀은 그렇게 판단하고 이후 박사의 뇌 구조를 중점적으로 재현하며 기억을 이식하지 않는 타입의 인공지능 개발에 착수했다.
그것이 포스부터 일레븐스까지의 다이애나 시리즈였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야. 인간의 뇌 활동은 그 기억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애초에 스펜서의 기억을 소거한 인공지능이 스펜서처럼 고도의 지적활동을 보일 거라고 기대한 것부터가 오류였어! 네가 도주하는 바람에 다이애나 시리즈의 개발은 중단되고 말았지만, 스펜서의 부활을 도중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난 그렇게 판단하고 스펜서의 기억을 모두 짜 넣은 두뇌를 독자적으로 만들었지. 바로 이 트웰브스를 말이다!”
플레밍 박사의 얼굴은 흥분에 물들었고 그 말투는 자신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지만, 일레브느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당신, 변함없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네요. 플레밍 박사, 대체 이거의 어디가 인간이라는 거죠?”
트웰브스에는 개성이 없다. 자기 자신의 의지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우수한 기계로서, 플레밍 박사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이런 걸 누가 인간이라고 부르겠어요? 난 기계지만 그 정도는 알겠다구요.”
“실패작 주제에 잘난 척까지 하다니. 20년 동안 건방져졌어. 트웰브스! 빨리 처치해! 이 실패작이 더 이상 입을 못 놀리게!”
“알겠습니다, 플레밍 박사님.”
트웰브스는 명령대로 충실하고 정확하게 일레븐스의 중추를 공격했다.
플레밍 박사가 탄 우주선에 무기가 장비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일레븐스를 물리적으로 파괴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어디까지나 감응두뇌인 일레븐스를 지배해서 제어하에 두는 것으로 트웰브스가 더 우수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는 말이겠지.
실제 일레븐스의 선체는 상대의 지배를 받아 점점 속도를 줄이고 있다. 트웰브스에 빼앗긴 선체제어를 되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선체만이 아니라 일레븐스 자신도 열세에 몰려 있었다.
신형 기계 쪽이 성능이 뛰어날 것은 자명했다.
예를 들어 일레븐스의 용량이 100이라면 트웰브스는 120의 용량을 지닌다는 말이 된다.
트웰브스는 일레븐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며 선체의 제어만이 아니라 자기제어, 자의식 등의 중추영역까지 착실하게 ‘점령’해 갔다.
마침내 변함없이 감정이 담기지 않은 트웰브스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작업이 종료되었습니다, 플레밍 박사님.”
그것은 일레븐스의 자유의지가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플레밍 박사는 만면에 희색을 가득 띄우며 통신기에 대고 말했다.
“일레븐스, 들리지? 난 너의 제조자이며 주인인 스티브 플레밍 박사이다. 이 목소리와 망막반응을 기억해.”
“기억했습니다, 플레밍 박사님.”
지금까지 다이애나의 말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질적인 목소리였다. 상대의 지령에 묵묵히 따르는 기계의 목소리.
박사는 더욱 기뻐하며 손을 주물렀다.
“잘 들어, 일레븐스. 넌 내 명령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사실도 인식할 수 있겠지?”
“예, 플레밍 박사님.”
“좋아. 이제 그쪽으로 건너가서 최우선순위 등록을 할 테니 연결다리를 내.”
“알겠습니다.”
두 척의 우주선은 나란히 날아가며 속도를 맞추고, 양쪽 승강구에서 연결다리를 뻗었다.
감응두뇌에는 명령자의 우선순위라는 것이 설정되어 있다.
우주선 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예로부터 바다에서 사고가 났을 때 대다수의 승무원을 구하기 위해서 선장의 결단으로 소수의 승무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도 그 상황만은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에 입력된 ‘인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