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그 오랜 여행
August 21, 2018
Preface
친한 친구가 영국 외무성 쉐브닝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석사 유학을 가게 되었다. 지원서 작성 과정에서 여러 조언도 해주고 도움도 준 터라, 내가 합격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난 대학 4학년 때 쉐브닝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경험이 있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학교에 계속 남아 석사를 이어서 하게 되었고 장학 재단에서 장학금도 받아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혹시 나중에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을지도 몰라서, 영국 대사관 측에 문의한 적이 있는데, 쉐브닝은 경력자 위주로 뽑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 제대로 뽑을 줄 아는 거 같다. 대학 졸업하고 학업이든 직장 생활이든 어느 정도 자신의 관심사와 문제 의식이 성숙한 사람을 선발해서 영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 당시 난 학부 4학년 꼬꼬마였으니, 영국 외무성 입장에선 그닥 투자 가치가 없는 아이였던 셈이다.
Soft Power
영국과 미국의 장학금 제도나 국제화 전략을 생각해 보면, 이들이 왜 군사와 경제 같은 하드 파워 (hard power) 뿐만 아니라 소프트 파워 (soft power), 즉 문화 분야의 강국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미국은 풀브라이트 장학 제도를 통해 많은 외국 학생들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모국에 돌아가 활약하게 한다. 영국도 쉐브닝 장학금을 통해 영국에서 공부한 이들이 모국에 돌아가 기여하도록 돕는다.
생판 본 적 없는 타국 학생들에게 이렇게 자국의 세금으로 장학금을 준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투자하고 있는 것은 대학 캠퍼스, 더 나아가 사회의 다양성이다. 다양성이 없는 조직과 사회는 폐쇄적인 사고 회로와 문화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이들은 전세계를 상대로 문호를 개방하고 다양한 이들이 공존하는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양성은 언제나 갈등을 부른다. 원주민-이민자 갈등은 단골 소재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다른 포스팅에서 생각해보려 한다.)
Person, Place, and Identity
멀리서 보면 대충 보이지만, 직접 가서 살면서 보면 제대로 보인다. 난 항상 지역 라디오 방송 KALW 그리고 KQED 같은 채널을 열심히 듣는다. 수준 높은 뉴스와 탐사 보도로 유명한 전미 공영 라디오 NPR 프로그램을 중계해주기도 하고, 샌프란시스코 실리콘 밸리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지역 사회의 문제들을 많이 다룬다. 더 나아가 미국 사회 전반을 다룬다.
영국이든 미국이든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모든 영역에 걸쳐서 문제가 많은 곳이다. 영국은 계급 사회가 고착화되어 있고, 노동자 계급은 대부분 체념하고 순응하며 산다. 노동자 계급 소속에 대해 자부심도 있어서 빌리 엘리어트 같은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다. 발레를 한다는 것은 노동자 계급 정서를 배반하는 것이니. 미국도 빈부격차가 심하고,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보스턴, 뉴욕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면 제조업이 몰락했고 제조업 벨트에서 박탈감을 느낀 백인 노동자 계급이 트럼프 당선이라는 반동을 불러왔다.
이런 점들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학에 많다. 조직과 터전의 관점에서 지향성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일터와 직장이 기본적으로 변화에 저항하는 보수적인 구조 속에서 제약을 받는다면, 대학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상의 공론장을 바탕으로 변화를 꿈꾸는 곳이다.
물론 유학 경험이 당사자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맞지만, 한 사람의 사상과 이념은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 즉 정체성과 연결되기에 꼭 영국,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친영파, 친미파라고 속단할 수 없다. 누군가 그렇다면 그건 그냥 그 사람의 결이 원래 그럴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고 본다. 구한말, 일제 시대, 해방 공간을 보면 그렇다. 독립 운동에 참여한 윤동주 시인은 일본 도시샤 대학교 유학파다. 학교 캠퍼스 중앙에 위치한 채플 근처에 한인 학생회에서 세운 윤동주 기념비가 아직도 남아 있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중국 유학생들을 만나봐도 그렇다. 학교에서 몇 년 동안 영어 튜터로 활동하고 있는데, 주로 중국 유학생들과 매칭되어 지도하고 있다. 이 친구들과 대화해보면 당 간부 자녀들이 유학을 많이 나와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국가주의 사상이 확고하다. 딱 한 명 안 그런 친구를 봤는데, 운남성 소수 민족 출신이었다. 대부분 대화하다 보면 천안문 사태, 구글/페이스북 차단 등 인터넷 검열 제도 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보다는 어쩔 수 없다고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등골이 서늘하다. 이 친구들이 중국에 돌아가서 어디가 되었든 엘리트 계층에 편입되어 중국 사회를 이끌어나갈 허리 세대가 될텐데, 이런 사고 방식과 가치관이면 중국의 민주화는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가 관건이다. 그 과정에서 청춘의 윤동주가 되거나, 아니면 노욕의 최남선이 되거나.
Discovering Myself and the World
새로운 곳에 가서 가장 잘 보이는 것은 그 사회 뿐만 아니라 떠나온 모국이다. 항상 재밌게 수업을 들었던 간제 선생님이 말한 적이 있다. 모국인 독일에 가끔 돌아가면 그 때 문화 충격을 받는다고. 여행을 떠나면 떠나온 내 자리가 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유학은 어찌 보면 오랜 여행과도 같다.
친구의 유학길을 축하하며, 나도 이 오랜 유학길의 끝에서 내가 떠나온 자리를 돌아보며 나아가는 사람,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