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지내며, 우붓에서 일하기

주영
주영
Jul 24, 2017 · 9 min read

우리는 우붓에서 지내는 1년간을 우리만의 안식년으로 삼기로 했었다.

여유롭게 살기로 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떠나오기 전 몇달간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수면시간 조차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허덕이는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의 서비스에 대한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왔지만, 생활에 밀려 프로토타입에서 더 나아가질 못했다.

모든게 팍팍하고 또 팍팍했다.

우리의 서비스에 대한 아쉬움도 항상 쓴맛으로 남았다.

그래서 1년간은 안식년으로 삼아 푹 쉬면서, 우리의 서비스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토록 To Do List에 고이모셔놨던 원하던 서비스들을 맘껏 만들어서 마음 한 구석을 항상 차지하고 있던 아쉬움도 털어내기로 했다. 서비스의 성공여부는 우리한테는 그렇게 중요한 사항은 아니였다. 그토록 그림만 그려온 서비스들을 실제로 만들어 보는게 목표였다.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기존 클라이언트의 6개월 유지보수 계약과 정부에서 지원하는 오픈소스 개발 활동 도 함께 가져왔다.

그렇게 우붓의 멋드러진 풍경에서 멋드러지게 디지털 노마드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계획에 두 똥쌔기들은 생각보다 강력한 변수가 됐고,

우리는 작업시간 확보를 위한 이런 저런 시도를 하고 있다.

1차 시도, 주오와 함께 집에서 일하기

기존 계획은 아침 8시 30분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서 일하는 거였다. 대략 3시에 하원한다고 치면 6시간 가량을 쓸 수 있는 거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계획인가. 8시 30분부터 2시 30분까지는 Yo Studio 모드,

그 이후로는 제이 주오의 엄마 아빠 모드.

계획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역시나 뜻대로 안되는게 계획이었다.

우붓으로 출발하기 전, 아이들을 입학시키려고 계획한 학교에서 입학대기자가 많아 빨라야 8월부터 다닐 수 있다고 회신을 받았다. 이런 날벼락이 있나! 급한 마음에 우붓에 도착하자 마자 이 학교 저 학교를 다 찾아다녔다. 결국 제이가 다닐 수 있는 학교는 찾았지만, 주오는 너무 어려서 8월이나 되어야 입학이 가능했다.

난감했다. 8월까지는 앞으로 4개월이나 남았는데, 계획을 전면 수정하게 생겼다.

그래서 찾아낸 묘책은 일단 제이는 학교에 다니고 주오는 베이비시터를 찾아 9시부터 12시까지 맡기는 거였다. 그럼 우리는 최소 3시간은 집중할 수 있는 거다. 아니, 그럴 줄 알았다.

주오가 아직 아가이긴 했다. 베이비시터 친구랑 잠시 잘 노는 듯 싶더만, 10분에 한번 꼴로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화면 타이틀 하나 잡고 책상에서 일어나고, 레이아웃 하나그리고 책상에서 일어나다 보면, 집중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3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종은이 1주일에 한번 한국의 클라이언트와 원격으로 일하는 수요일이면, 그날 나의 작업은 포기해야겠다. 그렇게 2달간 거북이 기어가는 속도로 야금야금 할 수 밖에 없었다.

2차 시도, 아이들없이 집에서 일하기

그러던 중 제이 학교가 여름방학을 하였고, 7월부터 썸머캠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제이 학교에서 주오를 썸머캠프부터 시도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썸머캠프에 잘 적응하면 8월에 입학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오호! 이런 호재가 있다니!

게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 학교는 한국에서 보내던 유치원과 매우 비슷하게도 아이들을 자유로운 영혼 그대로 대하는 학교였다. 전화위복이었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제이도 즐겁게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팻말. 강요하는 것도 급할 것도 없는 작고 귀여운 학교.
학교 마당에 있는 타이어 그네,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빙그르르 돈다.

우리는 부리나케 아이 둘을 썸머캠프에 보내기로 결정하고, 이제 드디어 하루에 4시간이라도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둥실둥실 춤을 췄다. 굳이 코워킹 공간에 가서 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뜻대로 되는게 없지…그래야 우붓이지…

성수기를 맞아 우붓에는 극심한 차량 정체가 시작되었다. 차로 아이들을 등하원 시키는데 아침에는 왕복 1시간이 그리고 오후에는 2시간이 걸렸다. 하루에 3시간을 차안에서 보내는 것이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우리집에서 학교까지는 스쿠터로는 왕복 20분 남짓한 거리라는 것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등하원 소요시간 덕분에 집에서 2시간 겨우 일할 수 있었다.

집에 와서 한 숨 돌리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키고 내 머리도 부팅 하는데 걸리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실제 작업하는 시간은 2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3차 시도, 코워킹공간에서 3시간 일하기

일주일동안 매일매일 그렇게 차안에서 3시간을 보낸 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또 방법을 궁리해냈다. 아이들 학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발리에서 코워킹공간의 원조격인 Hubud이 있었다. 차라리 운동겸 그곳에 걸어 가서 일하는게 대안일듯 싶었다.

그래서 바로 그 다음 월요일부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후 학교 앞 공터에 차를 주차했다. 그리고 15분을 걸어 Hubud에 갔다.

Hubud 계단에 놓여진 귀여운 메리골드
겉에서 보기에는 작은데 안에는 생각보다 공간이 꽤 넓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냥 또 다른 시도였는데…

작업이 엄청 잘된다!

아무래도 집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편안해서 좋지만 뭔가 자극을 받을만한 꺼리가 없었다. 그리고 자꾸 이런저런 해야할 일이 생각나서 집중이 자꾸 끊겼었다.

그런데, Hubud에서는 까페에서 일하는 것과 같은 집중이 가능했다.

세계 각곳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 무언가에 집중해서 하는 모습이 자극이 됐다.

아침 8시 반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Hubud에 9시쯤 도착해 12시까지 3시간 집중해서 작업을 하고, 다시 12시 30분쯤 아이들을 데리러 부지런히 걸어간다.

작업진도가 쭉쭉 나갔다.

지난 2개월에 비하면 아주 아름다운 아웃풋이다.

단, Hubud에서 작업하는거에는 2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첫번째는 점심

Hubud이 워낙 번화가(?)에 위치한 터라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할 경우 1인당 약 1만원 가량이 든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코앞 우리 동네의 맛난 와룽에서는 1만원이면 우리 네식구 식사 값인데, 매번 이 돈을 지불하면서 (크게 별다를 것도 없는 맛의) 점심을 사먹는게 자꾸 걸렸다. 점심이 얼마나 중요한데, 자꾸 점심 먹을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이 역시도 한번은 Hubud 근처 식당들에서 먹어보고(맛없고 비쌈), Hubud에서도 먹어보고(맛있고 비쌈,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음), 허기짐을 참았다가 집에 가는 길에 와룽에서 테이크아웃도 해보고(싸고 맛있지만, 배가 엄청 고파서 예민해짐), 애들 학교앞 피자집(싸고 맛있지만, 매일 피자먹기는 힘듬)에도 가보는 등, 이런 저런 시도 끝에 Hubud에서 가깝게 위치한 와룽을 찾았다. 가격도 싸고 맛도 그럭저럭 하다. 청결도 현지인이 운영하는 와룽치고는 깔끔하다. 당분간은 이 집과 피자집을 적당히 섞어 점심을 해결할 듯 싶다.

Hubud의 따끈따끈한 모링가 스프
관광지 물가를 자랑하는 Hubud 근처 식당들 중 오아시스 같은 현지 와룽.

두번째는 사그라진 줄 알았던 물욕

우붓에 오면서 적게 소유하고 살겠다 하고 왔고, 이제는 옷등에 대한 물욕을 다 내려놓은 줄 만 알았다.

단 몇벌의 옷을 돌려가며 입으면서도 전혀 옷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간단한 나의 옷수납장이 너무 좋았다. 아침에 뭘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한정 됐으니깐.

그런 줄만 알았는데…

내가 사는 번화가에서 벗어난 동네라 그게 가능했던거였다.

견물생심을 발동시킬만한 거리들이 없는 동네만 돌아다녀서 가능했던거다.

딱히 화려할 것도 없는, 귀엽고 조용한 우리 동네

나의 물욕은 전혀 사그라든게 아니었다.

매일 같이 Hubud에서 아이들 학교로 데리러 가는 길은 쇼핑 중심지다.

그 길을 매일같이 걷다보니 사르라진 줄 알았던 물욕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휴양지 패션부터 요기들을 위한 멋진 패션샵까지. 길을 걷는내내 가게들의 디스플레이들을 구경하느라 바빠졌다. 나도 모르게 어느 가게에서 어떤 스타일의 옷들을 파는지 기억해놓고 머리 속에 차곡차곡 정보들을 저장해놓고 있었다.

하늘하늘 레이스 옷 전문 가게
헉헉거리는 오르막길에도 가게가 즐비
우붓이 시골동네라는 걸 잊을정도로 예쁜 가게들
인테리어 전문가게

그러다 급기야는 지난 금요일 종은에게 제대로 한번 쇼핑을 하겠다며 하루만 시간을 빼달라며 요청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주말동안 다시 번화가를 멀리하며 견물생심을 누를 수 있었다.

Hubud을 다니는 동안은 아무래도 계속 이 물욕과 싸워야 할 듯 하다. (내 자신이 이길 수 있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제 곧, 코워킹 공간에서 5시간 일하기

다행히 주오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즐겁게 놀아서, 드디어 입학허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새학기가 8월달부터 시작한다.

8월달부터는 정식학기이기때문에 오후 3시에 하원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약 5~6시간을 작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8월 달까지는 Hubud에서, 피크시즌이 좀 사그라드는 9월달부터는 집앞에 있는 코워킹공간인 Outpost에서 작업할 계획이다.

본격적으로 5~6시간을 작업할 수 있는 8월달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우붓에 오고 난 후 처절히 깨달은 것은 계획대로 되는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

무언가 또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리고 또 그에 맞춰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며 최적의 방안을 찾게 되겠지.

익숙치 않은 공간에서, 익숙치 않은 삶의 방식에서, 아이들과 하루하루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계획>변수>새로운 시도를 반복적으로 거치는 과정을 가볍고 즐겁게 대할 수 있는 마음. 웃을 수 있는 여유 라는 걸 깨달았다.

케세라세라, 하쿠나마타타

잘 부탁한다

어쩌면 이 일년은 그런 삶의 자세를 연습하는 일년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만해도 큰 수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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