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런칭, 대략 2년간의 회고

joyeon
5 min readApr 12, 2014

지난 24일, 그동안 개발해오던 모바일 게임을 호주의 앱스토어에 런칭했다. 몇년새 인기를 끌고있는 3타일 매칭 퍼즐 장르의 게임이다. 게임의 안정성과 영미권 국가들 내에서의 사업적 가능성을 가늠해보기 위해 최근에 비교적 작은 시장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스토어만을 오픈해놓고 테스트하는 경우가 많은데(소프트런칭이라고 한다.) 우리의 게임도 일종의 그런 베타 기간인 셈이다.

제작년, 나는 6년여간 재직했던 회사를 나오면서 생애 처음으로 직원 수가 20명이 되지 않은 작은 회사에 합류했다. 어쩌다보니 계약직으로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한국방송공사를 비롯해 짧게 재직했던 다음이나 SK컴즈도 IT계열의 회사들 중 대기업에 속하는, 규모가 큰 회사들이었다. 어쨌든 내가 엔씨를 나올 당시는 셰릴 샌드버그가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 축사로 “로켓에 자리가 나면 올라타라” 라는 얘기를 하던 시기였지만 회사를 나온 이유가 로켓을 타고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간혹 비현실적인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 생각엔 매우 소심하고 현실적인 사람이다.) 다만 오랫동안 근무한 따뜻한 회사에서 나와 작은 회사로 들어간 이유는 이런거였다.

  •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왜 만들고 있는지 동기가 없는 일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피로 누적
  • 스스로에게 의미있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은 마음
  • 큰 회사라서 할 수 없는 유연한 결정, 재미있는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 언젠가는 어딘가에 고용되지 않고도 살아남기 위해, 작은 회사라면 예행 연습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짧지 않은 기간동안 이런 마음들을 지니고 있던 차에, 그동안 일관되게 함께 일하자고 말씀해주신 지금 회사 대표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에 이 회사로의 이직을 결정했다.

이직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만들었던 iOS 앱은 썩 잘만든 앱이 아니었는데도 운 좋게 앱스토어 추천 탭에 두번이나 Featured 되고 매체에도 소개되었었다. 분명히 설레고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더 해볼 용기나 요령은 없었다. (업데이트도 한번 안 함) 7년 가까이 회사에서 일해왔지만 다른 사람들은커녕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도 몰랐던 것이다.

어찌됐든 새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3타일 매칭 장르의 게임이었다. 회사에서는 처음부터 지금처럼 다양한 모드와 스테이지를 가지고 있는 게임을 만들기를 원했지만 게임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팀원들을 고려해서 Blitz 형태로 미숙하게라도 빠르게 완성해보자 하고 노선을 바꿔 진행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빠른 속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그대로 라이브를 하고 업데이트를 하는 대신 스테이지 형의 게임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정에 팀을 재정비해 만든 게임이 이번에 런칭한 Chew n’ Pop Tales 다.

2012년 6월 입사 후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시간동안 바뀐 환경에서 일을 하며 배운 것, 경험한 것이 많다. 아래, 중요도나, 분류,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이전에 없었던 경험들을 적어볼까 한다. 참고로 난 이전 회사들에서 웹, 모바일(iOS) 클라이언트 개발 업무를 주로 해왔다.

  • 게임 제작 프로젝트
  • 프로젝트 리딩 (PM) 업무
  • 작은 팀 (3명 이하)
  • cocos2d-x (그리고 그것의 버전업 과정)
  • C++
  • 만드는 것 외, 팔아야 하는 것에 대한 고민
  •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동기 부여에 대한 고민
  • “수평적” 조직
  • 팀원의 퇴사 (두번이나!)
  • 유료 아이템의 판매(BM)
  • 그리고 그 구매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프로젝트 드랍 (써놓고 보니 없었던 경험은 아니구나)
  • (업무 특성에 따른)다양한 컨텍스트를 가진 사람들과의 동시 커뮤니케이션
  • 구성원이 일년 새 두배 이상 늘어난 회사
  • 프로젝트 및 조직의 개발 인프라 구축 과정
  • 2D 퍼즐게임의 설계 → 프로토타이핑 → 구현
  • 소프트런칭

써놓고 보니 2년간 많은 시간 나를 괴롭힌 부분도 있고 비교적 최근의 재미있는 일들도 있다. 가령 이제 소프트 런칭을 한지 만 2주가 되었는데 호주의 유저들만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진행해가며 발생하는 유저의 유입과 이탈, 구매 패턴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데이터 분석을 위해 이전 회사에서 같은 팀에 계셨던 분이 개발하고 계신 5rocks라는 툴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 툴을 사용함으로 인해 아마 이 툴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시간과 삽질공부가 필요했을 게임 로그, 유저 패턴 분석에 대한 이해 구축(?)을 급행으로 할 수 있게 된 듯한 느낌.)

돌아보면 좋은 경험이라 느껴지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다. 어떤 것이 좋은 경험이고 나쁜 경험인지 나누는 기준은 애매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것들은 어찌됐든 내가 매 순간 내렸던 선택들로 인해 얻을 수 있었던 경험들이고 아마도 나는 내가 소화 할 수 있었던 만큼 성장해왔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좋았던, 아쉬웠던 경험을 뒤로하고 다가오는 5월을 마지막으로 이 회사를 떠나고자 한다.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시나 2년 전과 다르지 않은 것이 있다.

  • 스스로에게 의미있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은 마음

스스로에게 의미있고 주체적인 삶이 어떤 삶인지 솔직히 아직 모르겠다. 언젠가 내가 어딘가에 고용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순간이 왔을 때,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런 선택으로 인해 앞으로 크고 작은 실패나 좌절이 있을거고 어려움도 있을거고 언젠가는 후퇴하고 돌아와 다시 도전하는 일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2년 전과 지금의 다른 점이 있다면 두려움에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맞서 치열하게 살아볼 각오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래야만 할테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