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tles

틀즈는 존 레논(John W. Lennon 1940.10.9~1980.12.8), 폴 매카트니(James Paul McCartney1942.6.18~ ),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1943.2.2~2001.11.29), 링고 스타(Ringo Starr 본명 RichardStarkey 1940.7.7~) 등 네 명의 영국 리버풀 출신 청년이 모여 결성한 그룹이다. 리버풀 출신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네 젊은이는 여러 경로를 거쳐 비틀즈라는 거대한 대중음악의 활화산 속으로 모여 들었다. 비틀즈가 언제 출범했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른바 비틀즈 유일의 공인 전기로 평가 받는 ‘더 비틀즈(대교베텔스만)’의 저자 헌터 데이비스가 기록한 바를 좇아가면, 존 레논은 분명하게 엘비스 프레슬리로부터 영향을 받고 음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존 레논은 “어린 시절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엘비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이라고 밝히고 있다.

네 명의 멤버 중 존과 폴이 만난 것을 비틀즈 출범의 한 계기라고 한다면, 리버풀 인스티튜트에서 존이 폴을 만난 1957년 7월 6일을 꼽을 수 있다. 존은 이 날을 “바로 그날이었다. 모든 것이 시작된 날. 내가 폴을 만난 바로 그날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비틀즈란 이름을 정식으로 쓰기 시작한 날을 비틀즈의 출범이라고 한다면 시간이 좀 더 흘러 1959년이 되어야 한다. 리버풀의 퀴리뱅크 고등학교에 다니던 존은 스쿨밴드 ‘쿼리멘’을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존과 폴 모두 리버풀 인스티튜트로 진학하면서 더 이상 ‘쿼리멘’이란 이름을 쓸 수는 없었다. 이들은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서로 다른 색깔의 셔츠를 입고 왔다고 해서 ‘레인보우스(The Rainbows)’ 어떤 때는 ‘문독스(The Moondogs)’란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1959년에 이르러서야 이들은 ‘비틀즈’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딱정벌레(beetles)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나는 그 철자를 BEAT-les로 바꾸어 써보았다. 비트(beat)음악을 연상시키는 말장난이었다.”라고 존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당시 밴드 이름은 길어야 한다는 유행에 따라 ‘키다리 존과 실버 비틀즈(LongJohn and the Silver Beatles)’라고 붙였다. 그리고 한 오디션에서 이름을 물었을 때 ‘실버 비틀즈’라고 말한 뒤부터 ‘실버 비틀즈’는 1959년 내내 이들의 이름이 됐다. 어쨌든 ‘실버 비틀즈’로 활동하던 이들은 1960년 독일 함부르크로 옮겨가 연주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이들의 멤버는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과 드러머로 피트 베스트, 베이스로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등이었다. 비틀즈는 함부르크에서 1960년 12월 초까지 머물렀다. 조지는 당시 겨우 17세로 아직 미성년자여서 학생여권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1960년 12월 리버풀로 돌아온 비틀즈는 리버풀 중심가의 최고 라이브 클럽으로 자리잡고 있던 캐번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1961년 1월부터 1962년 2월까지 1년여 동안 이들은 모두 292회의 공연을 가지며 리버풀 최고의 밴드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영국의 한 지방도시의 인기 밴드일 뿐이었다.

이후 비틀즈는 ‘어 하드 데이즈 나잇(A Hard Day’s Night: 1964년 7월)’, ‘비틀즈 포 세일(Beatles forSale: 1964년 12월)’, ‘헬프(Help: 1965년 8월)’, ‘러버 소울(Rubber Soul: 1965년 12월)’, ‘리볼버(Revolver: 1966년 9월)’,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년 6월)’, ‘더 비틀즈(The Beatles: 1968년 11월)’, ‘옐로우 서브마린(Yellow Submarine: 1969년 1월)’ 등의 앨범을 펴내며 세계 팝 음악을 지배하는 밴드로 군림한다.

비틀즈는 1969년 10월 마지막 걸작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를 내고, 1970년 4월 10일 폴 매카트니가 솔로 앨범 발매와 동시에 비틀즈 탈퇴를 선언하면서 해체했다. 비틀즈가 해체한 지 한 달 뒤인 1970년 5월, 그 전에 제작됐던 ‘렛 잇 비(Let It Be)’가 발매됐다. 이후 존 레논은 1980년 12월 8일, 그의 팬이었던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남은 비틀즈 멤버들은 존 레논의 미완성 곡이었던 ‘프리 애즈 버드(Free As Bird)’ ‘리얼 러브(Real Love)’를 각각 1994년 1995년에 공동 녹음했고, 조지 해리슨은 2001년 11월 29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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