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2013


누군가에게 세상은 간단해 보였다. 아니, 그들의 삶은 물론 치열하고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의 기준이 단순해 보이는 사람이 있고 나는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

내게 세상은 어려웠다. 어쩌면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어서, 그래서 그럴 수도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기계장치 속에 버려져 있는 악몽은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꿈이다. 피하고 피해왔던 수학 공식 처럼, 세상을 구성하는 사회에 합의된 어떤 모델이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어려웠다.

그 모델을 분해해 보니, 세상에는 개인의 욕망이 중첩되어 보편적으로 합의된 ‘무언가’가 생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서로가 가지고 있는 욕망은 본인들이 수동적으로 동의한 ‘무언가’에서 좌우로 조금씩 편향되어 있었다. 때문에 사회생활을 위해서 욕망을 감추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대개 가식적인 모습으로 비춰지었다. 그래서 어려웠다. 모두의 최선은 각자의 최선이 아니었고, 가끔은 최악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욕망의 교집합으로 형성된 ‘무언가’가 당연한 진실이라고 믿기에는, 욕망의 교차점이 한 두개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2차 방정식이 한계였던, 나에게 그래서 세상이 어려웠다. 변수는 수없이 많았고 시시각각 그 값이 변하는 무작위한 욕망들.

이 욕망은 무엇인가. 언젠가, 나는 ‘자기 자신을 위헤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라고 감히 말했었다. 자기 만족은 대체로 타인/객체를 변화시킴으로 달성되는 것처럼 보였었다. 물론, 자기자신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역시도 ‘득도’라는 개념이 아닌 이상 변화된 자신과 타인/객체에 대한 관계의 변화를 통하여 자기 만족을 얻는 것으로 여겼다. 결국 모두는 모두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감히 생각했었다.

고로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느끼는 만족이라는 감정은 과거의 자신에 대하여 변화된 자신을 긍정하는 모습인데, 긍정은 선택의 문제이다. 시간 축만 고려한다면 과거와 현재의 자신에 대한 비교로 끝나겠지만 사회적인 동물인 까닭에 결국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만족으로 결론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예외적인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고 나는 더욱 어려워했다.

도덕률이라는 것이 결국은 소망과 욕망의 경계를, 바람직한 미래상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것에 불과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 기준 역시 다양한 욕망이 중첩된 경우에 가장 최다의 사람이 그 자신의 욕망의 최선까지 실현시킬 수 있는 경우까지 그 기준이 결정된 것이라고 결론지어질 것이다. 그렇게 사회가 구성되어 있다고 하여도 현실적으로는 가진 사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가지지 않은 사람의 소망이 무시되는 경우가 굉장히 잦다. 재미있는 점은 종종 가진 자의 소망이 평등이나 자유와도 같은 음식과 분변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으로 이뤄지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경우에는 기존의 도덕률을 뛰어넘는 새로운 도덕률을 창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인권이라는 것을 우리가 발명한 것 처럼.

하지만 모두의 욕망이 다른데,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나는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적 이야기를 알 수 없지만, 가끔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도대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여전히 무신론자로 천주교 신자 행세를 하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신은 죽었다, 적어도 신격은 사라졌다. Vice versa.

사랑해서 연애를 하는 건가 연애를 해서 사랑하는 건가, 그런 소설책에서 나온 죽어있는 이야깃거리 왜에는 도대체가 생각할 거리가 없는 걸까 나는. 할 일은 쌓여있고 공부할 것도 쌓여있고 속은 안좋은데 굳이 음식과 분변 사이에서 이런 쓰잘데기 없는 글을 집어 넣어야지 인생이 뭔가 의미있는 것으로 인지될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동식물의 사체와 하수도관 사이에서 존재하는 나란 존재의 움직임이 부가적으로 생산해내는 각종 오염물질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자괴감이 차올라서 쓰기 시작한 순간 이미 난 져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야 하기에 글을 쓰고, 올리고 공유한다.

2013년 연말, 정말로, 자기 긍정을 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여러모로. 마치 내일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끝은, 대체로 우울했다. 사라질 것들을 창밖의 날씨처럼 바라볼 준비가 나는 되어있지 않다.

2013.12.30
서울, 구로동


(+) 12/31에는 글을 쓸 수 있을지가 불분명하여 미리 쓰고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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