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 D58 모두에게 좋은 방법

어제 판교에서 채사장이 하는 강연을 들었다. 채사장은 어떤 사장은 아니고,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진행자이고 동명의 책을 쓴 작가다. 나는 그 팟캐스트를 굉장히 좋아한다. 강연도 보자마자 후닥닥 신청해서 다녀왔다. 강연 후 함께 사진도 찍었는데 너무 좋았다. 무슨 초미남 배우랑 사진 찍은 것도 아닌데 이게 이렇게 좋을 일인가 싶지만 암튼.

강연의 큰 주제는 ‘성장’이라고 말했지만 실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윤리’ 혹은 ‘도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의 소재가 된 것은 소설 ‘죄와 벌’의 내용이었다. 채사장은 자기 소개를 하고 자신의 책소개를 하고 난 뒤에 오늘 토론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리고 그 토론의 재료가 될 죄와벌의 줄거리를 설명하고 정말 토론을 진행했다. 예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고, 그 혼란한 이야기들을 채사장이 명쾌하게 요약정리를 하며 진행해갔다.

주제는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소설 속 주인공 로쟈의 행동이 옳았는가. 소설 속 로쟈는 가난한 대학생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여 부자가 된 재물포 노파를 죽인다. 그 돈으로 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구제할 이상을 가지고 살인을 결행한다. 두번째는 로쟈의 영웅관이 옳은가. 로쟈는 비범한 인물들은 기존의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사회를 변혁할 권리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윤리와 도덕의 문제는 정말이지 너무 어렵다. 살인은 나쁘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건들에서는 무조건 나쁘다고 몰아붙이기 어려운 수많은 지점이 존재한다. 영웅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인류는 수많은 독재자와 특히 히틀러를 겪으며 한명 혹은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뼈아픈 경험을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부조리한 일들을 끊임없이 보고 수 년이 지나도 그 부조리들이 여전한 것을 볼 때 답답하다. 어떤 대사건이 일어나거나, 누군가 나타나 속 시원히 뒤집어 주기를 꿈꾸기도 한다.

답은 모른다. 하지만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 얻으면 무언가를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갖혀있다. 굉장히 익숙한 사고구조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할 수 밖에 없다거나, 큰 뜻을 이루는 과정에 작은 문제들은 무시해야 한다거나.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파괴될 수 밖에 없고, 누군가는 비정규직으로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어쩔 수 없다고, 은연 중에 생각한다. 이런 방식은 진보가 아니다. 인류는 왜 기술을 발전 시키고, 왜 경제를 부흥시키려고 하는가. 더 많은 사람들이, 가능하면 한 명도 빠짐없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다. 삶의 터전인 지구와 동식물들도 다 함께 좋아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두에게 좋은 방법’을 믿고 그것을 찾는 방향으로 사고의 방향을 바꾸면 정말 더 좋은 세상이 오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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