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편안함,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나요?

Jiwon Yeom
Aug 27, 2019 · 11 min read

살아가면서 좋아하는 것, 혹은 하고싶은 것을 하는 것과 잘 할 수 있고 편안한 것 사이에 무엇을 선택하는게 좋을까요?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일까요?
누군가는 열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죠. 다른 사람들은 열정은 언젠가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잘하는 것,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선택하라고 이야기 하죠.

저희는 그 사이에서 너무나 많은 고민을 합니다. 사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 하는지를 아예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죠. 내가 좋아하고 열정을 가졌다고 생각한 무언가가 알고 보니 나한테는 안 맞는 어떤 것이라는 깨닫는 순간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런 순간이 오면 우린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오늘은 몇 달간 미루고 미뤘던 웹개발을 그만 두게 된 이야기,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개인의 커리어와 직업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자 합니다.


전에 올렸던 회사를 칭찬하는 글이 무색하게도 (굳이 전의 글을 수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제 시점의 변화를 참고하실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올해 2월경, 저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세번째 이직한 회사였습니다. 일본에 와서 중소기업의 사내 스타트업 같은 팀 내의 풀 스택 개발자로 1년을 채워가던 저는, 처음 팀에 합류 하면서 들었던 ‘조만간 데이터 분석에 관련된 일을 시켜 줄게’ 라는 제안이 희미해질 만큼, 관련된 일은 조금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희 팀의 프로덕트는 당시 예정된 릴리즈일의 5개월이 넘도록 동안 딜레이에 딜레이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웹의 백엔드를 기본적으로 만지며 때때로 프론트도 하고, 기술 통번역까지 필요하다면 무슨 일이든 하며 팀원으로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웹 개발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나 애자일에 대한 지식, Github 등에도 훨씬 익숙해졌지만 저는 제가 성장했다는 기분이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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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 더 잘했어야 했던걸까?

입사 후 하루도 맘 편히 쉬는 날 없이 열심히 일했지만 제 실력에 대한 불신은 커져갔고, 즐거움 보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의 하루하루였습니다.

이제서야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저는 2016년 처음으로 개발자로서 발을 내딛은 후 한번도 제 손을 거쳐간 제품이 제대로 유저들 사이에서 이용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열심히 노력했지만 왠지 모르게 제가 소속된 회사 혹은 팀은 항상 출시 일이 늦어지거나,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좋은 결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에는 제가 스타트업 위주로 회사를 다닌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에게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개발 경험이 전무한, 고작 신입 개발 팀원이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었겠냐고 너그럽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주변의 훌륭한 개발자분들을 우러러보다 보니 더 높은 곳에 있는 분들이 공유하는 사례나 지식들을 보면 더더욱 작아지는 저를 느꼈습니다.

이번 회사에서도 애초에 결정 됬던 릴리즈가 개발팀의 문제가 아닌 외부 요인으로 미뤄지고 또 미뤄지면서 저는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그 프로젝트가 끝나면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데이터 분석 관련 일을 하기로 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끝이 묘연해질수록 불만은 커져갔죠.
나한테 무슨 액운이라도 낀 걸까, 내가 좀 더 뭔가를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곤 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이 프로젝트만 끝내면 나도 얻는 것이 많을 것이고,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도 발을 담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만 한다고 불안감이 해소되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팀에 합류한 열정과 능력 둘다 출중한 개발자 동료를 보면서, 실력이 더 좋은 다른 개발자들을 보면서 저는 자꾸만 이 길이 제 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힘겨움 속에서도 즐거워 보이고, 시스템을 개선할 방법을 찾았지만 저는 왠지 모르게 그게 잘 안됬죠. 그건 누구나 그래, 라고 이야기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좋은 개발자, 앞으로 나아가는 개발자의 원동력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믿기 시작했습니다.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적용시켜가며 소프트웨어를 완성시켜 나가는 즐거움을 동력원으로 삼는 개발자들.

언젠가부터인가 즐거움보다는 불안감, 열정보다는 공포로 개발을 마주하고 있던 저에게 그 사람들은 따라갈 수 없는 존재로 보였습니다.

Imposter 신드롬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나는 사실 특정 업무를 할 만큼의 실력이나 지식을 갖추지 못했는데 현재 ‘할 수 있는 척’을 하며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현상을 말합니다. 저는 프로그래밍에 있어서 이런 감정을 굉장히 심각하게 느끼는 편이었습니다. 완벽주의가 심한 부분도 있었고, 저의 배경 지식이나 공부가 충분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죠.
하지만 비전공자 라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호기심과 열정을 무기로 앞으로 척척 걸어나가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저는 노력은 하고는 있지만 더 노력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계속해서 후회하거나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혼자서 공부해봐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 창의적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죠. 제가 시니어가 되어 설계를 하고 후배 개발자를 인도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든 일 이었습니다.

즉, 비전공자여서가 아니라, 저라는 사람의 특성 때문에 더욱 힘들었던게 아닐까 생각해요.

Photo by Headway on Unsplash

환경이 문제인가 내가 문제인가?

이 시기쯤, 회사에서 불만족스런 일이 연달아 발생하게 되고, 결국 저는 제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건 뭘까? 많은 기회를 포기하고 뛰어든 개발자로서의 커리어가 점점 버겁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밤이고 낮이고 여유가 날 때마다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깨닫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나는 항상 데이터에 관심이 있었고,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구나. 그 중에서도 데이터 사이언스보다는 데이터 분석 자체에 관심이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죠. 처음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할 때부터 쭉, 제가 제일 즐거워하고 관심있어 한 분야는 데이터 처리, 시각화, 그래프 툴, 테이블 툴 등이었습니다. Raw 한 데이터를 적절하게 클린업해서 시각화 툴에 넣고 데이터의 변화나 다양하게 변하는 그래프를 보는 것이 제일 즐거웠던 저였습니다.

반면 소프트웨어론이나 애플리케이션의 유지보수성, 설계에 대해서는 재미는 있었지만 책임감과 어려움이 무척 무겁게 느껴졌었죠. 워낙 중요한 부분이기에 그렇게 느꼈던 걸지도 모르지만, 저에게는 좋은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것이 즐거움 보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넌 어떤 걸 만들고 싶어?’ 라고 물어볼 때마다 ‘난 데이터를 이용해서..’ 로 시작하는 답이 저의 대답이었습니다. 다른 동료 혹은 친구 개발자들이 모두 난 ‘~한 앱을 만들고 싶어, ~한 웹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 라고 할 때마다 저 혼자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당시에는 뭔가 나 혼자 다른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뭐가 다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스스로를 들여다 본 후에야 저는 제가 무엇을 정말로 편안해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변화무쌍한 스타트업 환경도 저랑은 잘 안 맞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저는 시간을 두고 철저한 검증을 거쳐 정확한 결과를 내고, 안정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건 정의가 수도 없이 변하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도입하며 시스템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문제가 아닌 개선 가능한 사이클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 저에게는 어렵고 힘든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서야 저는, ‘나는 개발을 좋아해. 나는 앞으로도 계속 개발을 하면서 살 거야’ 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를 괴롭히던 사실을 제대로 마주하기로 한 것이죠.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저는 제가 더 이상 스타트업 환경에서, 더군다나 개발자로서는 더 이상 즐거워하면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 든 생각은 두려움 이었습니다. 벌써 개발자 3년차인데.. 또 커리어 변경을 해도 되는 걸까? 이번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길일까? 주변 사람들이 날 안 좋게 보지 않을까?

저는 제 스스로가 개발자로 일하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그 빛나는 커뮤니티의 일부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지금이라도 내가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Photo by Braden Collum on Unsplash

모 아니면 도

저는 곧바로 사표를 내고, 이직 활동에 집중하게 됩니다.
개발자로 일하는 동안 계속 하고 싶었지만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파이썬을 계속해서 공부하며 Data Analyst라는 직무에 닥치는 대로 지원을 했습니다.
전에는 ‘난 안될거야’ 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했던 대기업에도 모두 지원했습니다. 제 스스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 스타트업 환경이 저랑 안 맞는다는 결론에 도달한 이상, 저는 반드시 제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새로 제대로 시작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을 내려놓게 되어서 도전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내가 내 자신을 모든 것을 갖춘 사람으로서 비춰야 한다는 것에 중압감을 느껴 도전도 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죠. 꼭 제 자신을 위해 모든 기회를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이러다가 이대로 직장을 잃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동안 안 쓰고 열심히 모은 돈은 이럴 때 쓰기 위해서 모은 것이라 생각하고 여차하면 다시 유학을 갈 결심을 했습니다. 그만큼 저는 절실했고, 확신이 있었으며, 제 인생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이번이 어쩌면 마지막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죠.

정말 다행히도 저는 여러 곳에 지원한 후 예전부터 알던 무척 좋아하는 외국계 회사에 데이터 애널리스트라는 직무로 입사하게 되었고, 이번 달이 6개월차가 됩니다.
저는 이제 편안하게, 덜 불안해 하며 자신감을 가지고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웹개발은 더 이상 하고 있지 않지만, 숫자와 그래프를 많이 보고, 금융 보고서와 리포트를 읽고, 데이터의 패턴을 파악하며 종종 파이썬 스크립트를 써서 자동화를 하거나 데이터를 분석하는, 제가 하고 싶었던, 즐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프로그래머로서 일하면서 쌓은 노하우는 여기서도 너무나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도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많지만, 전에처럼 조바심을 내지 않고 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부담없이 보고 배우되 나는 내 방식대로 업무를 이끌어가는 스스로를 보며, 잘 한 것 같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우습긴 하지만, 매일같이 ‘오늘도 난 부족해’ 라고 힘들어하는 것을 몇 년 만에 드디어 멈추게 되어 잠도 더 잘 자게 되었습니다.

발전을 멈추게 된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제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다만 스스로를 조금 더 아끼는, 롱 런 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 글은, 어렵게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한 분들에게 실망을 드리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혹은 개발자로서 고민이 많은 분들에게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쓴 글도, 안정을 택하라는 뜻으로 쓴 글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분들일 수록 자신을 많이 들여다보고, 대화하고, 스스로에게 좀 더 다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

저희는 주변 환경과 수 많은 외부 의견에 영향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내 스스로를 가장 잘 알고, 나에게 만족과 평화를 찾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입니다. 그런 기회가 왔을 때 붙잡을 수 있도록 밑거름을 만들어가는 것도 자기 자신이고, 뭔가 잘못됬다고 생각했을 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여 나에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자신입니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되, 스스로의 거울을 많이 들여다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많이 조심스러운 부분은, 저는 제가 이런 변화에 도달할 수 있는 좋은 상황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모두에게 항상 이런 행운이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개발자로서의 꾸준한 노력에 대한 목소리를 내던 제가 다른 방식을 택한 것에 의아스러움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잘못됬다거나, 불행함을 느끼면서도 변화가 두려워 선뜻 시도해보지 못하는, 꼭 개발자에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저처럼, ‘어렵게 선택한 길인데 이제와서 아니란 걸 인정하기엔 너무 고통스러워’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말이죠.

저도 제 자신이 선택한 길을 다시 바꾸고 제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녹록치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끝이 여러분을 조금 더 행복한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면, 시도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의 커리어, 혹은 모든 고민을 가진 분들께 많은 행운을 빕니다 :)

+추가로, 너무나 오랜만에 미디엄에 글을 올리고 이제서야 전에 글들의 댓글들을 발견하였네요. 죄송합니다ㅠㅠ
이미 너무 늦은 글들이 많아 일일이 다시 댓글을 달아드리기는 어려울 듯 하지만, 지금이라도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최대한 대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Jiwon Yeom

Written by

Data Analyst. Ex web developer. Multilingual transl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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