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0, 일기
Follow your bliss!
조셉 캠벨의 문구를 되새기며 시작하는 아침이다.
지난 새벽 1시 20분경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너의 결정이 너무 독단적이었고 엄마 아빠의 의견을 들어보지조차 않고 결정을 한 건, 부모님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 매우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아예 얘기를 하지 말던가 (제작사 대표에게 제의를 받았다는 걸) 알고나자 엄마 아빠입장에선 좋은 기회를 놓쳐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너가 아무리 확실히 정했다 하더라도 너보다 더 인생을 산 어른들의 입장에서 조언해줄 수 있지 않았겠냐고.
나는 말했다.
-내 안에서 이미 확실히 결정이 나서 조언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인데 왜 굳이 조언을 구해야 하는거야?
-만약 아빠가 대화를 하고 싶은 거라면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곳을 선택했는지 궁금해해야 하는 것 아니야?
아빠는 반복해서 너의 선택 과정 자체에 부모님이 제외된 것, 그것이 기분이 나쁘지 거기서 일을 하는 게 기분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가 아무리 말해봤자 결국 선택은 너가 하는 것이고 대화 끝에 너가 그렇게 결정을 했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이건 매우 기분이 나쁘다는 게 아빠의 요지였다.
수긍했다. 나는 내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부모님 말씀이 맞다. 우리 가족의 문화와 부모님의 성향을 존중했다면 나는 설득을 해야했다. 제작사 대표님께 제안을 받았지만 이 사회적 기업을 가고 싶다고. 하지만
-통보해서 다행이다
마음이 편했다. 결과적으로 내 생의 진로를 내가 잡겠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 것 같아서 개운했다.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설득할만큼의 객관적 명분이 없었고 무엇보다 나 조차 내가 왜 그러는건지 확신 할 수 없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통보하지 않았으면 아예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새로운 길을 가는 건데, 나 스스로도 확신은 가지만 불안하기 그지 없는 길인데 ‘감정적인 반대’까지 부딪쳤으면 더 무서워졌겠지.
아무튼. 다 끝났다.
김PD님에게도 다시 한 번 거절을 했고 부모님에게까지 말했다. RSA 영상을 몇 번이나 보고 있고 대표님이 보내준 자료들을 보고 있다.
드라마 업무와는 관련이 없고 이후에 내 경력에 어떤 일이 될지 모르지만 이렇게, 이 자리에 있기 위해 몇 번의 갈등과 투쟁을 하다보니 비로소 확고해진 기분이다. 땅의 자리가 생겼다. 어떤 게 수확될 지 모르지만 우선 여기서 내가 심을 수 있는 걸 심겠어.
많은 문들이 끊임없이 닫히고 열린다.
몇 개 없는 비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경쟁하는 게 아니라 아주 많은 문들이 동시에 열리고, 닫히고, 열리고 있다. 모두들 바쁘게 자기만의 루트로 문들을 지나가고 있다.
이토록 많은 문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겸허하게 만든다.
높은 천장. 정장과 캐주얼을 섞어 입은 사람들이 각자의 전화기와 서류가방을 들고 거대한 로비를 통과하며 전화를 나눈다. 각자가 자신의 업무를 보느라 만들어내는 소리가 공중으로 올라가 돔형의 천장 위에 머문다.
메아리치는 소음들. 대형 로비는 마치 거대한 지하철 환승역처럼 붐비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의 열기가 구둣발 소리와 섞여 회전문을 통과한다. 그 한가운데서 나는 막 하나의 문을 닫았고 새로 열린 문 앞에 서 있다.
이제 한치 앞도 모른다.
이전과는 달리 나는 내 마음에 있는 것을 세상에 끄집어냈다. 세상에 존재하는 루트나 트랙에 맞춰 내 마음을 조정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의 꼴이라 생각되는 것을 내가 선택한 것이다.
사실일까? 물리적인 사실로서 확보될 수 있는 가능성일까?
두근거리고 무섭다. 나의 일방적인 투사가 아닐까. 현실의 문제에서 회피하는 방어기제 아닐까. 내적인 환상을 투영한 게 아닐까. 또다시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왜곡하여 보고 만 것이 아닐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진짜로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선하다고 믿으며
-이 세상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그 주체가 나일수록 행복하다고 믿는다
문제를 문제로 보는 그 문장이 내 선택의 가장 큰 이유였다.
세계관이 부합한다.
예술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등 선호나 취향에 관련된 게 아니다. 글을 쓰고 싶고 영상을 만들고 싶고 예술을 하고 싶다는 행위의 욕망도 아니다.
말로 잘 표현을 하지 못하겠지만 내 안의 체계에 있어서 ‘드라마’보다 더 상위의 가치, 그것을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장소다.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해서 나도 아직 모르는 공유의 방식. 교류의 방식. 그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다.
-공부를 하고 싶어요. 작가가 되려면 5~10년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맞아요. 저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면 45살쯤은 되야 할 것 같은데. 요즘은 다들 빨리 자기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면접에서 가장 기억나는 말은 바로 저 문장이다.
내가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작가가 되기 위해 더 공부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삶의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고 얘기를 했을 때, 이렇게 공감가는 맥락으로 동의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라면 경험할 것이다. 무엇이든.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이게 현재 나의 맹목적인 믿음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닐수도 있지‘. 어제 비메오에서 지금까지 베네핏이 제작했던 영상의 포트폴리오를 봤는데 일반기업의 수주를 받은 영상도 상당했다. 서울시설관리공단이라든가, 공공사업홍보영상이라든가. 레퍼런스로 받은 영상들과 달리 순수하게 가치,지식 전달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문제가 없을 순 없다. 일을 시작하고 나면 지금 이 시점에선 전혀 예상못했던 문제들이 별처럼 쏟아질 것이다.
다만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게 나의 좋은 본능이니만큼, 그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능력도 내 안에 있으리라 믿는다. 이젠 문제를 아름답게 피워내고 싶다. 문제 앞에 잠재된 가능성을 말이야. 모든 문제는 바로 문제로 정의되고 말았기에 기적이니까.
게다가 나도 이제 성인이니까 문제쯤은 해결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
추상적인 단어들이 범람한다. 이런 일기는 조금 쑥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이토록 게으른 나이지만 많은 게 결정됐다. 내 마음 속 미묘한 저울이 매일매일 조금씩 추를 더해서 마침내 한 쪽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앞으로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살아갈수록 모르는 일 투성이야.
그러니까 충분히 지금 여기서 행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