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지그나레
2차
내가 어렷을적부터 일했던 엄마는 잔소리가 끊어질 날이 없었다.
매일 아침 식탁에서 밥도 다 먹기 전에 ‘차 조심해라, 학교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저녁은 꼭 챙겨 먹어라, 자기 전에 이는 꼭 닦고, 손 트지 않게 로션 꼭 바르고’ 등등
아침 그 쨍그랑 거리는 식기들 속에 엄마의 잔소리는 나의 등교를 재촉시킬 뿐이였다.
내 방에 들어와서 얼른 가방을 챙겨들고 급하게 나갈려치면 도망가듯 서두르는 나를 붙잡아 앉히고는 ‘덤벙거리지 말아라, 준비물은 잘챙겼냐, 숙제는 꼬박꼬박 잘 하고 다니는거지, 선생님 말씀 잘들어라’ 하시면서 다시 잔소리를 주입시키곤 하셨다.
참 이상하게도 식탁에서는 대꾸도 하지 않던 말들이 내 방에서는 사랑스런 엄마의 잔소리로 들리면서 나도 모르게 ‘걱정하지마, 다 잘 하고 다녀’ 도리어 엄마를 안심시키고 나오고서는
밖에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릴때도 계속되는 ‘ 차조심! 신발 왜 그렇게 신었어~’등의 말에 ‘엄만 정말 잔소리쟁이야!’ 하곤 도망 치듯 뛰어갔다.
안방 침대에 누워 이야기 할 때면 ‘저녁은 잘 챙겨 먹었냐. 학교에서 별 일은 없었냐. 이는 닦고 누웠는지, 주말에는 목욕탕에 가야겠다’ 등 침대의 푸스럭푸스럭 소리에 감기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렇게 편안하게 들릴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나에게 한 말들은 모두 같은 잔소리 였는데 어느공간에서 듣느냐에 따라서 내가 달리 느꼈던듯 하다. 물론 엄마의 목소리도 말투도 달랐던것 같다.
내가 공간적 느낌을 느끼게 된게 이 때부터 인듯 하다. 공간에 따라 같은 말도 상황도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 주방 : 기존 원래 아파트 벽에 딱딱하게 붙어있던 식탁/ 해뜨기 전 불을 켜지 않은 회색빛깔 주방/ 챙그랑 창그랑 식기구들/ 맨살에 닿으면 움찔움찔 차가운 식탁의자 등]
-이 모든것들이 엄마의 목소리를 더 차갑고 딱딱하게 반사 시켰고 그 배경음들은 식기구들의 쨍그랑소리, 기름 튀겨지는 소리에 눈앞엔 잿빛 풍경, 차가운 쇠 다리 의자위에 긴장하고 앉은 딸과 정신없이 음식도 해야하고 뭔가 컨디션이 안좋아 보이는 딸도 신경쓰이는 엄마가 그 공간에 있었다.
[ 내방 : 나만의 공간 / 늘 내 편인것 같은 인형 / 엄마가 고이 꿰매준 폭신하고 기분좋은 냄새의 이불 / 따뜻한 방바닥 / 다짐들이 적힌 벽에 메모들 / 엄마가 곱게 접어둔 빨래 다 된 옷들 등]
-이러한 것들이 모여 나만의 편안한 공간에서 내가 늘 느끼고 하던 생각들이 자연스레 습관처럼 뇌리에 스치고, 엄마의 손 때와 정성이 묻어나는 요소들의 널림속에 나의 진정한 속마음이 표출되면서 엄마의 잔소리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효녀가 되고픈 딸과 온통 신경써야하고 걱정거리들로만 가득찬 딸 방에 엄마가 앉아 있던 것이다.
[ 안방 : 부드러운 발판/ 따뜻한 색감의 가구/ 주광색 조명/ 폭신한 이불/ 기분좋은 향기의 배게 등]
-차분한 색감의 장롱이 한 쪽 벽면을 꽉 채우면서 방의 분위기를 모두 사로잡았고 주위에 안정감 있게 자리잡은 나무 서랍들, 아주 크고 부드러운 침대와 이불, 외부와 확연히 차단되었고 안정감과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완벽한 보호안에 있는 듯한 공간, 마냥 어리광만 부리는 딸과 보호의 모성애로 가득찬 엄마가 있던 것이다.
그러한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공간적 분위기가 같은 이야기들을 다르게 전달해주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탁보도 근사하게 한번 둘러보고, 나무젓가락을 사용하게 되고, 코르크 컵받침도 두고, 냄비 하나를 사도 기능뿐 아니라 색깔과 모양을 따지게 되고, 식탁등도 바꾸다 보니 더이상 주방에는 딱딱하고 시끄러운 이야기는 없었고 맛있고 싱그러우며 따뜻한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난 조금씩 공간의 특이성을 찾게 되었고 그에 맞춰서 행동을 더 조심히, 편안히, 상대방을 더 이해하거나 혹은 상황을 더 이해하거나 등 공간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이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 용도에, 필요성에, 분위기에 적합한 혹은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 또한 깨닫기 시작했다.
서로 이어지는 혹은 차단시키는 아주 똑똑한 구조, 분위기를 사로잡는 색감, 피부로 느낄수게 채워지는 다양한 재질과 기능적 요소들, 공간의 이해를 완성시키는 배치, 이 모든것들은 연결시켜주는 조명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더할나위 없는 자연요소들까지.. 공간마다 나는 집중하고 느끼고 싶어했다.
성인이 되어 잠깐 인테리어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한 의상디자이너의 집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파스텔적인 색감으로 집을 꾸미고 싶어했고 우리는 그곳에 프로방스한 느낌을 접목시키기로 했다. 그 결과…
심플한 공간에는 무엇인가 필요한듯 보였지만 아무것도 넣을 수 없었고,
또 다른 공간은 무엇인가 넘치는듯 보였지만 아무것도 뺄 수 없었다.
무엇인가 분명 잘못 된것 같았지만 결국 그 답을 찾기 못하고 아쉽게 마무리 지어야 했다. 누구나 잡지책에서 본 인테리어를 그럴듯하게 따라할 수는 있었지만, 실생활에 접한 실제 공간에 사진처럼 해놓고 감각적인 느낌까지 강조하기엔 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예술을 따라하고픈 욕심만 앞섰던 것이다.
죽은듯한 용그림에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눈 한점을 찍어 넣듯
나에게 그 무언가가 절실히,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많이 두어도 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아무것도 두지 않아도 모자르거나 부족함이 없는
비로소 사람이 발을 딱 들여놓았을 때 완벽히 완성되는
그런 디자인을 하고 싶다.
빈공간에도 무엇인가 분명히 자리잡고 있는 그런 디자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