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개학식 후 첫 자습시간,
밀리고 쌓인 피로로 몇몇이 눈을 붙이고,
또 다수는 열심을 태우며 각자의 하루를 쌓아가고 있다.
최근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존감과, 모든 것에 대한 회의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들이 많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끈질긴 우울과 자기비난은 아침햇살을 너무나도 밉게 만들었다.
꽤나 재밌고 밝은 수험생활이다, 싶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공상만 하고 있어서 그랬나보다.
점점 손으로, 눈으로 체감하는 현실에서의 나의 입지와 정체성을 더 깊이 물을수록, 모든 것이 허탈해졌다.
생각이 깊은 것은, 그저 공상이 많은 것 같고.
밝은 성격은, 철이 덜 들어 그러나 싶고.
덜렁거리는 것은, 내가 멍청해서 그런 것 같고.
어떤 방법으로든 어떤 계기로든 나를 비난하고 깔아뭉개며 그런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도저히 이 우울을 감당할 수 없어,
엎드려 절 받기로 나의 최측근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다.
어리광이었다.
엄마에게 말도 안 되는 자책만 퍼붓고 말이 안 통한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실 말이 안 통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더 더욱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말만 하니 짜증이 났던 거지.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고맙게도 자신의 짧은 인생 중 이렇게 좋은 사람 못 만났다며 걱정 섞인 목소리로 나를 달래주었다.
옆구리 찔러 받은 위로로, 나를 애써 일으켜 세웠다.
참 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짓이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또 피곤과 우울이 몰려오며 팔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자습시간, 아무것도 습할수 없는 상태에서 가방에 앉아있던 '입 속의 검은 잎’을 꺼냈다.
표지를 넘기고 부드러운 노랑이 감도는 첫장에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글씨가 보였다. 이거라도 읽자며 꾸역꾸역 괴로움을 삼키며 시로써 날 달래고 있었다. 얼마 안 읽고, 책을 뒤집어놨다.
그 때 보이는 기형도의 시작(時作)메모.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단다.
당신께서 하고 싶었던 말들이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단다. 적어도 당신께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당신께서 그때 알았다고 하신다.
그때는 눈이 내렸는데,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단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알고,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믿는다고 하신다.
나도 그랬나보다.
모든 글들이 졸작이지만, 나름 몇 권의 수첩을 써가면서 풀어낸 내 글들이 내 일상의 활력소들이었나보다. 오지선다 문제를 빨리 풀어내는 게 목표라고 생각해서 글 따위 묻어놓아야지 했던 게 정작 문제든 우울이든 아무것도 풀 수 없이 되어버렸다.
한국 이용자가 많지 않은 MEDIUM에 이렇게 글을 토해놓고 가는 것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같이 대중적인, 그래서 나의 지인들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장소에 나의 진심을 담아놓기란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서 그랬다.
우리는 감성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랬다. 감성이라는 것을 지나친 허세와 자기애로 치부해 버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감성의 충만이 기초체력으로 다져져야, 이성이든 감성이든 내가 뿜어내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뿜어낼 수 있더라.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이렇게 두서없는 글이라도 마구 마구 쳐놓고 가면 어딘가 개운하다.
사람들이,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글과 감성을 조금만 더 일상화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가쉽으로만 가득 차 있는 타임라인보다는, 내 가슴에 어떤 걱정들과 또 어떤 희망들이 꾸물거리고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