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리콘밸리 사내정치 스토리

얼마전에 아마존 개발자면접에 관한 글을 올린적이 있는데 몇몇 분들께서 내 아이가 태어난 후 바로 이틀뒤에 다시 회사를 나간 것에 ‘그렇게까지 일을 하다니 대단하다’ 는 피드백이 있었다. 그 당시 업무강도가 상당히 높기는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수요일에 출산이었으니 목, 금, 그리고 주말까지 쉬고 월요일에 일을 나가는 것이 상식적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중, 장기적으로 나의 생산성에 더 도움이 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업무량만큼 중요한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은 사내정치였다. 오늘은 여기에 관한 내 경험을 한번 얘기해 본다.

전에 글에도 밝혔지만 내가 속해 있던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알고리즘팀(이하 미국팀)이 6명에서 4명으로 줄어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팀의 숫자였고 해외에 약 2배의 인원으로 비슷한 일을 하는 팀이 있었다(이하 해외팀). 그리고 미국팀, 해외팀 둘다 같은부서 안에 속해있는 구조였다. 미국팀이 처음 6명이었을때 팀을 이끌고 있던 leader 이자 내 상사가 어느날 팀원들을 모두 소집하더니 자기는 팀을 떠나게 됐다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몇가지 설명을 하더라. 자세히 말하기는 곤란하고 해외팀이 그동안 우리 몰래 독자적으로 다른 일을 하다가 어느날 부서에 전체공개를 하였는데 우리부서를 맡고 있던 director 가 그 해외팀의 손을 들어주었고 결국 그 전부터 쌓였있던 미국팀과 그 director 의 갈등이 터지면서 우리팀의 leader 는 다른부서로 강제이동이 되었던 것. 그후 나와 개인적으로 상당히 친했던 팀동료가 tech-lead 를 맡게 되었는데 골수엔지니어였던 그 친구는 해외팀에서 퍼붓는 정치적 bullying 에 좌절하면서 불과 몇주만에 아예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팀이 불과 몇주만에 6명에서 4명으로 줄어들면서 나는 어느날 급작스럽게 tech-lead 가 되어 팀을 이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팀 매니저가 팀멤버들에게 프로젝트 기간동안 모든 보고(report) 는 나에게 직접 하라는 말을 하면서 결국 engineering manager 의 역할도 같이 떠맡게 되었다.

처음 내가 팀을 맡았을때는 양팀간의 관계를 적대적 관계에서 우호적이고 시너지를 내는 것으로 바꾸어 보려고 했다. 그래서 해외팀의 리더와 1:1 미팅을 하여 “We come in peace.” 의 메세지를 전했고 그분 역시 나의 그런 의도에 동의하는듯 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그가 부서의 director 에게 전혀 납득할수 없는 우리 미국팀의 문제를 back-channel 로 얘기하면서 이들은 정치싸움을 끝낼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의 의도는 미국팀의 멤버들을 모두 부서에서 몰아내고 자신의 팀을 해외에서 더 확장시키려고 하는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아마 이때였던것 같다. 가뜩이나 팀내에서 개인적으로 친했던 동료 2명을 잃어서 기분이 안좋았던 나에게 이 사건은 좋게 말하면 정의심, 나쁘게 말하면 복수심을 가져다 주었고 ‘Ok. I will play your game.’ — 똑같이 정치로 맞서서 반드시 이길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는 일단 해외팀이 부서내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었고 인력도 훨씬 많아서 겉보기에는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회사에서 정치싸움에 이기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건 업무능력과 실력이다. 이건 너무 당연한거고 어느정도의 업무능력을 갖추면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사내인맥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큰 무기였다 — 우리는 Local 그들은 Remote. 우리 부서는 미국에 있기 때문에 나는 문제가 생겼을때 바로 달려가 얼굴보고 대화할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내 주위에 앉아 있었다.

전에는 우리팀을 이끌던 분들이 팀내 직원들의 화합에만 신경쓰느라 (i.e. manage-down), 부서의 director 나 팀외 직원들과의 manage-up 에 신경을 쓰지 못한것이 부족한 부분이었다. 점심식사도 늘 우리끼리만 하였다. 나는 일단 팀내에 양해를 구하고 그날부터 아침식사, 점심식사, 커피, 1:1 등을 모두 동원해 일단 부서내의 사람들과 매일 3–4 명씩 만나면서 친분쌓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1차적으로 내편으로 만들사람들 2명을 선정한다.

  1. 나의 상사: 이분은 우리팀과 해외팀을 같이 맡고 있었는데 해외팀에게 훨씬 더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분을 내편으로 만들면 이 분의 상사인 부서의 director 의 마음도 어느정도 바꿀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당시 부서가 가지고 있던 우리팀에 대한 perspective 도 같이 바꿀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참고할점 하나. 우리 부서의 director 가 해외팀에게 더 많은 신뢰가 있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해외팀을 이 director 가 직접 뽑았기 때문이었다. 심리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똑같은 능력의 직원 2명이 있으면 신기하게도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도) 자기가 직접 뽑은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하는 본능이 있다.
  2. Product Manager (PM):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PM 들은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다. 제품의 비젼도 뛰어나고 기획도 훌륭하게 해내는 분들이시다. 하지만 많은 PM 들이 정보전달자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PM 들 조차도 대부분 사내에서 영향력들이 뛰어나다. 그 이유가 바로 PM 들이 information flow 를 컨트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생각보다 무섭다. PM 까지 갈필요도 없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간다고 해도 그 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은 대부분 그 여행을 arrange 하고 모든 예약과 administration 을 해서 정보전달의 key 를 쥐고 있는 사람이다. 이래서 많은 PM 들이 영향력을 높히기 위해 팀을 쪼개서 미팅도 많이 잡고 여러 node 의 information flow 를 컨트롤 하려고 한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우리팀의 PM 을 내편으로 만들면 information 을 이용해 프로젝트의 task 를 만들고 분배하는 부분에 영향력을 끼쳐 우리팀으로 중대업무를 모두 돌릴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여하튼 위 두사람을 중심으로 부서의 많은 사람들과 1:1 미팅을 가지면서 꼭 해야하는 것이 이들에 대한 칭찬 (flattery). 많은 사람들이 만남에서 상대방에게 칭찬을 잘 못하는 큰 이유중의 하나가 내가 저 사람에게 칭찬을 하면 그게 소위 ‘아부' 로 보여질수가 있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주 오버하지 않는 경우 빼고는 상대방은 칭찬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내가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었을때 1. 저게 아부인가? 기분 나쁘네… 라고 생각할수도 있고 2. 내가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구나. 기분 좋다. 라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2번을 택한다. 굳이 1번을 택해서 자신이 괴로워지는 것은 counter-intuitive 하다. 칭찬만큼 그 사람의 마음을 사는데 괜찮은 ROI 가 없다. 칭찬을 할때도 단순히 ‘You are so good.’ 이런게 아니라 상대방의 업무에 공감을 하고 조언을 얻는것이 중요하다. 가령 상사와 얘기할때는 ‘너의 위치에 있으면 정말 스트레스도 엄청 받고 답이 똑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좋은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냐?” 이런식으로 조언을 얻는 것처럼 해서 은연중에 상대방의 고충을 공감하고 띄워주는것이 중요하다.

상사와의 관계에서는 일단 2가지의 목표를 설정했다. 첫째는 지금까지 우리가 진행했던 업무방식은 미국팀, 해외팀 모두 부족한 점들이 많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이런 인식을 심어주면 해외팀 포함 우리팀에서 먼저 나간 내 전동료 2명의 업무능력까지 폄하하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써는 그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회사, 다른팀들과의 비교를 통해 수치적으로 지금 우리 제품의 개발에 필요한 리소스와, 업무방식등에 변화가 필요한 것을 일깨워 주기 시작하였다. 몇주지만 상사와 매일 얘기하고 밥을 먹고 하면서 쌓인 친분이 이 대화를 훨씬 쉽게 풀어주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를 주려고 할때 결정권자와 평소에 여기에 관해 자주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 변화를 적용하려고 할때 상대방이 모든 context 와 과정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둘째는 해외팀 정치행각의 근본을 없애는 것이었다. 해외팀에서 주요적으로 쓰는 정치적 행위중 하나는 우리 미국팀의 개발에 버그나 이슈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QA 부서가 그 해외팀에 있는것을 이용해서 미국팀의 bug (문제) 들만 공개하고 자기팀의 문제들은 자기네들끼리 구두로만 보고 받고 해결하는 식이었다. 나는 미국팀의 QA 는 우리가 직접 할것이라고 한후 지금까지 그들의 가장 노골정인 정치행위였던 ‘QA 에서 노출되는 버그의 심각성 제기와 미국팀의 평가절하’ 를 단순한 어린아이들의 투덜대기로 치부해 버리는 것에 공을 기울였다. QA 를 넘겨받은 우리팀은 중간중간 발견되는 이슈들은 자체적으로 해결, 결국 그들의 ‘문제재기' 는 해결책 없는 단순한 투덜거림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인식을 조금씩 심어주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실마리를 푸는 과정에서 첫번째 행운이 찾아온다. 그동안 내편을 만들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던 PM 과 어느날 점심을 같이 먹는데 그가 몇주 뒤에 출산휴가를 받아서 수주간 회사를 안나올것이라고 하더라. 부서내의 누군가에게 PM 일을 넘겨주려고 생각중이라고 하였다. 순간 마음속으로 EUREKA 를 외쳤다. 지금까지 해외팀 리더는 이 PM 과 거의 매일 얘기를 나누며 개발의 핵심업무들은 모두 자기네들이 우리가 손도 쓰기전에 가져가 버리고는 하였다. 나는 PM과 그날 바로 장시간 미팅을 잡고 회의실에서 전투적으로 그동안 나의 경력, 경험을 얘기하고 열정적으로 나를 홍보하며 해외팀과 우리팀이 개발하고 있는 제품의 PM 권한을 나에게 달라고 강력히 피치를 하였다. 그후로 3–4 일간 매일 그와 얘기하면서 결국 그의 동의와 함께 위에서 말했지만 영향력의 핵심인 information flow 를 담당하고 있는 PM 권한의 상당수를 내가 가져오게 된다. 나는 그 후에 PM 의 transition 기간동안 PM 의 고유권한을 이용해 개발의 핵심 task 를 모두 우리팀으로 돌리고 그동안 해외팀과 공유해 왔던 개발로드맵을 결정하는 analytics 등 모든 중요 서비스들의 administration 권한을 나 한사람의 권한으로 돌려버렸다. 어느날 갑자기 해외팀에서 특정서비스 로그인이 안되는 이메일이 왔지만 이미 이때는 내가 상사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서비스의 administration 권한공유가 심각한 security & privacy 문제를 만들수 있고 나중에 lawsuit 으로까지 이어질수 있는 경각심을 일으킨 다음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까지 해외팀은 이틀에 한번꼴로 전체부서회의를 통해서 늘 자신들의 공을 알리는데 열심이었다. 여기에 관해 너무 잦은 회의로 인한 동료들의 불만이 있는 상태였다. 나는 이 회의도 비효율성을 이유로 1주일에 한번으로 줄이고 시간도 예매하게 잡아 해외팀과 미국부서와의 접촉빈도를 최대한 줄였다.

이렇게 정치싸움의 판도를 서서히 우리쪽으로 바꾸고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전체부서가 그동안 해외팀에게 가지고 있던 많은 신뢰가 얼마나 변했는지 확신할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날 전체전화회의에서 해외팀이 평소와 같이 제품의 버그에 대해 발언을 하였는데 상사가 전화를 mute 로 바꾸더니 “왜 이 해외팀은 맨날 이렇게 불평만 늘어놓는거냐?” 라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고 주위사람들도 키득대며 동의를 하는듯 했다. 그동안 그렇게 부단히 노력했던 해외팀에 대한 정치행위 무력화가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이때 어느정도 승리를 확신했다. 이제 자세를 defense 에서 offense 로 바꾸기로 결심한 나는 그 해외팀이 부서전체 이메일로 종종 보내던 ‘자기들의 기술력이 더 우위다’ 라는 뉘앙스의 정치적 이메일에 기존에 우리 미국팀의 입지가 약했을때 쓰던 ‘disappointed’, ‘hard to believe’ 같은 약한 어법에서 ‘baseless claim’, ‘not a shred of truth in the story’, ‘doesn’t even deserve a response’ 라는 어휘를 써가며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체미팅에서 적절히 anger 를 보이면서 부서의 멤버들에게 소위 ‘힘자랑' 을 자주하기 시작한다. 어느정도 사내에서 입지가 있으면 미팅에서 anger 를 보이는것만큼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없다. 그냥 무조건 화내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제스처를 섞어가며 의견대립중 단호하고 어느정도 성난 목소리로 발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이 이 프로젝트의 중심이구나. 그리고 건들면 안되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의견이 대립될때 조용한 말의 ‘I think we can try it another way’ 와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단호하고 큰 목소리로 ‘THIS IS JUST WRONG! YOU SHOULD DO IT THE OTHER WAY!” 라며 하는 말의 authority 는 전혀 다르다. 똑같은 능력의 2명이라도 후자의 발언을 한 사람에게 훨씬 더 큰 영향력이 있다고 대부분 사람들은 생각한다. 물론 평소에는 침착한 모습을 늘 보여서 툭하면 화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미지가 있다는 전제하에서다. 그러다 어느 수요일 아침, 출산으로 인한 아내의 진통으로 우리는 병원을 가게 되었다. 이부분에 관해서는 혹시 내가 출산으로 인해 회사에서 빠지면 그 기간동안 해외팀에서 알고 허튼수작을 부릴까봐 사내에서도 출산에 대해서는 함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목요일에 개발과정에서의 중대한 이슈가 발생했고 금요일에 비상회의가 소집이 되었다. 워낙에 중요한 사항이었고 이미 해외팀에서 분명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것이라고 판단한 나는 금요일 오후에 소집된 미팅을 위해 불과 아내의 출산 이틀후에 회사로 출근하였다. 그리고 미팅전 부서의 핵심인원들과 1:1 로 만나며 이 이슈의 전말에 대해 우리팀에게 유리한 쪽으로 설명을 하고 2시간 가량 진행된 해외팀도 참여하는 전체전화회의에서 모든 발언의 주도권을 가지고 미팅을 진행하였다.

사내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persistence (끈질김). 사내정치는 당하는쪽 뿐만이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상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요구한다. 상대방의 정치행동에 쓰러지거나 도망치지 않고 계속 버티면 많은 경우 상대방은 결국 지치게 된다. 이제 해외팀의 리더도 서서히 참을성을 잃어가는듯 했다. 어느날은 이 해외팀의 리더가 나의 간단한 코드제안에 “It makes no sense to me.” 라며 이유없는 반대를 하더니 이날은 술까지 마셨는지 오타까지 범해가며 나에게 “Are you nuts? (너 똘아이냐?)” 라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 해외팀의 리더도 나름 정치의 고수라서 기록이 남는 회사이메일에 이런 실수는 좀처럼 하지 않았는데 내가 오기 훨씬 전부터 해온 많은 사람들과의 정치갈등에 피로함을 느끼기 시작한듯 하다.

정치갈등 마지막 단계에서 나와 해외팀 리더가 자주 주고받기 시작하는 감정적 소통의 이메일

이러던 중 두번째 큰 행운이 찾아온다. 부서를 이끌고 있던 그 director 가 다른부서로 옮기게 된것. 이제 이 해외팀이 믿고 의지하던 가장 큰 버팀목이 사라져 버린것이다. 안그래도 언제부턴가 그 director 가 프로젝트의 성과에 대해 시큰둥 하였는데 그 이유가 여기 있었나보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관계개선에 많은 공을 들였던 나의 상사가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갔다. 그 와중 개발초기에 출시일을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모든 개발이 끝나고 제품은 출시를 하였다. 제품은 초반에 기대이상의 기술력과 품질을 보였고 이 제품의 소프트웨어개발을 이끌었던 우리 미국팀은 나름 부서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이제 완전히 승리를 확신한다. 그리고 이 정치싸움의 마지막 단계로 그 해외팀을 팀이나 부서에서 몰아내버릴 기회를 찾기 시작한다. 일단 나는 상사와 담판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내가 요청(혹은 요구) 할 내용은 더이상 해외팀과 공동개발을 하는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으니 앞으로의 제품개발은 미국팀이 인원을 더 보충하여 단독으로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리고 해외팀은 새로운 제품개발업무나 타부서로 이동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를 할생각 이었다. 이런 네고를 위해 미팅을 들어갈때 나는 꼭 지키려고 하는 법칙이 있다. 사업을 할때 한때 딜을 따는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은적이 있었는데 그때 배운 BATNA —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네고에 들어가기 전 그 딜이 깨졌을때도 쓸수 있는 Plan B 를 꼭 준비하고 가야하는 것. 이래야 네고에서 유리한 위치를 얻게 된다. 이를 위해 나는 바로 사내에 있는 전혀 다른 부서와 면접을 가지고 바로 다음날 그 부서에서 오퍼를 받는다. 이제 나는 상사와의 담판에서 쓸수 있는 카드가 있고 딜이 깨져도 갈수 있는 곳이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을 모색하던 중 회사에서 쪼개져있던 신규사업들의 통합을 결정하였고 우리부서는 다른부서와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부서에 있던 매니저중 한명이 나의 상사로 들어오게 되었고 나와 1:1 미팅을 몇번 가지게 된다. 이 미팅들에서 그 새로운 상사에게 제품개발과 미국팀, 해외팀에 대해서 설명을 하였다. 이 새로운 상사는 두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완전히 새로운 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다짜고짜 해외팀을 욕하면 오히려 나에게 화를 불러오기가 쉽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대화의 주제를 ‘미국팀과 해외팀 양쪽이 가지고 있는 강점들이 상당히 다른데 이미 제품을 출시한 시점에서 지금부터 우리부서에서 필요한 스킬셋은 미국팀이 많이 가지고 있다’ 라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갔다. 미국팀의 강점은 (제품출시 이후에 필요한) 체계적인 개발, 사용자데이터 분석, 고개들의 피드백을 바로 적용하는 에자일 개발능력등이라고 하였고 해외팀의 강점은 초기개발에 필요한 빠른 프로토타입핑 능력, 메뉴얼 QA, 저렴한 지역인력고용등이라고 하였다. 이 새로운 상사는 여기에 대해 나의 전상사와 여러번 미팅을 하더니 회사 임원의 지시로 새로 통합된 부서의 인원을 감축하는 결정을 한다. 결과는 우리팀 4명중 나와 또다른 한명을 제외한 2명이 layoff. 그리고 라이벌이었던 그 해외팀은 전원 layoff 당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한다. 그리고 우리 미국팀은 통합부서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는 다른팀과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이때 이미 지긋지긋한 정치갈등과 초긴장속에서의 제품개발로 나의 몸과 마음은 많이 지쳐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끌던 팀 인력의 반이 사라진 상태에서 그 통합된 부서에 더 이상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네고의 카드로 쓰려고 했던 다른부서의 오퍼를 받아들이고 나는 그 부서로 옮기게 되면서 소모적이고 적대적이었던 이 정치갈등은 그렇게 끝이났다.

회사에 직원이 2명만 생기면 나타나는 것이 사내정치다. 사내정치는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와 본능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회사와 사내정치는 공생하는 관계이다. 공평하고 건전한 경쟁관계가 조성되고 대부분이 납득할수 있는 결과를 낳는 ‘좋은 사내정치’ 는 충분히 받아들일수 있다. 하지만 위처럼 적대적이고 소모적인 사내정치는 맞서지 않으면 그 끝은 나쁜정치를 한쪽이 이기는 경우가 내 경험상으로는 상당히 많았다. 여기에 있어서는 직원복지, 만족도 모두 높다는 실리콘밸리의 회사들도 내 경험상으로는 예외가 아니었다.

P.S.) 이 글에 나오는 해당회사에 대한 추측은 자제해주기 바랍니다. 저는 주위에서 알고 있는 것 이외에 4년동안 사업을 하며 수많은 클라이언트 회사들로 출근하며 contractor/consultant 로 일을 하였고 이 글에 나온 해당회사는 그 수많은 회사들중 하나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밝히지 않기위해 몇몇 시간적 context 를 조작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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