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유치원이 아닙니다.

Kurt Lee
11 min readJun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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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은 이겁니다:

  1. 스타트업도 회사입니다. 회사는 성인들이 모여서 돈을 받고 자기 일을 하고, 이를 통해 공통의 목표를 이루는 곳입니다.
  2. 회사에서 직업인으로 일하는 성인은 자기 일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라면 부정적인 평가라도 얼마든지 들을수 있어야 합니다.
  3. 스타트업에서 일하는게 행복하다면 그건 스트레스를 안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열심히 할수 있어서" 여야 합니다.

저랑 같이 일해봤던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저는 그냥 할말을 하는 편입니다.
다른 사람이 일을 잘하면 잘한거고, 못하면 못한거고,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합니다.
별다른 뜻이 있어서 택한 언어 습관은 아니고, 저는 그게 언제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단어와 문장을 굳이 구성하는 이유는 “제가 생각한 걸 전달하기 위해서” 이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위해서" 가 아니니까요.

물론 제가 좀 이런부분에서 유난한 것도 있겠지만
이전 회사에서 이거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을 정말 많이 했었습니다.
예를들어 저는 슬랙에서 모든 문장마다 “안녕하세요~” 하는게 너무 싫었습니다. 이를테면

  • “어제 주신 디자인에 이게 아예 빠져 있는데요" 라고 할걸
  • “안녕하세요 ~~님!😊점심 맛있게 드셨나요? 다름이 아니라 지금 진행중인 일 관련해서 말씀드릴게요 있어서요! 🙏
    어제 주신 디자인을 확인해봤더니 이부분에 대한 고려가 미스커뮤니케이션 된것 같아요.”

라고 하는 식입니다. 당연히 저랑 함께 일하던 개발팀이야 이런식으로 소통을 하는 경우가 없었지만….

제가 마케팅팀 리더를 임시로 하던 시절에, 가장 먼저 했던게 팀원들이 슬랙에 저런식으로 말을 못하게 하는 것 이였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대략 “매일매일 안녕한지 궁금하지 않으니 저런걸로 글자낭비 하지말고 일을 하자" 라고 했었죠.

이런 방식의 언어 습관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상대방이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단어는 전부 의미가 더 모호한 단어로 교체
    “어제 주신거에 A 빠졌습니다” 라고 할걸 “어제 주신거에 A에 대한 고려가 미스커뮤니케이션 된건지 빠졌습니다 확인해주세요" 라고 하는 식이죠. 하도 음역되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지멋대로 써버려서, 이제는 실제 의미가 뭔지 자체가 불분명한 영어 단어가 많이 쓰입니다.
    대표적으로 “미스커뮤니케이션" / “ASAP” / “팔로우업” / “그릿” / “임팩트" 등입니다.
  2. 서로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면서 트집 잡히기 싫어서 넣는 무의미한 관용구
    점심 맛있게 드셨나요~” / “안녕하세요~” 같이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으며, 실제로 궁금하지도 않고,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괜히 넣는 식입니다.
  3. 무의미하거나 과잉된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
    🙏 (당연히 상대방이 해줘야 하는 일을 요청 하는데)
    😊 (무표정하게 키보드 치고 있으면서)

물론 이런 표현 자체를 아예 하지 말자는게 아닙니다. 예를들어

  1. 실제로 친하거나,
  2. 정말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는거라 근황이 정말로 궁금하다거나,
  3. 회사 외부 사람이라 회사를 대표해서 말하는거니 최소한의 격식과 예의는 반드시 차려야한다거나

하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하겠죠. 예를들어 저도 팀원이 해외여행 갔다오면 어땠냐고 물어보고 합니다; 진짜로 궁금하거든요. 물론 이 경우에도

  1. 저런 이모티콘 남발은 도대체 초등학생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이해가 안가고,
  2. 그런 사적인 이야기는 커피마시면서 직접 하지 슬랙에서 난장판을 치지 않지만,

“나는 XX 라고 생각합니다" 류의 문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방식의 언어 습관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거요
내가 말하는 건데 당연히 내 생각이고 내 의견이죠. 다른 사람 생각이겠습니까?;

인신공격 !== 작업평가

물론 이런 방식에 대해서 비판적인 피드백도 여러번 받았습니다.
“커트는 맞는말을 해도 너무 공격적으로 한다" 던가,
“그렇게 직설적으로 할말만 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 감정이 상해서 일하기 싫다” 던가,

물론 맞는 지점도 있을겁니다. 예를들어 “욕은 하지 말자” 같은건 변명의 여지가 없죠. 욕을 해야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것도 아니고, 욕은 사회적 통념에서 인신공격의 의미를 포함하니까요.

제가 절대적으로 인정할수 없고, 앞으로도 인정할 생각이 없는 부분은
사람들이 순전히 둘다 “내가 듣기 싫은 말” 이라는 이유로
<개인에 대한 인신 공격><개인이 자기 전문분야에서 한 작업물에 대한 평가> 를 동일시 한다는 겁니다.

한때 트위터를 휩쓸던 “독성 말투” 나 “스타트업 방언”도 비슷한 관점에서 한국에서는 그 원래의 의미 (비합리적 이거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작업물이 아니라 개인의 인격을 공격하는) 를 상실해버리고 그냥 “공격적으로 느낄수 있는 말은 다 잘못된거니 하지말자" 식으로 퉁쳐저 버리더군요.

언제부터 인가 한국에서는 스타트업이란 “직원들이 언제나 행복하고, 부정적인 말을 아무도 듣지 않아야 하며, 회사 대표와 팀장, 팀원들과 개인적으로도 친할수 있어야 하는" 곳이라는 이상한 이미지가 발명된것 같습니다. 마치 유치원 해바라기반 처럼 말이죠.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우선 가장먼저, 한국에서는 대기업의 대척점이 스타트업이고,
오래된 대기업의 전형적 이미지는: 꼰대같고 아랫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고, 직원들의 행복을 신경쓰지 않으며, 회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순전히 직업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니, 순전히 그 이미지를 반대로 뒤집은게 아닐까 싶은데요.

많은 스타트업들의 HR팀들이 인재 유치를 위해 각자 자기 회사를 이런 “부정적인 의사표현" 이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의사소통" 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천국인것 처럼 — 그러니까 마치 월급을 주는 유치원 마냥 — 광고하는데 열을 올린것도 한몫 했을꺼고요.

문제는 스타트업이건 대기업이건, 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유치원에서는 달리기를 해서 10명중에 10등을 해도
너도 열심히 뛰었다고 칭찬을 듣지만 — 그리고 그게 당연하지만,

회사에서 개발자가 디자인을 대충보고 디자인에 분명히 있는걸 개발 안하고 배포를 하면 “이거 분명히 디자인에 있는데, 개발이 안되어있네요" 라는 핀잔을 들어야 하는 겁니다. 회사니까요;

”회사" 중에서도, 스타트업은 특히나 당연히 그렇습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에 비해 회사 가치나 매출 대비 개개인의 책임이 훨씬 크고, 회사가 급속도로 성장하니 회사 구성원 개개인도 급속도로 성장을 해야만 합니다. 구성원이 성장하지 않는데 회사가 성장할리는 없는거죠.

그러니 뭔가가 잘못되면, 잘못 됬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인정하면 주홍글씨 없이 빨리 고칠 기회를 주고 배워서 고치도록 해야합니다. 계속 못고친다면 해당 분야에서 회사가 필요로 하는 능력이 없는거니, 서로 인정하고 빨리 고용관계를 정리해야하고요.

“감정이 상할까봐" 돌려돌려돌려 말하고, 계속 기회를 주는 여유가 있는 회사들이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좀 부럽네요. 생존을 걱정하는 스타트업 단계는 지났나 봅니다.

역으로, 개인적으로 죽이 잘맞고 정말 친한 사람이라고 한들 — 그 사람이 일을 잘했다/못했다 평가가 그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나요?;

물론 한국의 오래된 대기업식 기업문화, 문제 많습니다 — 성차별,언어폭력,합리성 결여 같은거 말이죠. 하지만 다시, 언어폭력의 정의는 “내가 듣기 싫은 말" 이 아닙니다.

만사에 스티브잡스 끌어들이는것 같아서 좀 질리긴 하는데,

“When you get really good people they know they’re really good and you don’t have to baby people’s egos so much….The most important thing you can do for somebody who’s really good and is really being counted on is to point out when their work isn’t good enough.” — steve jobs

좋은 (자기 분야에서 잘 하는) 사람들일 수 록, 그 사람들의 자존감/자아를 어린아이 다루듯이 관리해줄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리더로서) 해줄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의 결과물이 좋지 않을때, 좋지 않다고 지적해주는 것이다.

어른을 어른 취급 해주지 않는 사회

더 본질적으로, 저는 한국사회 (사실 미국에서도 비슷한 걸 많이 봤지만…) 가 어련히 자기 전문 분야가 있는 직업인인 성인, 어른들을 제대로 어른 취급 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들의 소중한 자아는 절대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안된다!” 같은거죠.

자존감이나 자아 정체성, 중요합니다. 물질적으로 성공하고서도 이런 문제로 무너지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가지고, 자기가 하는일로 돈을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직업으로서 하는 일이 내 자아 정체성의 일부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게 정체성이여야 하나요?;

그리고 내가 하는 일과 내 일로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내 정체성의 일부라면, 그게 잘못됬을때 누구보다 먼저 신경쓰고 고쳐야하는건 자기 자신이여야 하지 않나요?;

저는 제가 만든 제품의 버그를 고객보다 팀원들이 먼저 찾을때 마다 너무 기쁩니다.
팀원들에게 고맙다는 기분보다, 내 스스로에게 다행이라는 기분이 먼저 들 정도에요.
그게 고객들한테 그냥 나갔을걸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거든요. 저는 벌써 10년 가까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걸로 투자자나 고객들에게 돈을 받아 사는 직업인이니까요.

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인으로서 성인이 된다는건 최소한 그정도의 의미는 내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니까요.

회사에서 어떤 의미로든 직장인으로 일하는 성인들에게 지양되어야 하는 부정적인 의사소통이 있다면, “합리성이 결여된 평가" / “전문성이 결여된 평가" / “업무와 무관한 개인의 지향이나 인격에 대한 평가" 등 이겠죠.

언어의 의미상실

언어 트집잡기로 시작했으니, 언어에 대해서 몇마디 더 하고 결론으로 넘어가고 싶습니다.

다 큰 어른들의 자존감 지켜주기 만큼이나, 무식하고 잘못된 단어 사용도 이 문제에 한 몫 한다고 봅니다.

언어의 사용이라는게, “의미 전달을 하는것" 이 아니라
“의미를 전달한것 같은 느낌을 주는것" 가 목적이 되버리는거죠;,

특히 기의를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래어를 가져다가 모호하게 쓰는 경우가 가장 웃기다고 생각합니다. 외래어라고 해봤자 뭐 정말 아무도 모르는 언어 거나, 의미를 그대로 반영하는 번역어가 존재하지 않는 단어 같은 것도 아니고, 그래봤자 영어 단어인데요. 뭐 “캡슐화" 이런거면 제가 말을 안합니다;

본인이 실제로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하면 모르겠는데, 실제로는 모국어는 커녕 해당 단어를 해당 언어로 된 문장으로 실생활에서 써본적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처럼 미국인 아내랑 살고, 모국어 수준으로 영어를 하려고 10년 넘게 공부를 한 입장에서는 진짜 복장이 터질때가 많습니다.

“팔로업" / “ASAP” / “린하게" 같은게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저는 회사들에서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오늘은 그거 팔로업을 했습니다” 식으로 말을 하는걸 보고 진지하게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1) 일단 그게 무슨 “크리스마스" / “스마트" 같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수 있을만큼 일반적이고 통용되는 명확한 기의가 있지도 않을 뿐더러,

(2) 그 원래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쓰는것도 아닙니다; 영어에서 “팔로우업" 이라고 하면 “일의 진행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듣는거" 지, 그냥 대충 “그거 관련된 일을 더 했습니다” 의 뜻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뭔지 정확하게 말하면 꼬투리 잡힐까봐 말하기 싫지만 그거 관련된 일을 좀더 하긴 했습니다” 라고 하세요...
“린하게” 정확히 무슨뜻인가요? 린스타트업 책을 읽어보고 말하는 “린" 인가요? 아니면 그냥 “유연하게”요? 그럼 그냥 유연하게 라고 해야죠?;

오늘은 심지어 제가 아는 개발자가 회사에서
“OO님이랑 get shit done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었다고 불을 뿜더군요.
도대체 뭔 개소린지 알고나 하는건지… 그럼 아예 그냥 다 영어로 하던지요;

결론

멀리 돌아왔지만 결론은 간단합니다.

스타트업도 회사고, 회사는 일을 통해 구성원이 돈을 벌어 생활을 유지하고, 구성원들이 협력해 공통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스포츠팀에 가까운게 당연합니다.

잘하면 잘한거고, 못하면 못한거지만 다음에 경기에 고쳐서 더 잘하면 되고.

“감정상해서 의욕이 없어질까봐" 돌려돌려 말하는건 초중고에서 졸업했어야 합니다. 저는 성인에게 자존감은 그런식으로 생기는게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내가 일로서 하는일을 집중해서 잘 하려고 할때 생기는거죠.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타트업에서 행복하다면 그건 “내가 해야하는 일이 적고, 나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이 전혀 없으며, 직원들이 다 나랑 친해서" 여서는 안됩니다. 그건 학교죠;
“내가 하는일이 의미있다고 느끼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전부 일을 잘해서" 여야 합니다.

바이럴이 돌아서 쓰는 몇가지 부가설명

1. “유치원" 이라는 수사가 부정확하지 않나?
동의합니다. 이제는 바이럴이 돌아버려서 일부러 안고치고 놔두고 있는데, 고치자면 “스타트업도 어른들이 일하는 곳" 이라고 고치고 싶군요. 유치원 교사분들 얼마나 고생하시는 지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2. 글에서 다루는 범위가 너무 넓지 않냐?
동의합니다. 애초에 제가 그냥 빡쳐서 원래 하던 다양한 생각들을 쭉 쓴거지, 회사 HR 담당자들이 돌려보면서 품평하는 상황을 기대하고 에세이를 정리해서 쓴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바이럴이 돌아서 수정하진 않을텐데, 고치자면 “성숙한 직업인들의 올바른 의사소통 방식" 과 “성숙한 직업인들이 회사에서 행복할수 있는 방법" 두개로 쪼개는게 편하겠군요.

3. 그래도 동료들 감정 고려를 해주는게 뭐가 문제냐? 그게 안좋을게 있냐?
글 어디에도 “직원의 감정을 고려하지 말자" 고 한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스타트업에서 행복하다면 그건 내가 하는일이 의미있다고 느끼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전부 일을 잘해서여야 한다” 라고 명시해놨습니다. 왜 제멋대로 글을 제대로 안읽고 그렇게 판단하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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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t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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