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모임

글쓰는 모임을 시작했다. 오늘이 처음이다. 심각한 고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글을 좀 써야할텐데 생각했고 언제나 그렇듯 페북에 말을 던졌고 누군가 응해주어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취미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책 읽는 횟수도 줄고 SNS외에는 적는 행위가 낯설어지면서 말 그대로 '내가 글을 잘 못쓰게 되어서' 쓰고 싶지 않았다. 언제는 잘 썼느냐, 라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지만 나쁘지 않게 쓰는 것 같다, 정도의 확신은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무엇을 적고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길게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면 주의력이 떨어진 것과 적고 쓰고 읽고 말하는 행위의 평균 주기가 짧아진 것이 일치하지 않을까.

나의 생각은 얼마나 인스턴트 식품 같은지 오늘도 분명 공포라는 주제로 글을 적고 싶었으나 정신차려보니 글쓰는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글쓰는 모임보다는 어째서 잘 적지 못했는가 하는 신세한탄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인스턴트 식품이라는 것이 몸에 안좋지만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건 아마 반제품 형태라 전자렌지에 데우기만 하면 쉽게 적정 수준 이상의 맛을 내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길게 생각하지 않는 것, 생각하는 걸 글로, 말로 정리해보지 않는 것 같은 것도 글쓰기라는 관점에서 인스턴트 습관은 아닐까? 꼭 해악하진 않고 사는데 지장 없으며 가끔은 더 편하게 느껴져서 딱히 버려야겠다는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모임의 시작은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농장 직거래의 유기농 식단을 내 식사의 일부로 들여놓는 시도가 될 것 같다.

잠시 본래의 의도대로 공포로 주제를 옮겨갈까 했지만 너무 많은 길을 와버려서 돌아가긴 힘들 것 같다. 두려움을 느낄 때 정면으로 돌파하여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는 무엇이고 내가 느끼고 있는 대상의 위험도가 과장되지는 않았는지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때로 한껏 부풀어있는 뇌의 어딘가가, 잘은 모르지만 공포와 관련된 부위겠지, 진실을 보아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일 때는 잠시 쉬어갈 필요도 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내 인지 기관 앞에 쓰여진 셀로판지를 버릴 시간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적는다는 행위는 간접적으로 생각의 거품을 걷어내주곤 한다.

여담이지만, 나는 방금 셀로판지가 생각나지 않아 네이버에 투명한 색 종이, 투명 종이, 프로판지, 프로팔지, 투명한 필름 등을 검색했다. 이 행위의 결과는 나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무슨 판지였는지 고뇌하다가 갑자기 셀로판지라는 단어를 어딘가의 기억 속에서 발굴해냈다. 아무 맥락없이 본래의 주제로 돌아가자. 글을 적는다는 것은 내가 평소에 잘 쓰지 않지만 어둠 속에 묻혀 곧 죽을지도 모르는 단어와 그 속에 자리잡은 추억 같은 것들에 안부인사하는 것과 같다. 조금 과장하자면 방치해두었던 나의 일부에게 시선을 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하나의 단어가 될 수도 있고 환경이 변화하여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지식일수도 있고 소중한 사람과의 한 때일수도 있다.

처음 글을 쓰면서 30분동안 다른 사람이 5분 내외로 읽을 수 있는 글을 적자, 가 목표였다. 뒤늦게 30분이라는 시간이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기에 길지 않다는 것과 다른 사람의 글을 5분씩이나 읽는 다는 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전에 확인했더니 미디엄 측정기 기준으로 약 3분동안 읽을 수 있는 글을 썼다. 좀 더 캐주얼하게, 읽기 쉽게, 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부담없이 가려면 3분정도 길이가 적당할 것 같다. 오늘은 마음 먹은 바가 있으니 5분 길이까지 쓸테지만 오늘의 교훈을 얻어서 앞으로는 시간을 좀 줄이도록 해야겠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무언가 더 적어야겠다는 압박에서 '글을 길게 만들기 위해 주절주절 불필요한 생각을 늘어놓는' 짓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오늘 이정도에서 마무리져야겠다. 오늘이 시작이고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한 번했다. 10시에 시작하자고 했고 9시 56분쯤까지 잠이와서 정신을 잃었고 내가 왜 이런걸 하자고 했지 후회도 살짝했지만 10시 45분 현재, 잠이 깼고 내일을 생각해선 더 위험한 것 같지만 글을 쓰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따듯한 차 한잔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어 상쾌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무서운 소식에 벌벌 떨고 있었는데 22시간 46분 중에 가장 평안한 순간이다. 내일은 또 다른 무서움에 벌벌 떨겠지만 부디 건강하게, 잘 헤쳐나갈 수 있게, 힘을 주세요. 힘을 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