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까지 마라, 이렇게 돈 벌어 봤냐.”

장하준 교수와 함께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이라는 책을 썼던 신장섭 교수는 장하준 교수 못지 않게 재벌주의자로 꼽힙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인터뷰해 ‘여전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을 펴내기도 했죠.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다’라는 책을 보면 장하준 교수의 아이디어의 상당 부분이 신장섭 교수와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시 인사이트와 발상의 전환으로 가득 찬 책입니다.

신장섭 교수는 먼저 재벌이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사업 조직이라는 건 편견이라고 지적합니다. 물론 옥스퍼드 사전에는 ‘재벌(chaebol)’이 “한국의 대기업 형태, 가족 경영을 중심으로 폐쇄적인 소유와 경영, 지배가 특징“이라고 풀이돼 있습니다. 흔히 대기업 집단 또는 복합기업을 ‘conglomerate’라고 쓰는데 그러니까 재벌은 한국판 대기업 집단이라는 의미로 씁니다. 가족 소유라는 게 다를 뿐 대기업 집단 자체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에는 미쓰이나 미쓰비시, 스미모토 같은 자이바쓰(財閥) 기업들이 2차 세계대전 직후 해체된 뒤 게이레쓰(系列)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도요타나 히타치그룹도 수직 계열화된 대기업 집단이고요. 미국과 유럽에는 콘체른과 트러스트 구조의 대기업 집단이 많습니다.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루이뷔통은 LVMH그룹 계열사죠. 크리스챤디올과 태그호이어, 지방시, 겐조, 갤랑 등의 명품 브랜드가 모두 LVMH그룹 소속입니다.

이탈리아에는 피아트그룹이 있고 독일에는 지멘스그룹이나 보쉬그룹이 있습니다. 미국에도 듀폰이나 포드는 아직도 창업자 일가가 경영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GM의 쉐보레나 폰티악, 캐딜락, 뷰익 등은 모두 독립된 회사였는데 지금은 독립된 사업부 체제로 굴러갑니다. 개발도상국에는 재벌식 경영이 보편화돼 있습니다. 중국에는 시틱그룹이나 레노버그룹이 있죠. 말레이시아에는 르농그룹, 필리핀에는 아얄라그룹, 멕시코에는 카르소그룹이 있습니다.

대기업 집단이라는 게 과거에나 가능했고 지금은 개발도상국에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신장섭 교수는 오히려 개별 기업이 전문적인 경영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편견이고 착각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재벌 체제가 일탈이 아니라는 겁니다. “개별 기업들이 시장을 통해 외부거래를 한다면 그룹경영은 위계를 통해 내부거래를 한다”는 논리인데요. 오히려 내부거래가 범위의 경제라는 이점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라는 겁니다.

내부거래가 재벌 체제의 장점이다? 심지어 가족 경영이 전문 경영보다 효율적이라고도 말합니다. 신장섭 교수의 주장은 낯설고 파격적인 걸 넘어 의구심까지 불러일으킵니다. 이 사람도 재벌주의자인 건가. 그렇지만 신장섭 교수를 뒤에 살펴볼 윤창현 교수 등 우파 경제학자들과 같은 선에 놓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장주의자들이 국가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과 달리 신장섭 교수는 시장과 정부의 이분법을 벗어나자고 제안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경제 의식에는 시장이 효율적이고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공기업은 원칙적으로 민영화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는 것들만 정부가 소유해야 한다는 편견도 있습니다. 현실을 들여다 보면 시장이 효율적일 때도 있고 정부가 효율적일 때도 있습니다. 시장이 실패할 때도 있고 정부가 실패할 때도 있고요. 중요한 것은 시장과 정부가 현실에서는 항상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겁니다.”

이를 테면 신장섭 교수는 “정경유착을 잘 해야 경제 발전이 빨라진다”고 주장합니다. 내부거래는 나쁜 것, 정경유착도 나쁜 것, 금융과 산업은 분리돼야 하고, 경제력 집중도 해소돼야 하고, 그렇게 흑백논리로 재단하는 게 현실에서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원칙적으로는 정경유착을 뿌리 뽑는 게 맞지만 경제인들의 사익 추구가 공익의 범위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지는 게 맞다”는 지적은 핵심을 찌릅니다.

유착이라는 표현 때문에 강한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시장이 혼자서 작동하지 않고 항상 정부의 정책과 연동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경유착을 완전히 뿌리 뽑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데 동의할 겁니다. 정부 규제가 특정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무줄처럼 적용되고 변형되는 게 오히려 문제라는 거죠. 정치와 경제를 분리할 게 아니라 정부가 시장에 좀 더 주도적으로 개입하되 공공성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승일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죠. “여러 업종에 걸친 계열사들을 거느린 기업집단은 일본과 독일, 스위스, 프랑스, 스웨덴 등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고 비정상이 아닐뿐더러 반드시 축소시키거나 해체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정경유착이나 도덕적 해이는 사라져야 할 병폐지만 기업그룹의 장점은 살리되, 총수 일가의 법률적 도덕적 무책임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장하준 교수가 쓴 ‘사다리 걷어차기’에 보면 선진국들은 보호 관세와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으로 성장을 이뤘으면서 후진국들에게는 자유 방임과 시장 경제를 강요합니다. 자기네들이 딛고 올라온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이야기인데요. 신장섭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도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데 바람직하니까 만들어놓고 따라오도록 요구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신장섭 교수는 가족 경영이 전문 경영보다 경영 성과가 좋은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가족 경영은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전문 경영인은 임기 안에 실적을 내야 하죠. 30년을 내다보는 경영과 3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차이죠. 둘째, 가족 경영은 주주가 경영자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감시감독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경영자가 곧 주주니까 주주 중심 경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물론 가족 경영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제왕적 경영으로 전문 경영인의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검증을 거치지 않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능력한 창업자의 아들이나 손자가 최고 경영자가 되는 경우도 있겠죠. 신장섭 교수는 “가족 경영과 전문 경영의 서로 장단점이 있고 전반적으로 가족 경영의 성과가 더 좋다”면서 “한국에서는 실증이 제대로 없는 상태에서 전문 경영을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도그마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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