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 혁신과 성장의 비밀 요약 1-(1)

Lee Jieun
6 min readDec 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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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E 초기의 경영: 전기산업 발전이 가져다 준 풍요로운 생활(1879년~1939년)

(1) 에디슨 경영 시기(1879년~1891년)
이민자의 손자로 태어난 토머스 에디슨이 어릴 적부터 실험정신이 투철했다는 것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겠지요. 그는 직장을 갖고도 발명에 매진하다가 잘리기를 반복하다가 1877년, 그가 서른살이 되었을 무렵 축음기(Phonograph)를 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앞서 거리에서의 신문판매 독점권을 확보하기도 하는 등 사업가적인 면모를 갖고 있던 그는 특허권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을 단 여러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저자인 로스차일드는 GE의 설립시기를 1879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GE가 공식적으로 설립됐다고 널리 인정되는 시기는 1892년입니다. 다른 전기업체와 합병돼서 더 큰 회사가 됐거든요. GE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는 1879년이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그저 “1889년쯔음 에디슨은 여러 전기업체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JP모건 등 에디슨의 투자자들이 이들을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이라는 회사 아래로 묶었고, 1892년 톰슨휴스턴과 합병시켜 본격적으로 제너럴 일렉트릭이 탄생했다”고 서술하고 있을 뿐입니다.

설립시기에 따라 GE는 137년 된 회사(1879년 설립)도 될 수 있고, 124년 된 회사(1892년 설립)가 될 수도 있습니다. 뉴스를 찾아보니 두 시기가 혼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 재미있는 것은 외국 언론들은 대체적으로 124년 된 회사로, 우리나라 언론들은 대체적으로 137년 된 회사로 보고 있다는 것이죠. (124-old-year ge로 검색한 결과와 137-old-year ge로 검색한 결과가 확연히 차이납니다)

124년 된 회사라는 해석을 따른다면 에디슨은 이 회사를 한 번도 경영해본 적이 없는데도 CEO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회사를 경영한 사람은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과 합병했던 톰슨휴스턴의 CEO인 찰스 코핀이었죠. 마치 에디슨이 회사를 뺏긴 것 같은 느낌도 줍니다.

발명가이자 탁월한 사업가이기도 했던 그가 회사의 경영권을 넘겨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당시 전기업계를 달궜던 직류·교류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시장 대세는 교류였는데, 에디슨은 직류를 고집했죠. 그것이 결국 그의 회사가 다른 회사와 합병해 GE가 탄생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니 착한 고집이라고 해야 하나요.

직류·교류의 전쟁은 시장표준을 두고 벌어진 전쟁이었습니다. 블루레이와 HD-DVD등 산업 역사적으로 이런 사례는 상당히 많고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시장표준이 되기 위해 돈을 쏟아붓고 있죠. 직류를 고집하던 에디슨이 물러나고 그 뒤를 교류전기 회사인 톰슨휴스턴의 CEO가 이은 것은 시대 흐름으로 볼 때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에디슨이 GE 역사상 중요한 인물로 남은 것은 이후 회사의 성장에 있어 그가 남겨두고 간 것이 상당히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뉴저지 멘로 파크에 연구소를 설립해 고도로 체계화된 연구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지금은 기업 연구소가 너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당시만 해도 놀라운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위키피디아는 그의 주요 혁신 중 하나로 최초로 산업용 연구소를 만든 것을 꼽고 있기도 합니다.

또 총 1093개의 특허권을 회득했으며 적극적인 소송을 통해 특허권 보호에 나서는 등 특허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그 당시로는 획기적인, 전기설비를 구매하는 소비자에 대한 재정지원책도 마련했습니다. 관료성향이 강한 정부 산하 기업보다는 민영 전기설비 업체를 적극 후원했습니다. 이는 연구소를 포함해 향후 GE라는 회사의 특성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에디슨이 마련한 개념 중 GE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것이 또 있는데요, 바로 ‘호순환’이라는 개념입니다.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하는 상품을 개발한 후, 이를 기반으로 네트워크 공급자들에 더 크고 복잡한 전기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하며 이 시스템 건설 진행을 에디슨 GE회사에 맡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GE는 이론적으로 무한히 제품을 팔 수 있게 됩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네트워크를 판매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애플이 생각나기도 하고, 인텔도 생각나네요. 그가 직류를 고집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앞서 로스차일드가 GE의 성공전략으로 분석한 ‘LATIN’을 기억하시나요. 각각 리더십, 적응력, 인재, 영향력, 네트워크를 뜻하는 첫머리를 붙여 만든 신조어였죠. 로스차일드는 LATIN 5개 부문 중 ‘A(적응력)’를 제외하면 모든 부문에서 에디슨이 훌륭하게 경영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대로 뒤집어보면 아무리 나머지를 잘 하더라도 적응력 부문에서 뒤처지면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이 책에서 언급된 GE 리더 중 오직 에디슨만이 적응력 부문에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내년이면 새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는 창업자 에디슨의 뒤를 이어 통합된 GE를 이끌어가야 하는 사명을 떠안은 ‘교양신사’ 코핀에 대한 요약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안 읽어도 그만인 글
※에디슨의 할아버지는 미국 독립전쟁에서 왕당파(로열리스트)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독립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좀 아이러니하죠.
※에디슨은 두 차례 결혼해서(첫 아내는 사별) 여섯 아이를 두었고, 두 번째 아내는 그보다 스무 살 어렸다고 합니다. 한창 사업을 할 때인 서른아홉에 두 번째 결혼을 했죠. 에디슨은 일하느라 집에 잘 안 들어왔다고.
※에디슨은 열 아홉살때 AP의 전신기사로 취직했는데, 독서와 발명을 하기 위해 밤근무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스무살 되던 해, 어느날 하루는 납과 산으로 만든 배터리 실험을 하다가 황산을 쏟아버렸습니다. 요즘 건물이면 닦아버리면 괜찮았겠지만 당시 건물은 나무로 지어졌기에 마루 아래로 황산이 새어 들어가면서 아랫층에 있는 상사 데스크 위에 황산이…결국 다음날 해고됐습니다. 왜 멘로 파크에 연구소부터 세웠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참고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Thomas_Edison
https://en.wikipedia.org/wiki/General_Electric
https://en.wikipedia.org/wiki/War_of_Currents
http://www.smithsonianmag.com/history/edison-vs-westinghouse-a-shocking-rivalry-102146036/
https://www.amazon.com/Secret-GEs-Success-Leadership-Competitive/dp/0071735941/ref=sr_1_1?ie=UTF8&qid=1483144740&sr=8-1&keywords=secret+to+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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