遺憾

시대의 지성으로 꼽히던 이가 스스로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늘 이런 방식의 삶을 살아왔다. 글을 업으로 삼던 일을 그만두고 정치에 투신할 때도, 그리고 다시 작가의 삶으로 돌아올 때도, 그는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위해 화염병을 들고 바리게이트 앞에 서는 심정으로 자신의 안정적인 삶을 던져버렸다. 자리와 명예에 연연하지 않았고, 온갖 비난을 온 몸으로 맞으며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지키고자 했다. 나는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빨갛게 부어오른 눈에 어른거리던 그의 분노를 기억하고 있다. 분노라는 짧은 낱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그의 얼굴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가장 잘 알려주는 표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그는 그 정념들로부터 조금은 벗어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그 정념들이 그의 선언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다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다짐은, 옆에서 연신 웃음을 터트리는 진행자의 농에도 열리지 않던 입술에서 전해졌다. 나는 영결식장에서 그가 보였던 얼굴을 그 때 다시 볼 수 있었다.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그의 감정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와 함께 그 많은 감정들을 나누었기 때문이고, 어쩌면 그 감정의 파편들이 모여 지금의 정권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의 선언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고, 나의 대표자가 되길 바라며 내가 가진 주권의 일부를 위임했다. 나는 내가 선출한 대표자가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길 바라고, 그가 약속했던 대로 더 나은 국가를 만드는 데에 내 주권을 행사할 의사가 있다. 더 나아가 나는 그가 정치인으로서 성공하는 것 만큼이나, 자유인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기꺼이 그의 편에 선 시대의 지성에 감사했다.

그럼에도 지금에 와서 나는 다시 고개를 내저을 수 밖에 없다. 그의 언어는 꽤나 정제되어있어 그 흠결을 찾기 어렵고, 단단한 지식과 내공이 그 근간에 있어 날카로운 공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한 그의 언변과 지성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고, 그렇기에 그가 하는 말 또한 큰 영향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그의 언어가 가지는 위력을 경계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마치 자유주의에서 진보주의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의 대중에게 든든한 지원군이자 지성적 근원이다. 그것은 마치 유적본질이 상징적으로 표상되는 것과 같은 숭배의 대상임과 동시에, 공론장에서 다른 정치세력에게 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기능하는 대리의 대상과 같다.

그리고 그는 진보 언론인과 지식인, 노동조합과 그들의 행동권, 시민단체에 대한 암묵적 적의를 표출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혹은 그가 전하는 지성을 가치관의 토대로 삼은 수 많은 이들의 정치적 린치가 이어졌다.

가령 그런 것이다. ‘당신은 아무개를 찍지 않았음에도 아무개에게 무엇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 혹은 ‘당신은 선거 내내 아무개를 힐난했음에도 진보를 참칭할 수 있는가.’ 와 같은 반민주적인 언어들이었다. ‘민주 진보 정권’ 에 대한 지지를 자임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온 이와 같은 말들은, 수 십년 전 ‘한국식 민주주의’ 의 기치를 내걸고 왕정으로의 회귀를 보여주었던 누군가의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나는 당신들의 감정을 알고 있다. 나 또한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말로 내가 당신들을 비판할 자격을 얻고자함은 아니지만, 최소한 서로를 이해하고자하는 노력이 곧 우리의 품격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주의 세력의 합리적 공존이 서로에게 모두 이익이 된다는 기술적 분석을 다루고자 글을 쓴 것도, 누군가의 비유처럼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주의 세력의 사이에는 건너기 벅찬 강이 흐른다는 말로 서로의 적의를 확인하고자 글을 쓴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신들의 언어가 당신들과 싸웠던 이들의 언어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 그것만큼은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들의 언어가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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