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진보주의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대추리 사태를 다룬 글을 보았다. 나는 댓글을 달았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와 농민을 향한 정부는 단 한 번도 수립된 적이 없다. 물론 그것은 민주정부 10년을 포함한다.' 그리고 오늘, 초선의원 노무현의 대정부 질문의 육성을 다시 들었다.

"...노동자와 농민이 다 함께 잘 살게 되고, 임금의 격차가 줄어들어서 굳이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리고 높은 자리에 안 올라가도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그런 세상이 와도 ... 지금처럼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것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교부 장관에게 질의)
"...과연 그 아이를 잡아다가 방화죄로 처벌을 하면 그만입니까? 노동부 장관, ... 한국의 산재율은 세계에서 몇 번째입니까? 해마다 산재로 죽는 이는 몇이나 되고, 그 중 병신이 되는 이는 몇이나 됩니까? ... 이것만은 꼭 정확한 수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노동부 장관에게 질의)
"내무부 장관, ...이 나라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의 비참한 삶을 더 늘어 놓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입만 벌리면 외쳐대는 한민족, 한동포라는 말이 과연 진실이라면, 이들도 우리와 함께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의 고통이 돈과 힘을 한 손에 모아쥔 소수 특권 계급의 착취와 억압에 기인된 것이라면, 그들은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 빈부격차의 해소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내무부 장관에게 질의, 앞선 질의에서 다른 의원이 노점상과 철거민에 대한 질의를 해서 중복을 피하며 말을 줄인다는 것을 밝힘.)
"법무부 장관, 우리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선언해 놓고 있고, 이를 위해 국가가 해야할 여러가지 의무를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 제 생각으로는 헌법상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의 규정은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 스스로의 투쟁에 의하지 않고는 확보된 일이 없다' 는 역사적 경험을 승인한 것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그리고 이를 인정하지 않을 때에는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뒤엎어 버릴 위험이 있고, ... 민주주의 제도마저 파괴될 위험이 있어서 이를 제도 안에 수용한 것 아닙니까? ... 노조와 파업의 권리가 부인되는 곳에 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노조와 파업의 권리에 대한 도전은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는데..."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
- 노무현, 제142회 임시국회 첫 대정부 질의, 1988년 7월 8일

그와 그의 말과 글은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그가 살아온 역사적 맥락 아래에서 그는 분명 노동자와 농민의 곁에 있었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진보주의라고 불릴 충분한 자격이 있으며, 진보주의의 낙인을 고스란히 안고 선거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진보주의를 당당히 대한민국 제도권 정치에 자리 잡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된 이후의 그의 모습이 안타까운 것은 분명하지만, 그를 진보와 균열시키고 격리시키려는 태도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나를 진보주의에 가깝다고 규정하고, 그가 나와 함께 진보주의자였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고인이 되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책의 제목은 「진보의 미래」이다. 누군가는 진보가 낡은 구호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이제는 힘을 잃은 세력이니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진보의 미래를 꿈꾼다. 진보는 정당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언론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빛 바랜 가치도 아니다. 진보는 우리의 곁에 있어야 한다.

그가 말했듯, 살기가 힘이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이들의 곁에, 소외받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곁에, 진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