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가 남았다.
두 번째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대연고등학교 토론동아리가 부산광역시교육청이 주최하는 독서토론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랑할 만한 결과 뒤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존재했다. 자율학습 시간을 반납하고 쉬는 날까지도 학교에 나와 대회를 준비했던 친구들의 열정과 그리고 항상 그 옆에서 우리를 도와주신 선생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결과도 분명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걸은 걸음에 대한 감사를 첫 머리에 전하는 이유는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가끔씩 회의를 느끼곤 했다. 비단 대회를 준비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가끔씩 느끼던 의문이었다.
그것은 과연 토론이, 우리가 쓰고 말하고 지독하게 물어뜯는 그 활자들이, 나에게, 다른 사람에게, 혹은 세상에 그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토론이 꽤나 훌륭한 의사소통 방식임은 분명하다. 어떤 주제에 대해 발언자들은 공평하고 민주적으로 발언권을 부여받고, 상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수들은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그리고 누가 더 많은 비수를 꽂아, 누가 더 상대를 비참하게 무너뜨렸는지가 토론에서의 승리와 패배를 가름하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들이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진실로 변화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는 그것과는 또 다른 맥락에 있다.
나는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 그것을 위해 나의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것까지는 알지만, 그 뒤에 펼쳐지는 일련의 절차들은 아직도 나에게는 벅찬 일이다. 하지만, 결코 날카로운 비수를 쏟아내는 것들로는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다.
대회는 승리를 위한 것이다. 나와 나의 친구들도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해진 틀 안에서 쏟아낼 수 있는 모든 비수를 상대에게 꽂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우리의 노력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는지, 우리는 대회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회는 끝났다. 대신 막이 내린 자리에 숙제가 남았다.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한 토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감싸기 위한 토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날카로운 비수의 끝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우리가 뱉어내는 활자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조금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향하는 데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우리에게 남았다.
어쩌면 대회보다 더 중요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만의 숙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주어진 숙제이다. 나와 당신이 이 숙제를 멋지게 완성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재작년 겨울, 토론대회를 마치고 교지에 썼던 글이다. 그간 함께 읽고 싶었지만, 마땅히 올릴 곳이 없어 고민하던 글이었다. 두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나에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벅찬일이고, 나는 내 삶과 내가 뱉어낸 말 사이에 간극을 보며 부끄러워한다.
2014. 12. 26
Originally published at lee-taegyung.tumblr.com.